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19 - 남자들의 동굴, 왜 필요할까?
그저 기도 19 - ‘남자들의 동굴, 왜 필요할까?’
“아빠! 뭐해?”
“응, 불 때는 거야“
”왜?“
그때 아내가 그랬다.
”아빠 놔둬라! 지금 동굴로 들어가는 중이셔!“
하루에 버스가 몇 번 들어오지 않는 충주 아주 외진 시골 산 아래 오래된 흙집을 고쳐서 십년쯤 살던 시절이었다. 나무 대문에 연달아 작은 사랑채가 하나 있었고 그 방 아래 구들을 데우는 큰 가마솥이 있었다. 아랫목 장판이 시커멓게 타 있을 정도로 뜨거워지는 황토방의 아궁이는 정말 불을 잘 빨아댕겼다. 뒤쪽 굴뚝으로 연기와 더운 불기운이 빠르게 빠져나가는 그 장작을 집어넣는 아궁이는 나의 동굴이었다.
아내는 종종 그 쇠가마솥에 물을 부어넣고 잔가지와 신문지 몇장, 마른 장작 몇개를 안고와서 아궁이 앞에 앉는 나를 보면 눈치를 채곤 했다. ‘무슨 일 있어?’ 묻기도 했었다. ‘그냥…’ 늘 대답은 그렇게 하고 말지만 대부분은 뭔가 마땅찮은 일이나 누군가 밉거나, 그도 아님 모자라는 생활비 돈 걱정을 할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만드는 동굴이었다. 그때는 그런 생각을 못했지만.
활활타들어가는 아궁이속의 장작을 보고 있으면 속이 후련해지기도하고, 여러 이유로 참느라 바깥으로 내놓지 못한 감정의 찌꺼기 등도 빨려들어가 타버리는 시원함도 있었다. 불을 보며 느끼는 쾌감에 행여 중독될까봐 살짝 두려움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거의 해소가 주는 평안이 더 많았다.
남자들은 살다 종종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 간다. 깊이 생각할 일이 생기거나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 마주칠 때, 또는 어떤 결심을 해야할 때. 그냥 사는 게 너무 허무하고 울적해서 짜증날 때도 동굴을 만들거나 이미 만든 동굴을 찾아 마음의 안식을 회복한다. 작게는 직장인들이 옥상으로 올라가 커피 한 잔을 마시거나 담배 한 대를 피며 자기를 정제하는 모습도 있고 크게는 정치인들이 큰 결단을 내리기 위해 백두대간 산행을 하는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그 동굴이 낚시나 만화방이기도 하고, 영화관이거나 차를 타고 가는 드라이브 시간이 되기도 한다. 다른 이들이 말을 걸거나 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편하고 조용히 자기 감정 자기 생각에 몰입할 수 있는 곳이면 다 동굴이 될 수 있다. 동굴중 반복되면서 후유증이 심해지는 술과 마약, 경마장, 도박장등은 중독을 부르기도 하는 최악의 동굴들이다.
나 같은 경우는 요즘은 걷는 시간이 나의 동굴 같다는 기분이 든다. 몸이 좀 힘들 정도의 두어시간 걷는 동안 이런 저런 얽힌 감정의 실타래도 풀고 해야할 일의 우선 순위도 정리한다. 아주 새로운 소득은 글을 쓸 묵상을 하기가 좋다는 것을 안 경험이다. 아무도 중간에 흐트려놓지 않고 끼어들지도 않아서 어떤 주제나 키워드, 때로는 성경구절의 참 의미를 깊게 사색하기에 너무 좋다. 이 정도 되니 나의 동굴은 때때로 나의 골방이 되고 기도실도 된다.
그러고보니 이 습관은 아내가 병상에서 투병하면서 생긴 것 같다. 병원에서 날마다 저녁때쯤 되면 녹초가 되고 두려움과 불안이 뒤섞인 무거운 감정이 마치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종일 버틴 사람처럼 고단함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밤길을 몇시간이고 계속 걸으면서 온갖 말과 감정 원망을 쏟아놓았다. 하소연이 되기도하고 간절한 구조요청의 소원이 되기도 하고 그저 비명이고 신음이 되기도 했었다. 그런 일상이 십여년이 넘어가며 좀 차분해진 모양이 지금의 길 걷기가 되었다. 나의 동굴과 나의 골방이 하나가 되기 시작했다.
남자가 동굴을 만들고 피신하는 과정은 정말 유익하고 꼭 필요하다. 만약 그 동굴이 없다면 세상의 많은 장소가 바로 전쟁터가 되고 정제되지 못한 감정,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들이 무수한 피투성이 난장판을 만들지도 모른다. 상대도 다치고 본인도 피투성이 중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다시 거두지 못할 상처의 말들을 쏟아놓다가 관계는 깨어지고 원수가 되어 각자가 지독한 고립의 감옥에 모두 갇혀버리는 지옥이 될지도…
부디 그 동굴이 나쁜 중독성 대상만 아니기를, 그런 장소를 반복해서 찾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혼자 아무에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차분하게 정서를 가라앉히고 난 후 나의 말, 나의 행동을 돌아보거나 다른 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지 정한다면 큰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몇시간이고 책을 읽으며 푹 빠져서 내 중심의 감정 생각 습관에서 조금만 자유로워진 객관적 시각으로 무언가를 대하면 이전과 다른 반응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결정을 내린다면 착오나 아집의 위험도 훨씬 줄어들테니.
나는 나의 동굴이 나의 골방과 하나가 된 것을 아주 감사히 받아들인다. 그 방법이 길을 걷고 자연을 느끼며 힘을 얻는 것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도 무지 감사한다. 큰 돈 안들어가고 보너스로 몸의 건강도 얻어지니까! 다큐나 유튜브 영화 책 등에서 새로운 걷기 좋은 길과 장소를 보면 막 가슴이 설레인다. 저 길을 걷는 날이 오면 너무 좋겠다! 꼭 한 번 저 곳을 가고 싶다! 는 버킷리스트 추가의 기쁨으로.
우리 모두의 동굴이 우리를 안전하게 마지막 날까지 이끌어주기를 빌며 특히 신자들에게는 그 동굴이 골방과 하나가 되고 그 시간이 기도하는 시간과 다르지 않기를 빈다. 동굴에서 보내는 마음과 믿음의 골방에서 내놓는 말이 많이 다르다면 우리는 이중적 생활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아야 사는 기쁨과 드리는 감사가 하나가 되고 바라는 소원과 세상에 전하는 진리가 하나가 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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