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러워한 사람의 뒷편에는...
<내가 부러워한 사람의 뒷편에는...>
지난 번에 4층에서 추락한 스무살 아이의 빠른 회복을 부러워하며 내 속의 삐뚤어진 심성을 자책하는 글을 올렸다. 같은 방에서 24시간을 지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세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부러워하고 시샘하다가 다시 후회가 되고 가슴이 아팠다. 그 뒤에 살아가는 고단한 내막을 듣기 전에는 겉으로 보이는 빠른 회복만 내 관심이었는데 얼굴이 화끈 거리게 했다. 그 뒤에 따라다니는 무거운 고통을 알고나니...
아이엄마는 니흘을 대신 간병할 사람을 구해놓고 바깥에서 돌아다니며 중요한 일을 처리하고 돌아왔다. 그것은 아이의 추락을 단순 사고로 볼 수 없다며 보험금을 거절하는 보험사에 낼 서류를 만들기 위해 병원과 보험사를 만나고 왔다는. 두 곳 중 한곳은 다행히 고의가 아닌 것으로 인정이 되어 보험금이 나오고 한 곳은 아직 보류중이라는데 그 내용은...
다친 아이는 4층 난간에 반쯤 매달린채 자살 실시간 영상을 중계하고 미국과 먼 지방에서 동시에 여럿 신고가 들어왔다고 경찰이 알려줬단다. 그래서 보험사는 지급을 안한다는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시절부터 조울증으로 약을 계속 먹어왔다고 한다. 늘 죽고 싶은 마음이 떠나지 않는 상태로. 그 약을 처방한 구미시 병원에 가서 그 증명서를 받아다 제출했고 한 곳이 인정을 한 것이다. 약을 수시로 안먹으려고 해서 쉽게 호전이 되지 않았다는 엄마의 말은 그 날도 일 나간 사이 약을 건넜을 가능성이 많았다.
도대체 그 어린 나이에 왜 그리 심한 조울증 상태까지 갔을까? 무엇이 이 어린 아이를 그렇게 일찍 구석진 어둠으로 몰아갔을까? 그 아빠가 원인이었던 것 같다. 도박 경마에 빠져 세번이나 집을 파산에 이르게했고 마지막에는 전세보증금마저 빼서 나가는 바람에 길에 나가 앉았다. 짐은 남의 집 옥상에 보관하고 잠만 자는 월세방을 6개월이나 지내다 임대주택이 간신히 되어 다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니... 결국 이혼하고 힘들게 버티고 산다니 그 황당함을 겪고 산 동안에 아이들이 심정이 무사할리가 없었을거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그 과정을 계속 겪으며 산다는 것은 어른들의 고민보다 훨씬 심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기들 힘으로 벗어나거나 고칠 여력은 없이 무기력하게 그 과정을 온통 살아내야한다는 것이 무척 괴롭기 때문이다. 그 힘겨움이 온통 험한 말이나 자해, 일탈로 해소할 수밖에 없을테니. 그래서 고스란히 조울증으로 아이를 망쳤을거다. 학교도 가기 힘든 지경에 이르고 죽음을 늘 생각하며 일상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을 거다.
지금은 아이가 추락하며 다친 뇌의 후유증으로 대여섯살 수준의 인지능력에 머물렀다. 먹는 것만 계속 찾고 엄마가 가까이 안보이면 눈물을 쏟고 잠 재우는 약으로 날을 보낸다. 그런 엄마와 아이의 상태가 무엇이 부럽다고, 신체의 회복이 빠른 것도 얼마나 약소한 희망일까? 열가지 절망 중 하나나 둘 돌아오는 정도일테니. 겉으로 보이는 남들의 좋은 일은 정말 새발의 피다. 그 드러난 아래의 빙산에 해당하는 삶의 고단함에,비하면. 누구나 그럴지도 모른다.
한 가정에 한 사람의 부실한 일탈, 아버지라는 막중한 사람의 무책임한 생활은 이렇게 호수에 던져진 돌로 생긴 파문처럼 온 가족의 삶을 파괴한다. 끝없이 뿌리까지 파고들어 흔들고... 오죽하면 아이들 아버지가 추적해올까봐 아이들 이름을 다 개명을 해서 통신도 차단시키고 옮겨 다녔을까. 이렇게 상처입은 사람들이 누리는 겨우 하나 둘, 혹은 서너개 가진 다행스러움을 속사정 모르는 남들의 눈에는 그것만 부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왜 저 사람들은 잘 되는데 나만 어려울까? 왜 나만 불행할까? 비관한다. 혹은 시샘하고 진심으로 축하와 격려를 하지 못하고 빗나가기도 하고.
할수만 있다면... 드러난 가늘은 웃음 뒤의 그늘도 짐작해주자. 내게 떨어진 불행의 돌들에 매몰되지말고 내게도 있는 행운을 인정하자. 모두에게는 공평할만큼 슬픔도 기쁨도 있고 보이는 좌절과 희망도 주어진다는 걸.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모두가 감당해야할 짐은 모두 버티며 살아가고 있더라는 경험을 이번에 처절하게 했다. 모르는 삶에 대해 지나치게 비약도 지나치게 비관도 하지말고 살아내야 한다는 결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