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소설가이자 NGO 감사관이 쓴 빈곤과 구호활동에 대한 보고서.
수십 년 간 100여 국을 다니며 체험한 NGO 활동에 대한 기록으로, 문명인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빈곤국의 현실을 보여준다. NGO 감사관의 눈에 비친 빈곤국의 국가 시스템적 모순들과, 소설가의 관찰력에 탐지된 오랜 굶주림이 낳은 외적, 정신적 폐해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주변을 살펴보면 국내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은 많다. 그런데 왜? 우리는 세계의 기아 난민까지 도와야 하는 것일까? 이에 저자는 정치 경제적 헤게모니가 배재된 빈곤 그 자체의 광경을 말해줄 뿐이다. 하지만 인간 존엄의 개념조차 모른 채, 쓰레기 취급당하다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우리와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 이 속에서 우리는 왜 지구촌 곳곳까지 도와야 하는지 그 답을 찾게 된다.
- 보지 못한 것은 소망할 수 없다
가난해서 과자를 먹어본 적이 없는 아이, 어른이든 아이든 강한 자가 많이 먹는 곳, 평화·존엄·자유·평등이라는 개념은 편린조차 없는 곳.
이런 곳에서 아이는 사탕을 줘도 포장지조차 벗길 줄을 모르고, 상식처럼 들리는 어린이의 인권이라는 단어는 실체조차 없다. 그리고 평화를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은 평화를 상상할 수 없다. 사람은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결코 소망할 수 없다
. 이런 의미에서 빈곤이란 단순히 돈이나 의식주의 부족이 아니며, 역으로 기아를 모르는 우리는 빈곤을 상상할 수 없다. 저자인 소노 아야코는 이를 두고 우리의 정신적 빈곤이라 말하고 있다.
- 이것이 빈곤이다
소노 아야코는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해 쓰면서 이런 말을 하고 있다. “나는 도덕적으로 빈곤을 묘사하는 것만은 피하기로 했다. 그것은 무례한 짓이기 때문이다” 라고.
이는 곧 우리의 도덕적 잣대로 보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파렴치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뜻하며, 생명이 달린 문제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 책에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빈곤의 모습들을 만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에이즈 양성반응이 나와서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아이들에게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주지 않는다. 아프리카 어머니들이 특별히 비정해서 그런 건 아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른 건강한 형제들도 충분히 먹일 수가 없기 때문에 살 가망이 없는 아이는 뒤로 밀려나게 되는 것일 뿐이다. 강한 유전자가 살아남는 것이 이쪽의 방식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빈곤의 문제도 많다. 에이즈 환자에게서 태어난 아기가 HIV양성이 되는 이유는 유전이 아니라 수유에 원인이 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수유를 중지하고 분유를 먹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분유를 타서 먹일 물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분유를 먹였다가는 에이즈에 감염되기 전에 설사로 죽게 된다. 고작 200cc의 물을 끓이기 위해 한 묶음에 1달러나 하는 장작을 지피기도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젖을 빨던 기억이라도 만들어 주는 게 낫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교육이 전무한 곳이기에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많은 문제가 생긴다. 일주일에 한 번 먹으면 되는 예방약을 주는데, 아이에게는 어른의 절반을 먹이라고 말해도 절반의 개념이 없어서 다음에 데리고 와서 먹이겠다는 엄마. 체력이 바닥난 여자가 아이를 안고 오기에는 먼 거리. 하지만 집이 어디냐고 해도 10킬로미터인지 20킬로미터인지, 1시간 걸리는지, 2시간이 걸리는지 알지 못한다.
- 도와도 도와도 개선이 되지 않는 이유
NGO 감사관인 저자는 기부받은 귀중한 돈이 정확하게 필요한 사업에 사용되는 것에 항상 고민해왔다. 하지만 가난한 사회에서는 물건이나 돈을 옮기는 것도,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으로 송금하려 했지만 은행 창구에서는 당신들의 송금이 반드시 상대에게 전달될지 보장할 수 없다고 하여 복대 안에 거금을 넣어 운반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돈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는 더욱 큰 원인에 대해 저자는 개발도상국의 위정자와 권력자가 원조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위급한 환자를 위해 약품을 지원한다고 해도 ‘사용했다’는 보고하에 그 돈을 착복하는 의사가 있고, 환자에게 약값을 받아낼 수도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장학금을 갖고 도망간 교장이 있는가 하면, 경찰은 잡을 의욕도 없다. 때로는 찾아주면 얼마를 줄 수 있냐는 흥정이 있을 뿐. 너나없이 모두가 이렇게 남의 돈을 가로채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도난 방지 철창을 하지 않으면 분만실의 시계도 훔쳐가고, 심지어 화장실의 변기까지 떼어가는 가난한 사람들. 부자나 권력자는 크게 훔치고, 가난뱅이는 작게 훔친다는 차이가 있을 뿐 구호 물품이 제대로 안착하기까지의 난제들이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
소노 아야코가 마더 테레사의 시설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환자가 오면 몸을 씻긴 뒤에 깨끗이 빨아놓은 옷을 입히고 음식을 주었다. 자원봉사자 중에는 환자에게 볼을 비비는 사람도 있었다. 소노 아야코는 이 광경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인생에서 단 한 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하면 자신의 인생이 마지막까지 쓰레기 같다고 생각하면서 죽어가지는 않을 지도 모른다.”
이 시설의 초기에는 거리에서 데리고 온 사람 중 50퍼센트가 다음 날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된 적이 있다. 그 뉴스를 보고 어떤 사람은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왜 소용없는 짓을 하는 거야”라고 했지만, 바로 이 말에 마더 테레사가 의도한 사업의 목적이 있다. 비록 하루밖에 살지 못하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아주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소노 아야코가 볼리비아에서 만난 두 신부. 그들은 신학 연구자가 꿈이었으나 지금은 안데스산지의 인디오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신학자의 길을 포기한 이유는 이런 것이었다. “바로 눈앞에 지금 당장 구제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정도의 긴급한 빈곤이 있기 때문에.”
∞ 차례추천의 글(월드비전 박종삼 회장)
- 빈곤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
- 진실은 먹을 게 없다는 것이다
- 아이든 어른이든 강한 자가 많이 먹는다
- 뜨거운 바다와 추운 아프리카
- 벽이 없어도 지붕이 없어도 집이다
- 지도도 시계도 자도 없는 삶
- 빈곤이 만들어내는 몰염치
- 아이들은 어떻게 에이즈에 감염되는가
- 피부색이 결정하는 가난
- 만성적 빈곤에는 원조가 없다
- 학교에 갈 수 없는 이유
- 차별당하는 줄도 모른다
- 상상을 초월하는 도둑질
-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쳇바퀴
- 아프리카, 바닥 없는 늪의 깊은 모순
- 가로채어지는 돈
- 기부금 전달의 어려움
- 내가 빈곤의 땅을 가는 이유
∞ 지은이저자
소노 아야코曾野綾子
1931년 도쿄 출생.
1954년 《멀리서 온 손님》이 아쿠타가와상 후보가 되면서 화려하게 문단에 등단.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는 소설가이자, 수십년간 전세계 100개국 이상을 돌아다닌 NGO활동가.대표작으로 《이름 없는 비석》, 《누구를 위하여 사랑하는가》, 《나는 이렇게 나이들고 싶다(소노 아야코의 계로록戒老錄)》, 《행복하게 나이드는 비결(소노 아야코의 중년 이후中年以後)》, 《사람으로부터 편안해지는 법(소노 아야코의 경우록敬友錄)》, 《긍정적으로 사는 즐거움》, 《오늘을 감사하며》, 《세상의 그늘에서 행복을 보다》, 《부부 그 신비한 관계》, 《마음에 와닿는 성 바울의 말》 등 다수.
아시아·아프리카 국제봉사재단 이사, 일본문예가협회 이사, 해외일본인선교사 활동후원회 대표, 일본오케스트라연맹 이사를 역임, 일본재단 회장 역임.
로마 교황청에서 성십자가훈장 수상(1979년), 한국 한센병 사업연합회의 다미앵 신부상 수상(1983년), 한국 우경재단의 문화예술상 수상(1992년), 일본 예술원 은사상 수상(1993년), NHK 방송문화상 수상(1995년), 해외교포선교자활동지원후원회 대표로서 요시카와 에이지문화상 수상(1997년)과 요미우리 국제 협력상 수상(1997년), 문화 공로자로 선정(200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