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가능한가?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가능한가?’
심리학자이면서 심리학을 싫어하는 분, 왜곡된 해석과 권유를 하는 주류 어용심리학을 비난 하는 분, 심리학자 김태형박사님은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세상,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는 행복집단별 차이를 연구하고 처방전을 말해야한다. 그런데 행복개인차 연구를 가지고 개인의 의지와 감정관리를 가장 중요한 대상으로 강조하는 학문사기를 벌인다고 말했다.
공해가 심한 나라의 폐질환 환자와 공해가 없는 청정국가의 폐질환 환자를 비교해서 질환의 문제를 찾고 대책을 말해야 상식적인 주장이다.
그런데 공해가 심한 나라에서 폐질환 걸린 사람과 안 걸린 사람의 개인차만 연구해서 그 이유를 유전자 50%, 환경 상황은 10%, 나머지 40%가 개인의 관리 노력이라고 주장하면서 고작 10% 정도밖에 안되는 사회적 환경 상황을 고치려 쓸데없이 매달리면 어리석다 말하는건 거의 학문적 사기라고 분노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종교와 정치, 경제와 교육에서조차 행복의 차이가 생기는 것을 개인차 문제로 돌리며 이미 정해진 유전자와 미미한 환경 상황은 무시하고 나머지 40%를 좌우하는 개인의 의지와 감정관리 개인의 능력에 달린 문제로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그건 비틀어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나쁜 학문이고 사람들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악이라 보았다.
나도 동의한다.
순전히 개인의 노력과 개인의 재능에 올인하는 주장은 갑질문화와 좌절감만 키우고 고착시키는 악의적 권고다. 심지어 미신에 가까운 사기질이고 현혹이며 불량한 양심이다.
집단 행복을 높이려는 노력과 탐구가 개인적 행복만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는 악의에 넘어가지 말아야한다. 개인처세술, 개인 성공담으로 도배하는 모든 행위를 의심하고 멀리하고 거부해야 올바른 세상이 가까워진다.
쾌감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건 잘못된 결론이다. 쾌감은 반복되면 그 정도가 줄어드는 중독성이 있고 점점 강도가 높아져야 같은 쾌감을 느끼는 내성도 있다. 품질도 따지지 않는다. 심지어 연쇄살인범도 쾌감을 느낀다. 그렇다고 그게 행복이라고 보나?
행복은 그런 본질이 아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는 본질이 있고 내가 좀 덜가지고 덜 먹어도 사랑하는 이들에게 양보하면 더 큰 만족감을 가지게 된다. 또한 반복되어도 효과가 짧아지지 않고 오래가는 추억이 된다. 집이나 자가용 구입처럼 사흘 한달이 지나면 없어지는 그런 일회용이 아니다.
김태형박사는 행복을 이렇게 정의했다.
‘인간적인 삶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생활에서 느끼는 보람과 만족’
비교적 공감이 가고 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 바람은 개인의 능력에 바탕한 혼자의 노력보다 함께 노력하는 집단적 문화와 공동체를 위한 배려가 훨씬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더 중요하다.
그래서 ‘개인의 생존을 개인이 책임지는 사회는 화목한 사회가 못된다. 개인의 생존을 국가나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가 건강하고 화목한 사회가 된다’ 고 끝말로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