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14 - 그날이 그날인 복도 있다
그저 기도 14 - 그날이 그날인 복도 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출근하고 퇴근하고…
그렇게 오늘이 어제같고 내일도 오늘같을 게 뻔한 직장생활이 지겨웠던 젊은 날이 있었다. 한달을 채우고 월급을 받고 길면 열흘, 빠르면 이삼일만에 주머니가 텅텅 비기도 했던 그 시절에는 왜 그리 시간은 안가는지…
저축이라고 애쓰며 모아도 소용이 없었다. 두 서너달 쥐꼬리만큼 모이면 꼭 무슨 일이 생겨 그걸 탈탈 털어갔다. 좋은 일도 생기고 슬픈 일도 터졌다. 남들은 집도 사고 차도 사고 해외여행도 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미래를 예상해보면 캄캄했다. 몇백년쯤 산다면 간신히 꿈이나 꾸어볼 너무 가난하고 너무 평범한 내 처지였다.
그 지겨운 생존의 시간들은 마치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는 무한반복 영상이라도 보는 느낌이었는데… 세월이 많이 흘러 나에게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내가 부모가 되고 내 아이들이 그때의 젊은 내 나이쯤으로 객지에서 뿔뿔이 살아가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 늘 비는 내 말의 내용에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랐다.
‘부디 내 아이들이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게 해주세요! 대박 터지는 부자 못되어도 좋으니 생활하는데 곤란하지 않을 정도만이라도 유지하게 해주세요! 승승장구 초고속 승진을 못하고 이름 날리는 유명인이 못되어도 좋으니 그저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하루하루 보내게만 해주세요! 작은 몸살감기 정도야 아프더라도 부디 큰 병 걸리는 일없이 지내도록 해주세요!‘ 등…
그러니까 내가 젊은 날에는 미래도 꿈꿀 수 없고 너무 평범한 재능에 평범한 날들만 보내야 했던 것이 온통 불평사항이었다. 좀 뛰어나지 못하고 좀 특별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 마치 신에게 외면당한 사람 심정이었다. 그런데 내 아이들에게 그런 불평했던 평범한 날을 부디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니... 그것도 마지 못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기도 제목으로.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 지겹던 보통의 날들이 가장 큰 소원의 날로 180도 바뀌는 걸까? 혹시 남들은 나이들어도 안 변하는데 나만 별나게 소원이 바뀌는 걸까? 아니면 내가 별나게 험한 고통의 길을 지나왔기 때문에 나만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여러 질문이 꼬리를 물고 생긴다.
내가 그렇게 평범한 복을 빌게 된 한가지 짐작되는 이유는 있다. 희귀난치병이 든 아내를 데리고 십년이 훨씬 넘는 세월을 이 병원 저 병원을 떠도는 생활에서 겪은 일이다. 내가 만난 그들이 하나같이 간절히 구하는 소원은 아프기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분명 지겹다 희망도 없다 불평했을지 모를 그런 날이다.
눈물 글썽이며 표현하는 내용은 아침이면 일어나 일터로 가고 저녁이면 집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잠에 드는 것. 그 어제같은 날이 오늘도 내일도 계속되는 소원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불행하게도 그 소원의 날로 완전히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더 많았다. 마음이 아팠다.
그런 사람들을 많이 보고 겪으면서 일상을 사는 평범한 보통의 날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우리 아이들이 미리 알았으면 정말 좋겠다. 자기 몸 스스로 움직여 일하고 틈나면 나들이 하고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는 그 소중한 복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그리고 그 복을 상실하지 않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이런 기도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마 우리 아이들은 픽! 웃으며 그게 무슨 소원이고 복이냐고 할지 모른다. 좀 더 뛰어나고 남다른 멋진 소원을 빌어주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그날이 그날이고 오늘이 어제같은 날이 계속되기를 소원으로 하느냐고 핀잔을 줄지도. 그래도 나에게 가장 진지하고 간절한 첫번째 소원은 어쩔 수 없이 내 아이들에게 아무 일 없는 보통의 날이 계속 되는 것이다. 어쩌랴, 사람은 경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