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15 -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 안된다구요?
그저 기도 15 - ‘여기가 좋사오니 초막 셋… 안된다구요?’
‘늘 오늘만 같았으면…‘
정말 기분이 좋았다. 흐르는 땀을 싸악~ 씻어가는 솔솔 바람과 커다란 나무가 만들어준 그늘 아래 앉아서 멀리 대청호수와 숲들을 바라보았다. 그 짧은 쉼과 자연속에 머무르는 평안이 꿈과 같고 행운처럼 아찔했다. ‘이대로 며칠만 있었으면 너무 좋겠다’ 혼자 속으로 샘솟는 소원이 그치지 않았다.
지겨운 병원생활에 지쳐가던 중 고마운 아내의 친구가 하루 간병을 자청해주셨다. 몇년만인지 기억도 감감할 때 주어진 선물같은 하루 휴가가 믿기지 않았다. 유료 간병인을 구하고 한달에 두 번씩 쉬는 옆 침대의 간병인이 너무도 부럽기도 했었던 참이라 더 그랬다. 아내는 모르는 남이 돌보는 간병은 혼자 지내기보다 불편하고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내겐 그림속 음식같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근데 맘편한 친구와 지내니 문제가 없어진 거다.
주어진 9시간 정도의 휴가를 감안해 고른 일정은 차로 한시간 정도 거리의 대전에 있는 계족산 산행이었다. 오가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산행 서너시간을 빠듯하게 움직이면 약속한 귀가시간 오후 5시를 맞출 수 있었다. 아침 9시에 나와 오후 5시 귀가하는 몇년만의 하루 자유라니! 그분이 서울서 내려오고 올라갈 일정에 맟추어야해서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한 달에 한 번씩도 가능한 이 나들이가 내게는 10년에 한 번이나 기껏 두 번이라니…’ 안하면 더 좋을 사실 기억은 나를 슬프게도 만들고 째깍! 째깍! 가고 있는 사간마저 아까워 몸을 달게 했다. ‘왜 나는 그걸 평범한 기쁨도 누리면 안되는 벌을 받아야 하는걸까?’ 거기까지 미치자 속상하고 서러웠다.
‘저 여기서 살고 싶어요!’ 속으로 막 소리치고 나니…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예수님과 변화산에 오른 제자가 감동을 받아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여기서 살아요! 예수님!’ 했던 그 장면. 얼마나 기쁘고 간절했을까? [마태복음 17: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모세와 예수님이 환하게 빛으로 변해 주고 받는 장면은 얼마나 당당하고 경이로웠을까? 누구라도 그 감동의 자리에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저 아래 세상에 내려가면 온갖 험한 생존경쟁과 마음 다른 사람들과 부대낌, 그 생활이 지겹고 두렵기도 했을테니.
그러나 제자들을 데리고 산 위로 올라가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신 예수님은 다시 그들을 데리고 산 아래 삶의 현장으로 내려오셨다. 예수님은 단호했고 그 감동 그 소원은 거기서 끝이었다. ‘내려가자!’ 예수님은 그렇게 딱 잘라서 다시 시정의 세상으로 가야한다는 결심은 하늘에서 들려온 말이 대신했다.
그러나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이 하나님의 음성은 예수께서 가시는 그 수난의 길이 하나님의 길이라는 걸,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그 길을 가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서 내려오셨다.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제자의 소원은 물거품이었고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내 감정과 내 소원이 그 상황과 겹쳐서 떠올랐다. 다시 지겨운 병원으로 돌아가 아내 하나를 붙들고 간병으로 종일을 보내고 해를 보내는 생활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지고 싫은 느낌이 몰려왔다. 안갈수만 있다면… 멀리 아무도 모르는 인도 같은 곳으로 도망이라도 치고 싶은 충동도 스물거렸다. 정말 자유롭게, 맘도 몸도 좀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간절한 내 소원이 무슨 큰 범죄도 아닌데… 싶었다.
예수님은 말로 자세히 설명은 안했지만 분명한 이유를 담고 있었다. 아무리 성실하게 살아도 고통은 불행이라는 이름으로 시도 때도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운명이며 본질이다. 죽음이 생명의 일부이듯 고난도 삶의 한 부분이다. 마치 두 개의 수레바퀴가 수레를 유지하고 앞으로 갈 수 있게하는 원리와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누구나 그것을 감내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십자가의 무거움이 부활의 한 기둥인 것과 같은 원리다.
이해인 수녀는 이런 시를 통해 그 진리를 표현했다. "삶은 / 갈수록 무거운데 / 나는 갈수록 / 가벼운 것만 좋아하니 어쩌나? // 옷도 가벼운 게 좋고 / 책도 가벼운 게 좋고 / 이야기도 가벼운 게 좋고 / 때로는 무거워야 할 기도조차도 / 가벼운 게 좋으니 어떡하지?" - ‘가벼운 게 좋아서’ 중에서.
안전과 평온함, 기쁨과 감동속에서 살고 싶은 인간 본능의 욕구와 살아 있는 생명이기에 필연적으로 감당햐야만 하는 수고와 고난과 두려움 등을 동시에 지고 가야하는 삶. 그 두개의 기둥이 우리의 숙명이고 한편으로는 그 두 개의 바퀴가 있어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진리도 받아들여야 한다. 좌절의 순간이 없으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거나 인식할 수 없게 된다. 부족함과 무력한 순간이야말로 하나님과 영원한 세상을 바라고 믿게되는 필수적 토대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거리를 편하게 받아 먹기만 하다가 나는 법을 잊고 먹이를 구하는 본능이 사라져 죽어간 영국 해안 관광지의 갈매기떼, 혹은 길고양이들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다. 그 공포스러운 마지막을 떠올리며 산에서 내려올 결심을 했다. 다시 내려가자. 수고와 눈물과 고단함이 나를 기다리지만 또 다른 입장의 아내는 나의 귀가가 희망이고 안전이며 감사가 될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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