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우리는 모두 주연이지만 스스로 조연이 되어...

희망으로 2010. 2. 4. 23:22

우리는 모두 장편 소설책의 주인공들입니다.

각자가 자기 책의 주연이면서 동시에 다른 책의 조연이기도합니다.

 

이것에는 한가지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 누구도 남의 책에 들어가 주연 노릇을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고 폭력입니다.

또한 계속 세상이 유지되지 못하고 혼란으로 끝장이 날수도 있는 재앙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그렇게 하는 사람들, 집단, 국가가 종종 있습니다.

결국은 피와 통곡의 상처를 오래도록 안고 힘들게 살게되었습니다.

 

이것은 개인 사이에 일어나도 죄악이요. 가족 안에서 일어나도 죄악입니다.

집단과 집단 사이에도 말할것 없고 국가와 국가 사이에도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날 곳과 시간을 정해서 태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비극이 시작되기도 합니다.

 

케냐에는 쓰레기 더미에서 쓰레기를 주우며 십년 이십년을 사는 가족들이 많습니다.

대를 물리며 벗어나지 못하고 발목이 잡혀 일생을 사는 극빈층이 70%나 됩니다.

과연 그들중에 그곳에 태어나기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있을까요?

만약에 능력있고 교양있게 산다는 우리 자신들이 그곳에 태어났다면

그들과 다르게 벗어나면서 헤쳐나갈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포탄이 쏟아지고 자고나면 가족이 죽어가는 이라크에 태어났더라면

아무리 영리하고 체력이 뛰어난들 몇명이나  그 아수라장을 벗어나 지금처럼 살수 있을까요?

 

개인의 능력이나 성품, 노력이 얼마나 무력하고 굴레를 벗어나기 힘든것인지 알게됩니다.

시간만 마음대로 선택할수 있어도 좀 해결책이 있겠지만 그것도 손 밖입니다.

 

그래서 어디서 언제 태어나도 크게 장래가 달라지지 않을수 있도록 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가 해야 할 의무입니다.

그길이 또한 속수무책으로 운명이라는 재앙에 빠지지 않고 우리를 지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지금 내가 누리는 안정과 지위가 반드시 나의 능력이나 노력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의 조연이 힘쓴 덕일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면서 주연급을 포기하고 조연급으로 살은 사람들 말입니다.

 

남의 책에 뛰어들어 주연 행세를 하는 불행을 바로 잡으려면

또 한사람의 주연을 포기하는 자세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산티아고라는 순례길이 있습니다.

스페인의 끝에 있어서 멀리는 2000km, 짧아도 최소 100km는 넘게 걸어야 안정해주는 순례길입니다.

그 길을 순전히 걸어서 성 야고보 성당과 광장에 도착하면 눈물과 환호성으로 펄쩍들 뜁니다.

 

그런데 자동차를 타고 온 사람들은 절대 그 성취감과 감동을 느낄수 없습니다.

인정하는 스탬프와 증서도 주지 않지만 설사 누가 주어도 본인이 감동을 가질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진리가 작동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여행이 그렇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는 힘도 넘치고 의욕도 넘쳐서 팔팔하지만

갈수록 지치고 힘도 줄어들면서 고비를 겪습니다.

 

그러나 반비례로 그 고단함과 여로의 불편들이 수월해져갑니다.

그것이 경력자의 요령이고 적응이며 다음 여행과 무한여행을 가능하게합니다.

 

이제 어느 정도 온 여행자 처럼 아무데나 힘만 쓰는 단계는 넘어야 할 시기입니다.

또한 자동차로 편히 도착하여 결과만 즐기는 무임승차 같은 삶은 살지않도록 경계합시다.

절대로 내 것이 될수없는 감동은 서글픔만 남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불행도,

사회니 국가의 불행도,

원한 것도 선택한 것도 아니지만 공평한 장래를 위해서 할일은 누구나 같습니다.

각자 주연 답게 최선을 다하다가 마지막페이지가 끝나면 사라지는 겁니다.

다만 다른 주연들에게 영향을 주고가는 멋진 주연이 되는 길을 가기를 원할뿐입니다.

 

주연 여러분들 아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