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큰일날뻔 했다! 열 일 하시는 하나님께

희망으로 2020. 2. 2. 07:46

<큰일날뻔했다. 열 일 하시는 하나님께>


‘내속에는 내가 너무도 많아...’ 

하덕규목사님의 노래 ‘가시나무새’ 가사처럼

내속에는 또 다른 내가 있다.

‘하나님이 계심’을 간절히 믿는 나와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를 수시로 꺼집어내는 나로.


자기 전 단잠을 주시길 기도하는데 또 다른 내가 툭툭 시비를 걸며 나온다.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혹시... 안계시는 거 아냐?’

너른 벼이삭 속에 섞인 피나 잡초는 내버려두면 퍼져서 논을 망친다는데

또 다른 나는 불신의 무익함으로 믿는 나의 평안을 흐트러 놓는다.

아차!싶어 이내 머리를 흔들며 ‘씨잘데기 없는!’ 단호하게 밀어내었다.


누군가 하나님은 안계신다고 우겨 말하면 난 이렇게 말할거다.

“너는 하나님이 안계신 증명을 해봐라! 

난 하나님이 계신걸 증명할수있으니까!”

어떻게 증명하느냐고?

나는 기도를 드리면 내속에 사르르 봄날 날씨처럼 포근하게

퍼지는 하나님의 체온과 향기를 경험한다.

마치 작고 초라한 집이지만 불이켜진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

그들의 감사기도와 웃음이 창문을 넘어 퍼지는 것을 보는 느낌.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는구나! 안심한다.

너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고나면 네 속이 어떤데?

무엇이 남고 무슨 소리가 들리는데? 

마치 자기힘으로 성공해 얻은 넓은 집에 아무도 없이 

먼지와 어둠이 섞여버린 침묵과 고립만 모서리마다 가득한 느낌?

그런 하나님 없다는 선택의 그림은 별로 부럽지는 않아보인다.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나는 기도를 드리면 

살다가 만나는 어떤 일도 다 받아들일수 있다.

물론 기도한다고 모든 일이 해결되거나 불행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내게 남는 두려움과 슬픔, 자책이라거나 무기력함은

열에 둘이나 셋만 내게 넘겨져 무지 가벼워진다.

왜냐하면 나머지 열에 일곱이나 여덟은 하나님이 감당해주시기 때문이다.

‘힘들고 이해는 못하지만... 뭔가 계획이 있어서 그러시겠지?

아직 오지 않은 시간과 안가본 곳이니 내가 이해를 못하지만

당연히 그 다음 단계는 더 좋은 일이 기다릴거야!’ 

라고 나는 기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고통도 슬픔도 시한부고 희망으로 견딜수 있지!

하나님이 없다고 믿고 사는 너는? 

분담해줄 하나님이 없으니 열에 열, 전부 네 몫이지?

니가 모든 일을 감당해야하고 책임과 좌절도 안아야지?

내가 못했다. 내가 졌다. 모든 것은 끝장이다! 는 마음외에

무슨 기대가 있을까? 

나 외에는 아무도 없다고 단정했으니 그럴수밖에...


병실의 건너편 침대에 누운 할머니가 연신 기침을 해댄다.

밤이 깊어 새벽 3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뒤척이며 잠을 못이루신다.

그 괴로움이 가려진 커튼 두 겹을 통과해 내게로 느껴진다.

저 할머니의 겉모습은 얼마나 초라하고 안타까운가?

연로하시고 병에 걸린 처지에 가족들도 곁에 안계신다.

바쁘거나 멀리 계셔서 그럴 수도 있고 굳이 오지말라고 했을수도 있다.

우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주하고 통과해야할 시기를 보는듯하다.

하지만 저 할머니의 속에는 부디 하나님이 계시길 빌어본다.

작고 초라한 처지지만 불켜진 식탁과 둘러앉은 가족들의 웃음이

창문을 넘어 나오는 따뜻한 그림이기를.

밀려오는 근심과 고통들 열에 둘셋만 감당하시고 나머지를 넘길

하나님이 계심을 철썩같이 믿는 분이기를! 그래서 평안하시길.


한가하게 남의 이야기를 할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같은 늦은 시간, 새벽 두 세시가 되도록 잠 못 이루는 내 처지에.

벌써 두달이 되도록 침대와 붙박이가 되고도 기운이 바닥나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는 아내는 온몸을 돌아가는 증상에 시달린다.

그걸 고스란이 지켜보며 온갖 방법을 동원해보는 내 심정도 그렇고.

그 틈을 노리는 또 다른 나의 나를 흔드는 유혹은 잦아지고 질기다.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혹시... 안계시면 어쩌려고?’ 찔러댄다.

그럼에도 고맙게 늘 지켜낸다. 하나님을 믿는 나와 하나님의 자리를!

흔들리는 그 순간마다 어떤 길, 누구를 통해서든 돕는 하나님덕분에.

그걸 깨닫는 순간 훅! 뭉클하며 눈물이 핑 돌것만 같다.

하나님의 통로되시는 모든 분과 모든 일과 모든 풍경에 감사하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지, 그래서 살아남고 그래서 평안을 유지했지!


나는 하나님이 좋다. 참 고맙다.

가끔은 삐치고 흔들리고 살짝 불안했다가도 

그러면 내가 다 짊어져야할 세상의 무게에 놀라 바로 돌아온다.

회심, 회개, 회복으로 다시 하나님의 허리와 다리를 꼭 붙잡는다.

‘미안해요, 하나님! 헤헤~’ 그러면서. 

큰일날뻔했다! 열 일을 하고 계시는 하나님께 실망을 드릴뻔 했다.

근심과 욕심은 자란다고 했다. 뼈를 마르게 하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

쇠의 녹은 쇠에서 생기지만 쇠를 다 잡아먹는다고 다른 종교도 말한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은총을 배신하는건 아니지 싶다.

내속에는 너무 많은 내가 있어 불안하지만 

그 많은 나보다 더 많은 하나님의 분신 역할과 출현이 있어 다행이다.

하나님 계심을 믿음으로 얻는 평안은 그 첫째 선물이자 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