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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가 쓰는 글

희망으로 2012. 7. 2. 00:40

삼일만의 장 청소 하는 날

좌약을 넣고 한 시간을 기다렸다가 화장실로 가니 다 사용 중 만원!

어쩔 수 없이 위층 화장실로 올라갔습니다.

일을 보는 중 누군가가 두드립니다.

나는 늘 이 일들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안에서 샤워든 볼일이든 사용 중인데 두드리면 뭘 어쩌라는건지?

중단하고 나오라는 건지 빨랑 비켜! 내가 사용하겠어! 뭐 이런 건지...

 

별 용도도 없이 이런 시도를 왜 하는지

도대체 몇 년이 되어도 아직도 수긍이 안갑니다.

간혹 두드려서 얼마나 걸릴까요?’ 하고 묻는 사람도 있었지요.

아마 준비를 하려고 그러나보다

그 하나라도 스스로를 달래는 이유로 삼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나마 그런 예의바른 경우는 정말 가뭄의 콩 나듯 어쩌다 있고,

대부분은 무조건 두드리고 문을 흔들다가 가버리는 겁니다.

더 나쁜 경우는 뭐라고 궁시렁 투덜거리며 두 번 세 번 반복하며

문을 흔들거나 툭! 차면서 시위를 하는 경우입니다.

 

대부분 재활병원 샤워겸용 화장실이 안의 불빛이 보이는

불투명유리문 이거나 자바라 문입니다.

장애 있는 사람이 다치거나 도움을 요청할 때,

대충 상황을 짐작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안에 불이 켜져 있을 때

한 번도 강제로 문을 흔들거나 두드리지 않았습니다.

그 놀라고 당황스런 감정을 여러 번 느껴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더 심한 경험을 했습니다.

문을 흔들며 두드리곤 대뜸 언제 나올거냐! 그럽니다.

아직 좀 더 걸린다고 대답했는데 십분도 안 되어 또 두드립니다.

오줌을 싸겠다!’ 안에서 들리도록 투덜대며 재촉을 합니다.

그럼 다른 화장실이나 다른 층으로 빨리 갈 일이지

지금 진행 중인 사람을 불러낼 일이 아닙니다.

뭐 어쩌라고? 보다가 멈춰! 하고 바지 잡고 나오기라도 하라고??...

 

잠시 후 나오니 휠체어 탄 두 명의 사람과 서있는 한사람,

세 사람이 수군거립니다.

‘4층사람이야! 그래 아래층 사람이네그럽니다.

그러면서 휠체어를 탄 뚱뚱한 한 아주머니가 말합니다.

누구누구야! 들어 가! 씻어!’ 그러며 내가 교통정리를 다 했어!’ 그럽니다.

분위기가 파악이 됩니다.

더운 날 샤워하겠다고 나왔는데 두 군데 샤워실이 다 사용중이니

그 아주머니가 안에 있는 사람을 독촉해서 불러내고

아는 사람 넣어주면서 생색을 내는 상황입니다.

내가 속상해서 한마디 했습니다.

아니, 일보는 사람을 그렇게 독촉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대놓고 말은 없고 자기들끼리 ‘4층 사람이야 4! 얼른 들어가!’

그러면서 비겁하게 궁시렁 궁시렁...

 

내려와서 참으려고 하는데 욱! 열이 받칩니다.

분노가 솟아 입에서 저절로 욕이 나옵니다.

벌써 몇 년차인 병원생활 장기 경력자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런 경우를 만나면 너그러워지지 못합니다.

이런 썅! 똑바로 앞에선 말도 못하며 수군거리기나 하는 또라이 같은 여자들이라니!’

온 몸의 체온이 오르는 걸 피부로 느끼면서 더 심한 말이 새 나옵니다.

거룩한 안식일 말미에...

 

머리가 어떻게 된 사람들 아냐?’

말해놓고 보니 사실입니다.

뇌질환이나 다른 심한 병력으로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워진

심신 저능상태 환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심한 열등감과 약한 치매 현상도 있는 사람들...

 

이건 이성과 염치의 문제만이 아닌

실재적인 신체이상인 병적 현상인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현상도 포함된 경우입니다.

그걸 상대로 내가 열 받고 화를 참지 못하다니...

아내에게 그렇지? 정신장애도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화를 낸다는 게 잘못된거지?’

...그래도 화가 나는걸 어쩌지요?

 

오늘 아침에 <미움도 믿을 수가 없다!>는 글을 올린 기억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못 믿을 감정이야. 변할 거야.’

아님 잘못된 기준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거야! 이러면서 달래봅니다.

 

늦은 시간이지만 오늘도 영혼에 쌓인 쓰레기 앙금들을 버리러 갑니다.

밤 열한시가 지나가는 중 어느 작은 건널목 신호등 앞에 섰습니다.

나는 건널목에서 빨간 불이 들어와 있으면 자동으로 발이 멈춥니다.

곁으론 사람들이 당연한 듯 뚜벅 뚜벅 건너는 걸 이제 아주 편하게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뭐 특별히 도덕적 분개심이나 준법정신 운운 하고싶은 그런 느낌도 없습니다.

더구나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의 작은 도로 건널목 신호등이니~~

 

그런데 신기한 일을 봅니다.

아니 기쁘고 설레는 모습입니다,

두 청년이 건너편 건널목에서 멈추어 기다립니다.

한명은 자전거를 탄 고등학생정도,

또 한명은 대학생이거나 직장인 정도 될 청년,

런데 이 늦은 밤 별로 지킬 필요도 없는 신호등 빨간불에

멈추어 서서 파란불로 바뀔 때까지 기다립니다.

결국 도로 중간에서 엇갈려 건너면서 얼굴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런 모습 본지 너무 오랜만입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것도 청년 두 명이!

왜 내가 그리 기뻤는지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또 다른 장면을 보았습니다.

상당히 넓은 비싼 평수의 아파트 앞을 지나는데

나같은 초보자가 보아도 억대가 넘어갈 게 분명한 차를 한 대 보았습니다.

까만 선팅이 온통 유리를 가리고,

영락없이 보트를 지붕에 싣고 다닐 것같은 레저용 외제차!

그 차에 앞자리에 나란히 앉은 중년 부부가 있고

청년쯤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와 아직 중학생쯤인 여자 아이가 짐을 들고

옆문으로 올라타고 있었습니다.

아마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지 다녀온 건지 그렇게 보입니다.

 

갑자기 우리 아이들이 비교가 되어 떠오릅니다.

저 아이들은 아무 아쉬움이나 못해보는 경험도 없고

가지고 싶은데 참아야 하는 대상도 훨씬 없겠지?

저런 능력 있는 부자 집에 태어났다는 게 얼마나 복 받은 운명일까.

우리 아이들은 생활비 등록금 걱정까지 수시로 해가며 청소년시절을 보내야하는데...

 

자꾸 비교가 되어 공연히 미안하고 부끄러워집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걸까요?

아이들이 태어날 때는 그 아이들의 능력이나

선악의 평가로 정해지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한편 이렇게 억울하다고 따지면 할 말도 없을 겁니다.

그건 우리 아이들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태어나

더 어렵게 출발하는 아이들이 똑같이 던질지도 모르는 질문 말입니다.

 

모르겠습니다.

더 걸어서 아무 의문도 불편한 감정도 느끼지 못할 만큼 고단해져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주님의 날은 생각이 많아집니다.

별 유익하지도 건강하지도 않는 생각들이 말입니다.

이 긴 글을 손전화로 다 씁니다.

나중엔 다 백지처럼 하얗게 지워져 뭔 생각을 했었는지 모를 것 같아

잠시 걷는 걸 멈추고 기록으로 남깁니다.

다시 일어나 걸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