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22. 11. 19. 22:34



‘난 몰랐습니다’

나는 몰랐습니다
왜 나만 유난히 남들보다
더 불리한 형편을 주고
왜 하필 내 아내에게
드물다는 질병을 주시는지
왜 나는 튼튼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보다 여리고 약한지를

나는 또 몰랐습니다
왜 나는 남보다 불리한 형편을
당하면 안되는지
왜 하필 내 아내만
아프지 않아야하는지
왜 나만 아브라함처럼 바울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타고나야하는지

나는 정말 몰랐습니다
나의 불리한 처지가
내 아내의 희귀한 질병이
내가 타고나지 못한 큰 믿음이
불행도 저주도 아닌
내 복의 도구요 은총이었음을
어느 시인의 시를 보며
닫힌 눈을 뜨고 감사를 드립니다




‘내등에 짐 - 정호승’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로 살지를 못했을 겁니다
내 등에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사랑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았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아직 미숙하게 살고 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가 내 삶의 무게가 되어
그것을 감당하게 하였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성숙시킨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몰랐을 것입니다
내 등의 짐 때문에 나는 늘 나를 낮추고
소박하게 살아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에게 기쁨을 전해준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물살이 센 냇물을 건널 때는
등에 짐이 있어야 물에 휩쓸리지 않고
화물차가 언덕을 오를 때는
짐을 실어야 헛바퀴가 돌지 않듯이
내 등의 짐이
나를 불의와 안일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게 했으며
삶의 고개 하나하나를 잘 넘게 하였습니다

내 나라의 짐 가족의 짐 직장의 짐 이웃과의 짐
가난의 짐 몸이 아픈 짐 슬픈 이별의 짐들이
내 삶을 감당하는 힘이 되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정호승시 #내등에짐 #내게주신고난도은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