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입장 바꿔 생각을 해봐…>
아내가 초복날 병실 식구가 준 닭고기 몇점을 먹고
그만 심하게 탈이 났다.
그분의 가족이 만들어온 음식이라 미처 알지 못했다
옻을 넣어 만든 옻닭이었다는 사실을…
옻 독 알러지가 심한 아내가 된통 걸렸다
먹는 약과 하루에도 몇번씩 연고를 벌건 몸에 바른다
쉬지 않고 냉찜팩을 갈아가며 온몸의 열을 내린다
가렵고 화끈거리는 아내도 못참고 나도 지친다
5일째…
그것만이라도 쉴 새가 없는데
여전히 아내는 소변이 마려워 세시간마다 잠을 깨운다
가려움에 잠들지 못하니 더 자주 느껴지나보다
어느 때는 졸린 눈을 뜰 수 없어 거의 눈을 감은채로 해낸다
저녁 8시 10시 12시, 새벽3시 6시…
문득 수도원의 기도 시간이 생각난다
하루에 5번, 어떤 수도원은 8번씩 평생을 기도 한다
같은 시간에 그들은 기도를 나는 아내를 돌보느라 일어난다
하나의 그림이 영상처럼 스쳐 지나 간다
내가 침대에 누워있고 아내가 나를 돌보고 있다
우리의 입장이 바뀌었다. 세상에 흔한 일이다
난 너무 가렵고 너무 아프고 너무 무섭고 너무 슬프고…
아내가 짜증을 내거나 시큰둥 무심하게 나를 챙긴다면?
바깥으로 나돌고 다른 곳에 온통 신경이 가 있다면?
나를 팽개치고 어느날 보따리를 챙겨 가버린다면?
‘…..ㅠ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입장바꿔 생각을 해봐!
니가 나라면? 그럴 수 있니??
어떤 목소리가 반복해서 계속 수없이 들렸다
또 예수님이 한 이 말이 들렸다
너희는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대접하라!
어느날 물 한 그릇과 빵 한조각으로 대접한 거지가?
나 일수도 있으니! …
얼마나 밉고 서러울까?
난 아프고 괴로운데 배우자마저 억지로 나를 돌본다면…
가슴이 찡하고 울컥 목이 잠기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내는 한번도 갑질이나 신경질 내지 않고 늘 고맙다고 한다
환자가 돌봄을 받으면 을이지만 많은 이들은 화를 낸다
자기 슬픔 자기 괴로움이 너무 깊어 그러는 것이다
잘하자,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얼마나 아쉽고 힘들까…
그럼에도 계속되는 질문 하나는 이거다
우리는 왜 이런 고통을 만나고 언제까지 감당해야할까?
왜 세상은, 인간은 행복만 하고 죽지도 않으면 안될까?
‘서복’ 이라는 영화에서 들은 잊혀지지 않는 대사가 기억난다
“언젠가는 죽는다는 두려움이
인간으로 하여금 삶의 의미를 추구하게 만들지요
그런데… 그 두려움이 없어진다면
인간은 인간성을 상실하게 되고
남는 건 욕망뿐입니다
죽음이 사라진 무한한 삶에선…
욕망도 무한해지고 갈등도 무한해질 겁니다
역설적으로?
죽음은 삶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이 죽지 않으면
인류는 스스로 멸망하게 될 겁니다 “
맞다!
우리의 괴로움과 두려움, 불안은 죽는다는 사실에서 온다
죽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죽지 않는 세상은 곧 지옥이 될 것이다
아무도 두렵지 않고 아무도 슬프지 않고 아무도 괴롭지 않다면
아무도 평안치 않고 아무도 기쁘지 않으며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아무도 언제나 감사하지ㅡ않을테니…
눈 감고 하늘에 비는 수도자들의 기도와 마찬가지로
나의 기도는 나 외에 아내에게도 유익할 것이다
나의 기도는 슬픔과 외로움과 지겨움을 안고
나의 기도는 생명과 죽음을 모두 감사할 것이다
나의 기도는 오늘도 만나는 순간들을 견딜 힘을 빌 것이다
“부디… 이 시간을 나와 함께 살자구요, 하나님! 아멘”
2021.0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