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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를 제발 속 없는 사람으로 좀...

희망으로 2020. 10. 1. 09:26

<주님, 저를 제발 속 없는 사람으로 좀...>

 

아내를 간병하면서 자주 힘들 때를 돌아보면 대개 마음 먹은대로 안되고 바라는 대로 안되어 빗나갈 때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라던가 이렇게 되어주면... 요기까지 나아졌으면 등 내 계획이 있을 때 여지없이 무너지고 틀어지면서 힘들어집니다. 속상하고 원망이 생기고 땅이 꺼져라 한숨쉬기 일쑤입니다. 내 속에서 세운대로, 바라는 대로 안되는 인생이란 정말 싫고 고단합니다. 몸의 리듬이 안맞게 움직이는 것도 엄청 힘든데 마음의 리듬이 번번이 어긋날 때란 그 몇배로 지치게 됩니다.

 

내 속의 계획, 내 속이 원하는대로 안될 때는 자녀들과의 사이에도 자주 생깁니다. 그래서 서로가 다 힘들고 괴롭고 안마주치고 싶어지고 심하면 며칠도 냉전이 갑니다. ‘에이, 불효막심한 놈들!’ 이라고 겉으로는 차마 못 내놓더라도 속으로 투덜거립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정말 잔소리 심해! 어른들은 왜 늘 저 모양인지...’ 아마 그럴겁니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겉으로 대놓고는 한번도 안해준 말이지만 대신 “내가 알아서 할게요!” 좀 짜증난 얼굴로 그러기도 합니다. 내 속과 안맞을 때 생기는 이 충돌 실망의 결과들...

 

남들과 관계라고 다를까요? 더 심할지 모릅니다. 가족처럼 죽어나 사나 얼굴 마주보며 살아야할 사람도 아니고 희생하며 참을 이유도 그다지 없으니 쉽게 험담하고 욕하고 휙! 돌아서버리고 관계를 끊어버리니 깊어지지 않을 뿐, 그 불행의 파국이란 잦고 만만치 않습니다. 다 내 속에 뭔가 먼저 기준이 있고 기대가 있고 그것과 비교하여 감정이 출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다 그런 내 속의 뭔가가 있어서 한편 의욕도 생기고 동력이 되기도 합니다만 평생 위태롭고 불안불안한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심하면 하나님을 상대로도 그럽니다. 끝내 불신의ㅡ도장을 콱 찍고 가서 안될 길도 가버리기도 합니다.?

 

아내를 간병하고 돌보면서 십년이 넘어가다보니 나름 마음이나 몸의 평안을 누릴 때가 있기도 합니다. 여러번 반복하다보니 나름 그 원인을 짐작하기도 합니다. 내가 흔들리지 않고 비교적 긴 시간을 잔잔한 평안상태를 유지할 때는 위에 말한 ‘내 속’이 없을 때 입니다. 무심해져서 일부러 안그래도 그 상태가 되는 날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비우고 아무 계획이나 기대를 안 가지려고 노력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냥 온 몸과 마음의 힘을 다 빼고 들판의 갈대마냥 바람이 불면 눞고 멈추면 일어나는 형태로.

 

아내뿐 아니라 많은 환자들이 비교적 안정감과 평안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경우는 돌보는 이가 너무 몰아부치거나 너무 무심하지 않을 때 입니다. 그렇게 잔잔히 급격한 감정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늘 살펴주는 보호자를 만날 때 컨디션도 좋아지고 잠도 잘 자며 먹는 의욕도 좋아집니다. 물론 병의 중한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안 그럴 경우보다는 거의 회복에 큰 차이를 보입니다. 암이나 호스피스 간병을 받는 경우조차 그렇다는 보고서도 있습니다. 심리가 안정되면 통증도 줄고 투병의 의욕도 높아진다는 것.

 

그런데... 그렇게 알아도 정말 잘 안됩니다. 그놈의 ‘내 속’을 비운다는 것, 내가 아닌 상대의 흐름과 필요를 따라 생활해본다는 것. 아무 생각없는 사람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고 생각이 있으면서 그렇게 늘 옆에 준비된 사람처럼 있어준다는 것 말입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과 재난을 대비하는 소방서 등이 늘 그런 자세로 삽니다. 5분 대기조라고 부르기도하는 그 상태. 누군가 부르거나 일이 생기면 바로 출발할 수 있는 상태로 삽니다. 그래야만 누구를 돕고 큰 불행을 줄이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게 쉬운 일 아닙니다.

 

예수님은 늘 상대나 누구의 부름과 급박한 상황을 해결해주며 사셨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질병이나 가난이라는 몸의 일이기도하고 슬픔이나 외로움, 두려움 등 마음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혹은 영원한 생명이나 인생의 고민에 대한 답답함일 때도 있었습니다. 가르치고 돕고 섬기고... 그러다 마지막은 목숨까지도 대신 치르는 대가로 내놓았습니다. 그런 삶을 자기를 따를 제자들에게도 권했습니다. 가능하면 일반 신자에게도 각자 자리에서 하기를 바랐습니다. 너무도 힘들고 어려운 자리지만 그것이 나와 너, 도움받는자와 돕는 자 모두를 평안케 하고 진정한 승리를 가져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내 속’을 비우고 아내의 타이밍에 맞추지 못해 속을 끓입니다. 이제 그만 좀 기운 차리고 움직여 주었으면 싶은데 예상보다 며칠이나 더 늘어져 끙끙 앓아서 속이 상합니다. 밉고 지쳐서 그만 두고 싶기도하고, 그러다보니 내 반응은 또 날카롭고 짜증스런 태도를 나오게 합니다. 긴장되고 살얼음위를 같이 걸어가는 심정이 됩니다. 내 평안도 물 건너가고 아내도 초조해지고 머리는 더 아프고 속은 더 울렁거리게 됩니다. 원래 만병이 마음에서 생기는 법이니 그럴수밖에... 어떻게 제 자리를 찾아 안정시킬지 고민입니다. 병든 환자도 돌보는 나도 다 걸린 숙제입니다 ㅠㅠ

 

“주님, 내 속을 좀 가져가 주세요! 비우고 아무 것도 계획하지도 말게 하시고 기대하다가 날카롭고 실망하는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좀 해주세요. 부탁이니 제 속을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