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해주는 배려! 들어 주는 사랑을 꿈꾸며
<침묵해주는 배려! 들어 주는 사랑을 꿈꾸며>
드라마를 좀 한걸음 물러나서 보고 있노라면
모두 자기 이야기만 들어달라고 배틀을 하는 것 같다.
마치 사오정 두명이 마주앉아 상대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러니까 내 주장은, 내 감정은, 내 바람은...'
이런 식이다. 세상도 마찬가지다.
병원 안에 부설 심리상담소가 개원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무료라고해서 병실의 한사람이 다녀왔다.
다녀와서 씩씩거리며 다시는 안가겠단다.
처음엔 말해보라고 들어주더니 나중엔 자기 이야기만 하더란다.
상담사의 경험, 배운 심리학 지식, 자기 종교를 총 동원하며!
30분 말하고 한시간반을 듣고 왔단다. 헐...
예전 딸아이도 비슷한 분노를 털어놓았다.
학교상담실에서 상담이 아닌 취조를 당했다고 씩씩거렸다.
자꾸만 상담사가 짐작하는 고민 불안감 들을 순서대로 내어놓으라고...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듣고 싶은 말을 듣겠다고 해서 혼났단다.
간혹 교회목사님이나 나이 든 어른들도 그러신다
좋은이야기라며 듣는 사람이 원하거나 말거나 가르침을 강요한다.
그러다 적지 않게 더러는 자기자랑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남여가 만난 사랑에서조차 종종 그런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바람을 들어보고 알려고 하기보다
자기 감정, 자기 바람만 더 주장하느라 정신없이 밀어붙이다가
사랑싸움 이혼, 불행에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아이가 달라졌어요' 라는 아이 교정 프로그램과
'아침마당' 부부탐구를 보다보면 흔히 경험하는 느낌이 있다.
제3자 입장에서 '어? 저 상황에서 더 저러면 안되는데...'
그런데 아랑곳 없이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끝내 골이 깊어진다.
그런데 멀리 갈 것 없이 우린 모두 그런 위험을 안고 산다
내 감정, 내 어려움, 내 주장이 가득 찬 상태로 살아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모두 적당히 억누르고 감추고 산다.
그렇지만 내심으로는 기회를 기다리며 예의상 대화하고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 억제하며 만남을 유지한다
그러다 기회만 오면 인정받고 싶고, 맺힌걸 풀어버리려 쏟아낸다.
모두들 자기 말을 들어달라고, 나만 바라보라고 하면서 갈증을 푼다.
70억이 모두 그렇게 하니 마냥 들어줄 사람이 없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주무시나? 아님 어디 마실을 가셨나? 한다.
내가 필요할 때, 필요한 응답이나 주문이 채워지지 않는다고 원망조로.
유태인이 가스실에서 그랬고, 사회의 시련이 올 때도 그랬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나? 왜 아무 말씀도 없고 해결이 안되지? 하며...
그러나 한편 얼마나 다행인가! 하나님이라도 잠잠해주시니.
세상이 온통 자기 이야기만 하고, 자기 주장대로 하라고만 강요하는데
하나님마저 그러시면 얼마나 비극이고 절망적일까?
누가 내게 귀를 기울이고 잠잠히 들어주겠는가?
“무엇이던지 말해라!
원망이나 하소연이나 자랑이나 가리지말고!
두명이나 세명이나 무더기로나, 다 괜찮다!
골방이나 감옥이나 사막에서라도, 밤이나 낮이나 아무때라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도 가져오고, 바늘같이 작은 일도, 코끼리 같이 큰 일도!
내가 너를 기억한다. 언제까지나 곁에 머물며 들어주고 떠나지 않겠다!”
나는 이런 하나님이 참 좋다.
한시도 내 입 틀어막지 않으시며 늘 들어주시고
민망하게 따지지도 않는 하나님이 참 좋다.
오늘도 내게 귀를 기울이신다.
‘스톱!’ 안하시며 쉬지말고 말해도 된다 하신다.
나는 하나님이 참 좋다. 그리고 나도 닮기를 꿈꾼다.
침묵으로 베풀어주시는 그 배려,
한없이 들어주시는 그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