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작은 기도

그저 기도 22 - 내 맘에 안든다고 미워하다가 당한 일

희망으로 2022. 7. 6. 07:11

’내 맘에 안든다고 미워하다가 당한 일’

“있잖아, 오늘 이상한 여자를 봤어!”
“뭐가 이상했는데?”
“세상에… 옷을 울긋불긋 무슨 무당복처럼 입고 마치 패션쇼하듯 돌아다니는거 있지!”

그렇게 낮에 본 나와 많이 다른 옷스타일의 사람을 아내에게 흉보듯 퇴근 후에 말하곤 했습니다. 또 어느날은 나와 정치나 종교에 대해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와! 뭔 그런 꽉 막히고 틀려먹은 사람이 다있어? 답답해 미치는 줄 알았네!”

그러면 아내는 ‘그랬구나’ 하듯 고개를 두어번 끄덕여주곤 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그저 같이 사는 사람에 대한 매너? 예의 정도였지 꼭 내 말이나 내 기준이 옳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여간 나는 그런 식으로 나와 생각이나 취향이 다르면 아예 다시 보는 거 자체를 불편해하고 멀리 했습니다. 말이 많으면 자기 혼자 다 한다고 속으로 비난하며 남에게도 기회를 주고 좀 듣기도 해야지! 라며 멀리 하는 이유로 삼았습니다. 또 반대로 너무 말이 없는 사람은 ‘무슨 폼을 저리 잡아?’ 하며 남을 경계하고 자기는 꽁꽁 싸매는 마음이 닫힌 사람처럼 매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내가 편하고 좋아할 정도의 비슷한 취향이라야 훌륭한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이런 이유로 차단하고 저런 이유로 멀리하면 남을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결과는 어떠했냐구요? 뻔하지요. 어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친구나 이웃이 늘어가는데 나는 그나마 있던 친구도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잘 지내다가도 중간에 한 번 삐긋하면 떨어져 나갔으니 점점 줄어들수밖에요 ㅠ

나와 같지 않다는 점이 불편해서 십수년이나 병원생활하며 한 방에서 지낸 사람들이 부지기수인데도 별로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사람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전에 본 어떤 분은 오랜 병원을 다니며 알게 된 사람들과 다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나중에도 안부를 주고 받는 활발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픈 사람들이 만난 병원 동기라는 특별한 공감대가 있어 어쩌면 더 가까워지고 외롭지 않게 교류할 수도 있는데 나는 그것도 잘 안되었습니다. 죄다 ‘이상한 사람’ 아니면 ‘뭔 그런 답답한 시람’ 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바람에 그랬습니다.

그냥 보지 않는 그런 정도는 괜찮지만 더러는 그 다른 점 때문에 불편하고 오래가는 미움의 이유가 되고 원수같이 멀리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만약 이게 남의 이야기라면 영락없이 나도 ‘참 딱한 사람’ 이라고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나를 중심으로 한 나쁜 기준, 모난 성격이 부메랑처럼 나에게 돌아와 된통 기죽은 적도 있습니다. 아내가 워낙 급한 상태가 되어 구급차로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자리도 없고 거절당해서 시멘트바닥에 내 팽겨진 때의 일입니다. 이미 구급차는 가고 없는데 도저히 받아줄 수 없다고 거절을 하는데 아내는 통증과 호흡불편으로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아무 응급조치도 안해줘서 따지다가 빌다가 방법이 없어 서럽고 눈물이 났습니다.

그때 거절한 병원에 대한 분한 마음도 있었지만 내 무력한 처지가 너무 한심해 더 서러웠습니다. 소위 의사라는 인맥이 사방팔방을 떠올려도 나에게는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 아님 비슷하게 도움을 청할 국회의원이나 유명인도 없고, 그렇다고 내 지갑에 돈이 넉넉하지도 않고… 아무 내세울 지푸라기도 하나 없다는 것, 그렇게 살았다는 내 한심한 처지가 온몸을 꽁꽁 감아서 질식할 것 같았습니다. 병원생활하는동안 보고 들은 지인 찬스를 사용해 빨리 치료받거나 입원병실로 들어가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이럴 때 이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한명만 인맥으로 알고 있어도 다른 길을 찾을 정보도 얻고 도움이 될텐데 하는 생각에 그랬습니다.

사람들이 말로는 요즘 병원규칙이 그 병원 원장 가족이라도 순서대로 입원병실을 기다려야하고 편법이 안먹힌다고 하지만 실상은 다른 여러 방법이 있다는 건 현실이었습니다. 나도 그런 비정상 혜택에 분노하는 사람이었는데도 너무 속수무책 시멘트바닥에 숨도 잘 못쉬는 아내환자를 대책없이 눕혀놓고 보니 그 비상수단조차 부러워졌습니다. 동시에 내 무기력한 존재가 그렇게 한심스러울수 없고 작아지기만 했습니다. 마치 흙속의 이름없는 벌레 한마리 같은 심정이 들었습니다.

그런 도움을 줄만한 사람들 위치에서 나를 바라보니 딱 그들 세계에서는 나는 턱없는 우스운 존재였습니다. 나와 다르면 모자라는 사람취급하던 그 상황이 바로 나에게 일어났습니다. 나는 도무지 대접할 이유도 등급도 안되는 못난 존재, 그런 이상한 사람, 뭔 답답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날밤 내가 응급실 의사들에게 대접받은 느낌이 딱 그 멀리하고 상종하지 않아도 당연한 대상이었습니다.

문득 그런 사고방식으로 남을 보지 않고 오히려 남들과 다르다는 처지를 안쓰러이 여겨 귀하게 상대해준 사람이 생각났습니다. 남들이 손가락질하는데도 생존을 위해 모른척 외면하며 돈을 벌었던 사람. 키가 작아 남들이 앞을 가리면 저만치 셜교자가 안보여 뽕나무에 올라가서 봐야 했던 세리 삭개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내려오라하고 그의 집에서 같이 저녁도 먹어주었습니다. 혹 잘난 사람들이 예수를 비웃고 딴지를 거는데도 불구하고 그랬습니다. 감동한 삭개오는 자기가 잘못 번 재물이 있다면 나누어주겠다고 아름다운 결심도 했습니다.

또 어느 여인은 서방님을 다섯이나 차례로 두었지만 불행이 끝이 없어 여전히 외롭고 힘겹게 살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남자 잡아먹는 여자라고 수군거리고 냉소적으로 대했고 늘 목마른 사람처럼 갈증을 달고 살았는데 예수님은 그녀의 가문과 과거를 무시하고 그에게 물을 얻어마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진리를 알려줍니다. 사마리안 사람인 그녀는 어쩌면 좀처럼 경험하지못한 인간의 대접을 받고 감동합니다. 이웃들도 자기들처럼 살지 않았다고 외면하는데 예수님은 그 외면을 넘어서 영혼을 달래주신겁니다.

간음하다 한때 상대였을지 모를 남정네와 여편네들에게 잡혀 광장에 끌려온 창녀. 돌 맞아 죽기 전에 나타나 ‘죄 없는 자부터 돌을 던져라!’는 말 한마디로 구해주었습니다. 간음은 혼자는 못하는 일인데 그 남자들이 밤과 달리 낮에는 입장을 바꿔 정죄를 하고 여자들은 질투와 쌓인 울분을 그 창녀에게 모두 쏟아놓는 차별 대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너와 다르다! 하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나중에 그 창녀가 모든 재산을 털어 옥합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장례준비를 미리 했다던가? 그렇게 일생에 처음 대접받고 목숨을 구해준 분에게 감사를 드렸다는 뒷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예수님은 이런 심정이었을겁니다. ‘니들은 다른 사람과 달라!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진심과 순수성이 있지! 난 그래서 니들이 참 좋아!’ 라고. 비단옷을 입고 향수를 뿌린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이들은 궁전에 있지! 난 그들이 아니라 니들을 보러 세상에 왔어!‘ 라는 말도 덧붙여 해주셨다던가? 그랬습니다.

그러고보니 나도 아무 인맥도 가진 돈도 방법도 없어 병든 아내가 시멘트바닥에 내버려진 그 시기를 넘기고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고비에 다시는 몰리지 않고 잘 지내기도 합니다. 그날 그 자리는 슬펐지만 좀 지나서 보니 아주 외면 당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더 나가 그 이후로도 무슨 보이지 않는 긴급 구호까지 계속 받고 있나 봅니다. 예수님이 파견한 투명천사들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 세월을 겪으면서 나도 조금은 변해갑니다. 나와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멀리하거나 미워하는 이유로 삼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내생각과 다른 사람의 말도 들어주려하고 옷 스타일이나 취향이 다른 사람에게서도 새로운 경험이나 숨은 재미를 발견하는 기회다 싶어 호기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아직은 아주 잘 어울리지는 못하지만 내 문턱을 낮추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친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보여주셨던 잣대와 참 포옹의 마음을 생각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