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명에 담긴 마음들
<별명에 담긴 마음들>
내겐 맑음이 있다!
이건 내 칭찬을 하는게 아니고
내 이름에 그런 뜻이 있다는거다.
김재식, 있을 재(在), 물 맑을 식(湜)!
물이 맑음 같이 맑아라!는 할아버지의 작명이었다
그래서인가 늘 맑게 살아야지! 하면서
예수를 만난 청년기 전에도 종종 그렇게 일기에 쓰곤했다.
그 바람에 돈 많이 버는 목표가 내 인생에서 멀어졌는가? ㅋ
가족들 단위로 신앙공동체 모임을 십여년 하는 동안
본인들이 스스로 지은 내 별칭은 '늘깨'였다.
성경에 말씀하신 '늘 깨어서~'라는 말에 공감을 했기에.
그래서 늘 깨어 있는 바람에 잠 안자는 지독한 사람으로
안팎에서 엄청 비난 비스무리 놀림과 야단 맞으며 살았다.
그래서 살도 안찐다고 아내에게도 타박을 당하고...
(우리 공동체가 사용할 두번째 노래집을 만들 때,
근 15일을 하루 두어시간을 자면서 출근한 적이 있었다.
안산에서 서초구 양재동까지 두시간 직접 운전하는 차로 출근하면서)
인터넷에 블로그 방 하나를 만들면서 지은 이름이 '희망으로'였다.
2005년 이었던가? 그때 아마도 꿈꾸던 공동체 쉼터가 멀어져
많이 낙망중에 버티던 심정이 그런 희망이 필요했나 보다.
그때는 나중에 정말 그 별명이 꼭 필요한 꿈에도 상상 못한
지독한 다른 불행이 오리라 생각도 못하고...
딸아이 이름은 내가 지었다.
물론 위의 두 아이도 내가 직접 다 지었다.
아들 둘 이름인 ‘겨레' '기쁨'
그때는 그게 나의 젊은 날의 관심사이기도 했었다.
또 아이들의 미래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제목이기도 했다.
'나눔'이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조금은 더 신앙적 바람이 들어 갔다.
아이가 평생을 그렇게 나눔을 실천하며 사는 수도자(수녀)가 되기를
정말 빌었다. 지금도 변함은 없다.
그랬더니 어쩌다 남에게 '나눔'을 시키는 형편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정작 많이 받는 쪽이 되어버렸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 개신교 여성수도원 천안 디아코니아에서 원장님과 언님(이곳 수녀님 호칭)들의 사랑을 받던 나눔이
아내는 신앙공동체 모임때 이름이 '다자란 막내'였다.
언제나 막내같이 순수하고 밝게 살았으면 싶어서,
그러다 덜컥 희귀난치병으로 사지마비가 된 후 정말 그렇게 되었다.
다 큰 어른이 막내보다 더 내려가서 두 살, 세 살로 살아야 했다.
남의 손으로 먹여주고 입혀주고, 맘대로 나다니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부디 다섯 살 정도가 되고 일곱, 열, 스무살정도의 수준으로
빨리 회복하기를 빌어본다. 진짜 '다자란 막내'가 되는 날을...
사람들은 가장 바라고, 좋아하는 뜻을 이름에 붙인다.
그 이름이 소망이고 목표고 가치를 담기도 한다.
이제 오래 연습도 했고 철도 들때니 ‘이름값'좀 하면서 살면 좋겠다.
그래도 정말 다행이고 고마운 것은 우리 모두 받은 지정신분증!
‘그리스도인’ 아무개!
그리스도를 닮아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고싶은 영원한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