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기도 2 - 말없이 조용히 걷고 싶습니다만…
그저 기도 2 - 말없이 조용히 걷고 싶습니다만…
‘빈수레가 요란하다’ 는 말은 별로 많이 든 것도 없는 사람이 아는 체를 하거나, 큰소리 친 것에 비하면 결과가 별로인 사람을 빗대어 하는 표현입니다
무협지나 중국영화를 보면 실력이 그저 그런 정도인 동네 짱이 거들먹거리지요. 그러다 식당에서 조용히 밥먹는 주인공에게 시비 걸고 된통 얻어터지는 장면을 흔하게 봅니다. 그 역시 빈깡통이 요란한 경우지요.
성경에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회당이나 시장 사거리에서 자기의 잘난 형편과 신앙심을 과시하며 떠드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제쳐두고 기둥뒤에서, 마루 끝자리구석에서 가슴치며 숨죽여 드리는 죄인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시지요.
또 자신의 자선이나 공적을 널리 알려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높은 자리도 얻는 사람을 향해 하나님은 ‘너희는 이미 받을 상을 세상에서 받았다. 나중에 천국에서는 국물도 없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선행하는 사람들이 복 있으니 천국에 상이 쌓인다!’ 고 했지요.
시끄럽게 떠들며 사는 사람보다 조용히 기도든 선행이든 하며 사는 사람들을 더 높이 평가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이가 많이 적었던 시절에 나의 관심은 사람들 앞에서 시시비비를 아주 유창하게 구분하여 지적하며, 느리고 빨리빨리 행동하지 않는 대상들을 호되게 비판하는 소위 똑똑한 설교자나 리더들이었습니다.
그들과 달리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나 형편이 딸리는 사람들, 재능이 부족한 사람들이 민망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10년, 20년, 30년 짧지않은 긴 세월이 흐르는동안 가까이서 살고 지켜보며 꾸준함과 마음 진실성에서 조금씩 나의 관심대상은 바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변함없이 부끄러워하며 최선을 다해 시도하는 그들의 무게가 과부의 두렙돈 헌금같이 귀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나 유난히 목소리 높이고 자기를 과시하는 이들은 꼭 있습니다. 심지어 수도원 안에서조차 그런 수도자가 있다는 것도 그 어쩔수없는 인간의 본능을 보여줍니다.
제가 아는 수도원에서 한 수도자가 종일 밭에서 풀을 뽑으며 마음을 달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른 수도자의 공격적인 말에 상처를 받고 그걸 삭이느라 기도시간도 참석 할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손목에 인대가 늘어날 정도로 종일 밭의 잡풀을 상대로 씨름하였다고 합니다. 종신 서원을 하고 가는 수도자에게도 말은 공격의 창이 되기도하고 찔리는 가시가 되기도 합니다.
수도원에서는 종류는 다를 수 있지만 대부분 침묵의 시간을 가집니다. 기간을 정해서 하기도 하고 시간대를 정해서 하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사람을 상대로 말을 많이 하면서 생길 부작용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의 시간을 통해 하나마나한 말은 당연히 걸러 내고, 해서는 안될 말을 안하기 위해서입니다.
몇십년을 수도원 안에서 마당만 쓸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지 않은 수도자가 빗자루 성인으로 정해진 이야기를 압니다. 또 30년을 부얶에서 다른 수도자들의 식사만 준비해주던 이가 그곳 수도자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는 이야기를 직접 방문해서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수십년을 존재감도 없이 묵묵히 작은 일도 꾸준히 실행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이야기로는 간단하고 쉽지만 막상 자기자신이 당사자가 되어 숱한 날을 남의 무심한 시선속에 흔들리지 않고 일상을 지속한다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자기 스스로 낮은 존재감에 괴롭거나 잘나가는 사람에 대한 질투나 부러움으로 편치 않을 수도 있고 이게 진짜 맞는 길일까? 회의가 들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자로 작은 일에도 평안을 유지하며 누군가에게 유익이 되면서 죽는 날까지 그렇게 살다 갈 수 있다면 이미 성인과 다를 것 없는 경지에 올랐다고 봅니다. 정말 그런 성품을 구해봅니다. 그게 타고난 성품이든 후천적으로 수련하고 다듬어 이루어지든 그런 평안을 얻을수만 있다면…
세상에서 얼마나 많은 갈등과 다툼, 시기와 미움, 전쟁이 서로 더 잘난 것을 증명하고 인정받으려다 생기는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천국이 달리 있을까 싶습니다. 떠들지 않고 조용히 길을 가면서도 평안과 기쁨을 내 속에서 품고 살 수 있기를 자꾸 빌게 됩니다. 그 진짜 선물이 쉽게 오지 않는 걸 알면 알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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