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일기 내 안에 머무는 것들

서로에게 살 이유와 힘을 주는 고마운 존재로

희망으로 2025. 4. 9. 06:07

‘서로가 살아야 할 힘이 되어 주는 고마운 존재‘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나버렸다
2013년 막내딸이 청주로 옮겨 고등학교를 다녀야할
자취생활을 시작하면서 마련했으니… 햇수로13년째다
그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돌았다
마치 산 사람이 심장활동을 멈추지 않고 뛰는 것처럼
문제는 며칠을 열 일이 없어 냅두었는데
그 안의 냉동 냉장 보관하던 모든 식품이 상한 것이다
아껴먹느라 보관하던 고기종류와 각종 야채, 생선 등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아깝지만 먹다가 탈이 날까봐 모두 버렸다
힘들면서 다시 마련할 형편은 안되고
김치 냉장고 없이 살 조금의 걱정과
심란한 불안이 계속 내 속을 건드렸나보다

밤 사이에 꿈에 시달렸다
어디선가 생존하던 일터가 망해서 갑자기 옷가방 하나들고
아무 대책도 갈 곳도 없이 세상으로 나오게 생겼다
가진 돈도 없는데… 당장 밥 먹을 돈도 잘 곳도 없다
아는 분에게 매달렸다
교회 기관에서 일하는 분이라 많은 목사님들을 아시니
그중에 무슨 일이든 하며 지낼 곳을 좀 소개해달라고
부탁을 하는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길에서 남의 집 처마 아래 앉아서.
당연히 쉽지 않고 전화기 너머로 난감한 대답이 들렸다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사정하는 맘으로
전화 통화내내 마음을 조이며 시달렸다

꿈속에서도 다른 생각이 가능한 것을 처음 알았다
총각시절 다니던 교회에 군대를 제대한 친구가
막연한 상태로 돌아와 교회 다락방에서 지냈다
겨울이 다가오고 막일을 다니며 직장을 구하던
그 친구가 너무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없어
내가 살던 자취방에 얹혀 살기 시작했다
자기 먹는 생활비 일부를 막노동으로 벌어 내놓으면서
그러다 먼 지역으로 직장때문에 내가 옮기게되어
그 자취방의 보증금과 살림 모두를 그 친구에게 주고
나는 맨몸으로 새 살림을 시작했었다
새 직장이 있으니 조금씩 마련하면 가능해보여서.

생존.
그 막다른 길의 상황은 많은 고상한 꿈과
어떤 면에서는 철저한 믿음의 종교적 상태마저도
허무하거나 무기력하게 만들곤 한다
그 불안함과 난감한 처지에 빠져보면 알게 된다

나에게는 어쩌다 아픈 아내에게 도움이 되라고
키우게 된 고양이가 하나 있다
생후 넉달된 시기에 동물유기보호소에서 우리집으로 왔다
이 아이는 무위도식이다
아무 벌이도 안하고 생산적인 결과도 없다
그저 먹고 아프면 비싼 동물병원치료도 받아야하고
그럼에도 화장실 모래비용이랑 사료 장난감 등 돈이 든다
한마디로 자기는 살 걱정을 안하고 살지만
나는 그 생존, 생명줄이 되어 책임을 지고 있다
물론 길거리에 내보낸다고 하루 이틀만에 죽지야 않겠지만
지금의 보장된 생활에 비하면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길고양이가 집에서 살 경우보다 수명이 짧다
거의 절반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는 설명이 있다

그런데 묘하다
이 고양이가 밤이면 곁에 누워 때론 내 팔을 베고 잔다
낮에도 나를 빙빙돌며 놀아달라고 떼를 부리거나
장난을 걸어오며 나를 웃게하고 세상을 잊게 한다
시름과 온갖 걱정과 불안, 여러 미움과 슬픔도 깜박 없앤다
그래서 기꺼이 이 아이에게 들어가는 비용과
여러 수고들을 억지로 하지 않고 기쁨으로 하게 한다
문득 아내가 많이 아파 아주 어려웠을 때
내가 죽지 않고 살 힘을 계속 내도록 한 우리 아이들 같았다
해야할 일, 각오하고 감당하게 한 아이들 덕분에
숱한 자살의 충동과 살 의욕이 없는 허무한 슬픔을 넘겼다
누군가의 생명줄이 되어 내가 살 힘이 나게 하는 원리
그 신비한 법칙은 알게 모르게 모두에게 큰 위로가 되어 왔다

막내딸이 어제도 병원을 다녀왔다고 아이 엄마와 통화하는 걸
곁에서 들었다. 긴 우울증 치료를 받는 중인데 약을 타러 갔다고.
나도 가슴이 저리다. 나도 십년이 넘도록 우울증 공황장애로
아직도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는 중인데 딸도 그렇다니…
우울증도 일면 유전성이 있다고 얼핏 들었다
물론 그 이상으로 다른 요인이 있지만.
공연히 내 잘못도 있을거라는 미안함이 늘 속에 있다
뭘까? 막내딸에게 깊이 그늘을 내리고 힘들게 하는 것들이?
학업에 대한 부담과 생존이 벅차서 불안한걸까?
철학적 허무나 사람관계에서 오는 까다로움과 아쉬움일까?
어쩌면 그 여러 원인들이 한번에 몰려오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도 내 속을 다 몰라서 원인을 몇가지 예상은 해도
쉽게 몇번의 상담이나 몇달의 약물치료로 없어지지 않는
지독한 불면과 숨쉬기 힘든 공포가 여전한 것처럼 미스테리일지도.

그러나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작고 큰 위로를 주며
생존을 버티고 기꺼이 견디게하는 존재로 산다는 것을.
내가 힘들 때 나를 견디게 한 너처럼 또 누가 너에게 그럴것이고
지금 현재도 너의 존재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너가 키우고 있는 고양이 깨봉이가 너를 의지하며
동시에 너에게 잠시 잠시 위로를 동시에 주면서
하루 하루 살아서 버텨주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에게 생명줄이 되는 그 하나 만으로도
많은 힘겨운 부담과 무기력, 우울증을 감당하며 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는 책임자인 동시에 남에게 위로와 살 이유가 되고 있어서.
최후의 경우는 자기가 자기 생명에게 그 두가지 역할을
동시에 해야하는지도 모른다. 가능하기도 하고.
생명은 태어나면 그런 대접을 받을만한 귀한 존재고
남에게 그런 역할을 해낼 신비한 존재니까!

부디 우리에게 날마다 닥치는 자살 충동과
그 비슷한 삶의 무기력 우울함 온갖 걱정 불안의 파도를
잘 감당하며 생명이 자연스럽게 마치는 날까지 살기를
오늘 꿈을 통한 경험과 생각으로 기도한다
오늘도 하루를 기꺼이 살아보자고!

(어제는 아픈 아내를 데리고 가까운 무심천을 다녀왔다
벚꽃과 튤립이 참 예쁘게 피어 이 세상을 지나가고 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