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들어갈 문이 없는 집

희망으로 2021. 9. 29. 19:10

 

‘들어갈 문이 없는 집’

 

‘정말 이상한 사람이네…

내가 뭘 잘못한거야? 내가 투명인간이야?’

 

병원 건물을 청소도 하고 경비도 서는 분이 있다

계단운동을 하다가도 마주치고

옥상을 걷는 중 청소하러 와서 마주치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내 기억에 서너번 이상했는데 반응이 없었다

웃지도 반기지도 않고 그렇다고 못본거도 아니다

뭘까? 그런 반응은?… 황당하다.

살면서 자주 경험하지 않은 묘한 경험이었다

 

중세시대 바다를 가로질러 다니던 

범선의 최대 위기는 폭풍도 폭우도 아니고

넘실거리는 집채만한 파도도 아니다

바람한점 없는 무풍의 순간을 만날 때였다.

엔진도 없고 동력이라고는 돗대밖에 없었던 시절

바다를 가로 지르던 중에 마주친 너무 좋은 날씨

머리카락도 흔들지 않는 고요한 상황에 걸리면

사흘이고 나흘, 심지어는 열흘도 꼼짝못하고 

바다 한가운데서 멈춘 채 기다려야 했다.

일정이고 나발이고 다 접은 채 동작정지! 다.

눈빠지게 보다가 동전만한 구름한점이라도

서쪽하늘에 나타나고 다가오기 시작하면 가슴이 뛰고

그러다 찰랑거리는 바람이 느껴지면 돗을 높이 올리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살았다 만세를 불렀다

 

삶은 고해라고 부르는 인생에서도 

가장 위험한 순간은 비슷하게 그렇다

기쁨 열정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분노와 슬픔도 살아가는 힘이다

미움도 원망도 에너지가 되지만 

무기력함, 먹는 것도 관심없어지는 귀찮음에 빠지면 

그때야말로 최대 위기고 아무 방법이 없다

부부사이의 위기는 미워하고 다투는 냉전의 시기일까?

아니다! 권태기다. 특별히 해결해야할 문제도 없고

서로 사과해야할 잘못도 없는 서로 필요가 없는 상태

곁에 있던지 말던지 귀찮고 그냥 싫어지는 권태기는

풀어줄 방법도 없는 최대의 위기다

그래서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고 

무관심이라고 했던가?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미워하는 대상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믿음이라고 했다

그런 상태는 뱉어버린다고 했다.

심지어 남을 괴롭히고 이웃의 물건을 훔치는 사람도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해주고 돌아서면 할일이 있다

하지만 나쁜 일도 않고 계명을 어기지도 않지만 

착한 일도 유익한 관계를 위해 애쓰지 않는 사람

누가 죽거나 말거나 내 잘못만 아니면 되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아무 행위도 하지 않는 사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신앙을 가진 사람이다

하나님이 뱉어버리고 용서하지 않겠다는 미운 사람이다

 

회색은 검은색일까 흰색일까?

그냥 회색이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며

칭찬도 비난도 무의미한 회칠 무덤같은 대상이다

색상의 회색을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 위치 그런 의미로 사는 생활을 싫어한다는 말이다.

교도소에서 교화를 시키기 가장 힘든 사람

변화의 가능성을 기대하기 가장 힘든 사람이다

팔 걷어부치고 반발을 하거나 자기 주장을 가진 사람은

오히려 설득할 실마리도 있고 가능성이 있지만

도무지 관심없는 사람은 들어갈 문이 없는 집과 같다

병원에서 삶의 의욕이 다 없어진 그런 사람을 만나면

말을 터고 음식을 나눠먹을 시도조차 어렵게 느껴진다

참 허무하다 마치 바위나 물건에게 말을 거는 기분이다

 

그런데… 

가끔 내가 나의 가족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순간도 있다

일에 지치거나 사는 게 재미없다 싶어 심드렁할 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아내나 아이들에게 

‘저리가!’ 또는 ‘나 냅둬!’ 하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밀어내고 등 돌리는 순간도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차! 후회가 되고 많이 미안하다. 

그런 순간이 잦아지고 이미지가 쌓이면

어느 날부터는 대화가 줄어들고 멀리 하기 시작할거다

‘너 왜그래? 뭐가 불만이야?’ 나중에 다그치지만

아무 이유가 없다. 특별한 동기도 없이 그냥 싫어 한다.

그러면… 이미 늦은 거다. 정말 큰일난 거다

그러기 전에 빨리 회복하고 생기있게 살아야 한다.

차라리 화를 내거나 미워하거나 무관심보다는 낫다

아이스커피나 따뜻한 커피는 각각 고유의 맛이 있지만

미지근한 커피는 도무지 입도 대기 싫어 

하수구에 버려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살며 만나는 우여곡절, 온갖 풍파를

많은 이들이 고단하고 불행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좀 편한 날을 주면 안되나? ㅠ’

하늘을 향해 원망 비슷하게 소원을 하기도 한다

왜 안그럴까. 누가 맑고 고요한 날을 싫어할까

하지만 자연법칙에서 계속해서 

좋은 날씨, 즉 비 구름 자주 없는 곳은 사막이 되었다

통계적으로도 춥고 험한 일교차의 지역들이 

늘 더운 나라보다 부자 나라가 되었다. 우연이 아니다. 

 

온실속에 화초로 자란 식물들이나 애완용 동물은

대개 야생의 화초나 동물보다 생명력이 약하다

찬송가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큰 물결 일어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갑니다’ 

어차피 이 땅을 지나가서 또 다른 세상을 들어갈 예정인

믿음의 신자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자세고 고백이다

산 동안 활기차게 살아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

미소와 친절로, 하다못해 미움과 분노라도 가지자!

차지도 덥지도 않은 위험으로부터 탈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