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걸?...노!
‘안태어났으면 좋았을 걸? ….노!’
그때도 지금과 비슷한 늦가을이었습니다
2년을 사지마비로 살다 기적처럼 왼발과 왼팔이 조금씩
신경이 돌아오고 꼼지락거리기 시작하던 무렵,
막내딸의 학교행사 참석겸 가족을 보고 싶어
친정부모님 집에 내려와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와당탕!’
바깥정리를 하다가 그 소리에 깜짝놀라
급하게 멈추고 방으로 뛰어 들어갔더니
아내는 침대에서 방바닥으로 머리를 처박고
거꾸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옆 가구를 붙잡고 일어설수 있을거 같아
장식장을 잡고 다리에 힘을 주다가 그냥 주저 앉았답니다
부랴부랴 다시 일산 병원으로 올라와
사진을 찍고 물리치료를 받으며 다시 이후 석달을
침대에서 내려오지도 못하고 보내야 했습니다
‘자리를 비우지 말고 곁에서 지킬걸…’
‘병원에서 내려오지 않았으면 안다칠걸…’
그렇게 시작된 후회와 자책은 끝없이 이어져
아내가 나를 만나지 않았으면 안아팠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부자집 남자를 만나거나 부자집에 태어났더라면…
그러다 아예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는
나가도 너무 나가는 ‘…라면’ 상상에 서럽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때만 아니라 아내가 아픈 십여년동안 그랬습니다
아이가 아프거나 곁에 있어야 할 무슨 일이 생겨도 그랬고,
병원비랑 돈에 쪼달려 이런 저런 고민을 할때도 그랬고,
내 건강이 나빠져 아내의 뒷 감당을 누가 하나 고민할 때도
여지없이 돌이켜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탄 사람처럼
지난 일과 지난 날들을 몽땅 후회와 원망을 했습니다.
마치 패색이 짙어진 속좁은 사람들이 장기판 뒤집어 엎듯
또는 다투다가 주워담지 못할 몹쓸말을 퍼붓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린 대책없는 부부처럼 내 속을 들볶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산다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삶의 연속입니다
수십길 깊은 호수에 살짝 언 살얼음을 쫄리는 맘으로 딛으며
건너편까지 가야하는 것만큼이나 불길하고 위태합니다
잘 지내다가도 한가지 괴로운 일만 만나도 전부가 엎어질테니
그런 상태로 산다는건 자신에게나 가족에게나 행복이라곤
손톱만큼도 누릴 수 없는 기승전결 불행의 드라마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알았습니다.
모든 시간 모든 만남들을 힘들때마다 원점으로 돌려버리면
내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고 캄캄한 추억만 남는 다는 걸…
그러면 손꼽아 기다리던 딸아이가 태어나던 날의 기쁨도
까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던 딸을 따라가며 행복하던 순간도
빨갛게 물든 단풍나무와 숲을 보며 감탄하던 어느 날도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먹으며 감동하던 그 순간도
나중에 어느 날 자식들의 결혼과 그들이 안겨 줄 새생명을
팔에 안고 할지 모를 이 말도 할 기회가 없어질지 모릅니다.
‘아이야! 너를 보려고 이 긴날들을 살아왔나보다!’
반성도 감사도 없이 살다가 판을 엎어버리는 반복은
긴 세월 다듬어지고 만들어진 보석같이 빛나던 작은 행복들이
어쩌면 영원히 없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는 것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반쯤 물 담긴 컵을 보며
‘아직도 반이 남은’ 사람이 되던지
‘이제 반밖에 안 남은’ 사람이 되던지 선택하는 겁니다
햇빛 따사롭게 내려오는 숲 나무 사이를 걸으며
때론 울기도 하지만 웃으며 맞아준 적이 훨씬 많은 아내가
현관문을 열면 기다리다가 반겨준다는 분명한 사실이
내일은 몰라도 오늘은 틀림없는 감사의 제목입니다
그러니 혹시 징검다리처럼 사이사이로 슬픈날과
불행한 날들이 끼어 있더라도 통째로 부정은 하지 않기를
입에 후회와 원망의 타임머신을 달고 살지 않기를
조용히 빌어봅니다.
“ 주님, 오늘도 긴 여행의 하루를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치고 돌아가는 날까지 앞으로 앞으로 나가게 해주세요!
아멘!”
(사진 - 막내딸이 격주로 보내오는 꽃을 들고
감사의 인증샷을 보내기 위해 표정을 연습하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