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서풍이 부는 날'을 기다리며...

희망으로 2010. 3. 15. 23:40

바람이 불어옵니다.

저쪽 끝에서 이쪽으로 오는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는지

변덕스럽게도 왔다갔다 종잡을 수는 없지만 분명 불어옵니다.

우리네 사는 모양처럼!

 

어느 시절인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아침에 넥타이를 하늘로 날려버리며 불던 바람은

만만한 세상에 발을 내 딛는 즐거운 휘파람 같았습니다.

그런 시절엔 내 인생도 가정도 사회도 나라도 다 잘 될것 같았습니다.

하물며 사랑인들 힘들게 느껴질 이유 없었습니다.

어떤 여자든 고운 허리 당기면 안겨올 것 같았습니다!

 

숱한 언덕들을 넘느라 바람도 지치고 메마른 먼지도 담뿍 담기기 시작한 날부터

바람은 땀내를 머금었는지 짠내도 나고 무덥다가 시큼하기조차 했습니다.

누군들 그런 시절을 기다렸겠습니까?

그러나 많이 알기 시작하면서부터 두려움도 생기고 내뱉는 숨길도 거칠어졌습니다.

 

더 이상 내 양심에 고고함도 줄어들고 정의도 벅차지기 시작하면서 바람이 멀리서만 오갑니다

혼자도 당당하기 어려워지고 내놓을 것도 줄어들면서 먼길을 떠나고픈 유혹만 늘어갑니다.

바람은 등짝으로만 알랑거리고,

예전처럼 앞가슴 부딪치지 못하며 비겁하게 뒷골목으로 숨어지나는데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도화지 한장씩 들고 땅끝만 쳐다봅니다.

 

저 광야를 달려오는 초인은 보이지 않고 남은 세월은 얼마 없는데

빈손으로 이승을 떠나기란 얼마나 초라할지 목이 메입니다.

더 시간을 까먹고 있을수 없어 초조해지지만 이게 어디 성질로 이루어질 매듭입니까.

다시 한번 기다립니다. 장정의 팔뚝 힘줄처럼 나를 흥분시킬 바람 한 폭을!

 

서풍아 불어라! 쫀쫀함과 주눅들어 주저 앉은 청춘을 벌떡 일으키는 폭풍으로!

서풍아 불어라! 너를 잡고 망설임 없이 무릎에 힘주고 일어나 보는거지!

까짓거 대차게 한번 태워보고 세상 뒤집어 놓지못하면 그냥 연기 한줌으로 사라지는거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날들, 추한 일들이 줄을 잇고 나는 맥도 못추는데,

누구나 오고가는 이생이 뭐 그리 대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