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나의 사순절은 끝이 없고...
희망으로
2021. 7. 26. 10:02
<나의 사순절은 끝이 없고...>
사순절은 재를 뒤집어 쓰고 시작한다
죄를 묵상하고 용서를 빌면서 계속된다는데
나의 사순절은 십년도 넘었다
재를 쓰는 대신 아내의 중병 진단으로 시작되었고
내 죄일까? 아내의 숨겨진 죄일까?
벌을 받는데 왜 받는지 모르면서 계속되었다
이스라엘백성은 사십년을 사순절로 보내고
예수님은 사십일을 광야에서 시험당하셨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 세상에서 혹한을 만나
권력도 능력도 욕망도 없는데도 시달리며 살았다
그 기간이 뭔지도 모르고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다
마지막 고난주간을 굶기도하고
새벽이면 일어나 무릎을 꿇고 기도로 보낸다는데
나는 이미 너무 많이 굶었고
새벽마다 잠깨어 아내를 연명하는 간병을 해야했다
사람들은 드디어 부활의 날이면
달걀을 나누며 깨트리며 새생명을 노래하는데
나의 부활아침은 병원 식판의 계란 장조림이 대신하고
신자들의 사순절은 다시 일년 뒤에 시작되는데
나의 고난주간은 일주일이 지나도 끝이 나지 않고
내년 사순절까지 쉼 없이 연중무휴로 이어진다
비오는 부활주일
우리가 몸 담은 병원 복도 끝 열린 유리창에는
종일내리는 빗방울이 눈물세례처럼 흐른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연민
우리를 향한 부모의 미어지는 마음이 내린다
2021.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