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갈릴리마을 해와달, 신학설교토론방에 올린 글입니다. 꼭그곳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설득하고 토론 하는 장소와 순간마다 적용될 제 기준이라 생각되어 여기에 남깁니다. 제 개인 스타일은 도저히 서로 유익이 안되겟다 싶은 상대라는 판단이 서면? '때려치우는' 방식입니다. 그 피곤하면서 배도 안부르는 어리석은 짖을 왜 계속하나 뭐 그런 생각이라서... 안그런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그것도 사람들을 사랑하는 하나의 실천입니다)
신학 설교 토론방에 대한 소감
자주 어떤 주제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자료들을 이곳에서 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를 가끔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 어떤 부분이 맘을 무겁게 하는 걸까? 돌아봅니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제 소감을 말하고 싶습니다.
주로 토론 분야에서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설교나 소개는 뭐 혹 다르다 싶어도 그냥 관심을 두지 않거나 흘려보내면 되니까요. 그러나 토론은 일방적인 강의와는 다르지요. 그래서 많이들 참여도 하고 그러다 과열이 되기도 하는 것을 봅니다.
본래 토론은 내 주장과 근거를 설득하고 증명하기 위해 하기도 하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지요. 그런 건 일방적 발표나 공고를 하는 방식이 맞지요. 아님 책을 내거나 강의를 하거나...
토론은 내게 없는 것, 내가 모르는 것, 내게 결함이 있는 점들을 상대에게서 지적받고 채워지고 고쳐지는 ‘더하기’ 결론을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의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거나 일방적인 완벽한 토론은 모두에게 공인을 받는 소득을 얻기도 하지요. 어쨌든 토론은 양자와 보고 듣는 모든 이에게 유익한 ‘더하기’과정이라고 믿습니다. 더구나 세상 지식보다 영혼과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신학 신앙 토론이야 더 말할 필요가 없이 그렇지요.
100% 완벽하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상대를 제압하고 받기를 강요하는 방식은 토론이 아니고 전쟁이지요. 자신의 종교를 수호하기 위해서거나 타 종교를 전멸시키기 위해 목숨 걸고 하는 전쟁의 한 수단이지요. 하지만 여기는 타 종교도 아니고 강제로 선교를 해야 할 이방인들의 장소도 아니니 그런 형식, 목적은 분명 맞지 않을 겁니다.
우리들은 모두 같은 인격체(무대포가 아니라는 뜻)이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무리이고 같은 텍스트인 성경을 의지하고 길을 따라가는 무리들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어떤 이견이나 주장도 모두에게 살리는 과정 이어야하고,(이단조차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기능으로) 사랑의 과정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승부를 가르는 대회가 아니며 누군가를 희생시키고 얻어지는 명예의 토너먼트는 더욱 아니니까요. 원하기는 이론이며 문자인 내용들이 몸으로 사는 삶에 구체적으로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생물의 자리까지 승화되었으면 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신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정리하고 쌓여진 내용을 설명하고, 자신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을 질문하는 방식이라면 결코 상대에게 칼을 휘두를 필요가 없어지겠지요. 자신의 논리체계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내용을 누군가 제공하면 받아들여서 더 완벽한 내면을 재정립하면 될 것입니다. 혹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냥 흘려보내야지요. 왜 동의할 수 없는지를 자기 지식과 인격의 바탕에서 설명을 하고 그 수용여부는 어쩔 수 없이 듣는 사람에게 맡겨야지요. 누구도 자기 주장을 상대의 머리나 가슴을 문 열 듯 열고 강제로 넣을 수는 없는 법입니다. 애정을 가지고 권한다면 중보기도를 해드리는 것이 상대와 하나님께 적절한 예절을 갖춘 태도일 것입니다.
가끔 남의 생명을 끔찍이 아끼고 사랑한다는 명목으로 인격도 감정도 무자비하게 무시하면서 강제로 주입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나 사랑은 어떤 명분으로도 생명자체인 형제자매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고린도전서 사랑편에 잘 나와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본질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증명이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스타일이나 방식은 가급적 남의 신앙이나 신앙관은 존중해주고, 염려가 될 정도로 다를 때는 말해주고 싶은 내용을 담은 글귀나 책이나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 번 전해줍니다. 그러나 그것을 휴지통에 버리거나 귀 뒤로 보내버려도 할 수 없다고 감수합니다. 그건 제 역량 밖이고 그 사람의 주인이신 하나님 몫이니까요. 성경에도 남에게 복을 빌어주고 받지 않으면 먼지를 털고 나오라고 했던가요? 그 복은 빌어주는 사람에게 돌아온다면서...
내가 내 주장을 입에 칼을 문 사람처럼 비장하게 방어할 때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가진 본능이고 방어기제입니다. 하물며 방어를 넘어 공격을 할 때는 더욱 딱딱하게 긴장하고 굳어진 몸은 사고를 유발합니다. 부드럽지 않으면 몸을 다치는 것이 모든 스포츠와 인격 훈련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니까요.
제 스타일과는 다르게 참으로 열심히 남들에게 배운 것을 나누어주고, 아는 것으로 답변해주는 분들을 이곳 방에서 봅니다. 저라면 못할 감정의 부딪힘까지 수용하면서 다양한 면을 말하고 설명하는 분들이 존경스럽습니다. 안해도 될 마음 고생을 감수하면서 성경과 신학의 머리 아플수도 있는 부분을 나누는 자세는 분명 봉사에 속하는 상 받을 일로 보입니다. 부디 자신과 남을 해치는 날카로운 감정의 칼날만 다스릴 수 있다면 말입니다.
없어도 좋지만, 있어서 더 좋을 신학 설교 토론방이 되려면 이랬으면 좋겠다는 제 생각을 그냥 늘어놓았습니다. 이 역시 제가 부탁드린 대로 도움이 되시는 분들은 보태주시고 마음에 동의가 안되는 분들은 그냥 뒤로 흘려보내주십시오. 다행하게도 공간은 바람이 실어다주는 무한정의 부정과 무관심, 속상함들도 다 받아들이고 소화하면서도 한 점 찌꺼기를 남기지 않는 신비한 능력이 있습니다. 하늘은 온통 그런 공간임이 얼마나 다행인지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안식일의 평안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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