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76 - 은총
‘주무시나요?
왜 안 들어주시나요?’
처음 아내가 희귀난치병 진단을 받고
온몸이 나무토막처럼 마비되었을 때
정말 밤낮없이 종일 기도했었습니다
그렇게 한달 가까이 되었을 때
내 몸은 마른 가지처럼 살이 빠져 뼈만 남았고
내 건강을 걱정한 영양학을 전공한 기도원 원장님은
정작 아픈 아내보다 내가 더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모든 곳에 계시고
언제라도 다 듣고 계신다던 하나님은
내 기도에는 아무 대답도 없었고
생사의 문턱을 오가는 아내의 병세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수십년이 지나며 이제 조금씩 알아갑니다
어디든지 갈 수 있지만 아무 곳이나 가지는 않고
무엇도 할 수 있는 분이지만
십자가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분이었음을…
주여! 주여! 해도 천국문은 다 들어가지 못하며
나는 죄인입니다! 구석에 숨는 사람도
픔어 안으시며 용서하시는 분임을!
무소식의 그 긴 세월을 보내고
그럼에도 굶거나 얼어죽지도 않고
내리막으로 금방 끝날 것 같던 생명을
마치 브레이크 같이 멈추어 주셨다는 걸
어느날 문득 알았습니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당신을 믿는다며
아우슈비츠 가스실에서 죽어간 유태인의 고백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늦었지만 이제 감사를 드립니다
몰랐고 조급해서 그랬지만
원망과 불신에도 불구하고 늘 붙잡아주고 계셨던
그 느리고 긴 사랑의 진실을 인정합니다
원하는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선택하는 하나님의 자비로 구함을 받는 사실에
그저 감사기도를 드릴수밖에 없음을!
그래서 은총임을…
(2023.4.1 맑은 고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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