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20. 6. 14. 10:23

<왜 사냐고 물으면>

 

그저께 낮에 옥상에서 걷기 중에 한 환자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되고 지팡이 의지해 간신히 걷는 아주머니.

언젠가 그 아주머니가 물 뚝뚝 떨어지는 비닐봉지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이 빨래 좀 짜줘요. 내 팔이 힘을 못써요”

그 속에는 여자팬티랑 속옷, 양말 등이 담겨 있었다.

무심코 꺼냈다가 빨래를 보고 민망했다.

‘체면도 부끄럼도 없나? 여자 속옷을 남자인 내게 짜달라다니...’

속으로 그런 생각이 들고 잠시 짜증도 났다. 좀 심하다 싶어서.

그런데 그분은 내게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중에 병실로 와서 다른 간병인 아주머니에게 말했더니

나도 너도 다 겪은 일이라며 병동 사람들에게 늘 그러고 산단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 빨래를 다 짜서 담아주었다.

‘다른 아주머니들에게 말하면 편할걸 왜 나를 물고 늘어지나?’

이상하게 생각도 했지만 뇌경색 오면서 인지기능도 좀 문제가 생겼단다

그래서 거절하다가 싸움 비슷하게 되기도하고 성질도 낸다니...

 

그 분은 보호자도 가족도 없는지 혼자 지낸다.

그 일 뒤로 또 걸릴까봐 멀리서 오면 피했다.

그날도 멀리 떨어져 걸으면서 빨래를 널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느리게 지팡이에 의존해 다리를 끌며 엘리베이트로 걸어간다.

울컥! 공연히 속상했다. 슬픔과 분노가 뒤엉킨 묘한 감정이 솟았다.

저 상태로 몸이 망가졌는데 저렇게라도 생명을 유지하고 살아야하나? 

남에게 대접 받을 가능성도, 평생 나아질 가망도 없어졌는데도.

혼자 속옷을 물에다 대충 밟아서 남에게 내밀고 

그걸 옥상 빨래줄에 말려 갈아입으며 살아야하는 생존이라니...

그러고도 살아가면 무슨 의미가 있나? 

날이 간다고 무슨 희망이?ㅠㅠ 

 

그러다 문득 나는? 아내는? 뭐가 다르지? 저 아주머니와...

오십보 백보 도토리 키재기지? 그 생각에 미치자 털썩 앉고 싶어졌다.

그러고 내려왔는데 그 장면 그 기분이 종일 나를 점령했다. 

콱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신나게 살지도 못하는 소속없는 생명!

세상에서 좀비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무얼 붙잡고 무엇에 자부심 가지고? 언제까지?...

결국 그날밤 잠 못자고 뒤척여도 안풀렸다.

무슨 아인슈타인의 방정식보다 더 어려운 느낌으로 막막한 질문,

정말 어려운 숙제처럼.

겨우 얻은 소득 하나는... 그런 상태에 몰린 이들에게

절대 묻지말라. 입밖에 내지도 말라. 해서도 들어서도 안되는

‘왜 사냐?’ 라고 묻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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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7개

 희망으로 (2020.04.29 오전 9:42:37)  iph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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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뒤척이며 애먼한 사람을 괴롭히던 그 날이었다
어쩌면 그 기분이 밤까지 이어지면서
다른 나쁜 친구들을 더 끌어들여서 고생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날에는 가족도 아이도 없는 여인이 복되다고 했던게 그런 이유였을까?
안보고 안듣는게 천국가기 쉽다고 한 말도 그래서일까?
세상에 흔들리지 않고 세상을 가로 질러 건너기 쉽지 않아서...
허리띠 더 졸라매고 신발끈도 여미라고
예수님은 세상을 향해 길 나서는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이유도
그걸 아셨기 때문이었을까?

   희망으로 (2020.04.29 오전 10:18:33)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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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아는 그런 비밀?
그래도 미리 좀 알려주면 힘내서 살텐데...
그분도 잘 모르는것 같더라구요.
제가 제게 준 사명을 몰라 헤매듯...
키미테님은 알려주시던가요? “사실은 너에게...”이러면서! ^^

 brokenreed (2020.04.29 오전 10:04:18)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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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그분만이 아시겠지요. 저도 왜 사는지 아직도 의문인걸요? 그냥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건가?

   희망으로 (2020.04.29 오전 10:20:06)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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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몰라요..
그래서 이런 글을 쓴 적도 있지요.

<아무 말 하지 않겠다>

그대를 만나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그대와 헤어져도 슬프다고 말하지 않겠다
살다 넘어져도 왜 태어났냐고 말하지 않겠다
그러다 죽어도 왜 죽어야하냐고 말하지 않겠다

‘생명’
‘삶’

애당초 이유를 모르니...
새삼 할 말도 없다.

 선하기 (2020.04.29 오후 12:07:29)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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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님~ 안녕하세요?
여러가지 일로 바쁜 날을 보내다가 불현듯 제게 밀려드는 무거운 물음... 그것이 바로 '왜 사는가?' 입니다.
어제와 한 치도 바뀜없는, 혹은 지난주와 한 시간도 틀리지 않는 똑같은 일상.
그런 일상을 내가 선택한 것인지, 누군가가 부여해준 것인지, 내가 다른 선택을 할수나 있는 것인지...
고민하고 고뇌하다가도 어김없이 반복된 일상을 되풀이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됩니다.
저도 답이 없네요..
학교일로 바빠서 지난 몇 주 갈말에 들르지 못했습니다.
바빠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제게 무겁게 물어보시는 질문 같습니다..ㅠ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12:18:38)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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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왜 사냐건 그냥 웃지요’라지만...
그냥 웃고 살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만만치 않지요?
남의 질문에 답하는 걸 걱정할 일 아니라
스스로 생기는 질문부터 좀 답을 얻으면 맘이라도 편히 살겠는데...
성경은 많은 답을 주지요? (어쩌면 그냥 목회자의 설교일지도...)
나에게 생활이 되고 살이 닿고 피가 뜨겁게 느껴지도록 살아있지ㅡ않다면
그 많은 답은 그냥 종이 위의 글자거나 하늘에 무의미하게 퍼져서 사라지는
공허한 소리일 뿐이기도 하니까요.
내가 내어주는 믿음이 있어야하고 내 고백, 내 사랑이 따르는 답을 얻고 싶어
늘 목이 마르네요...

   뷰티 (2020.04.29 오후 1:16:39)  PC

답변

희망으로님..탄산수는 별로 안 좋아하시죠??
그럼 우선 시원한 물 한잔 드시와요~~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1:18:05)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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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님이 주는 물이 어떤 물인지 알았다면...
또 달라고 할지도! ㅎㅎ
분명 맛있을 거 같아서요!

   뷰티 (2020.04.29 오후 3:21:43)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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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엄지 손가락 씻은물??3=3=3=3==3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1:15:09)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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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기는요!
4가지 밖에 답이 없어서... 사지요! ^^

   venus (2020.04.29 오후 1:19:16)  PC

답변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1:32:14)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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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직 은혜로 (2020.04.29 오후 2:46:57)  PC

답변

저도 아직 왜 사냐는 질문에는 답을 못했어요.
우울증이 심할때는 나만 없어지면 다들 행복할거 같단 생각을 하기도 했었고.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3:37:32)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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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ㅠ
답답 하지요?
답 몰라도, 답 없어도 살아가야하는 긴 날들이 우리 앞에 있으니.
나만 없으면 남들이 다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같을 때 저도 있어요.
공연히 짐만 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럴 때.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니더라구요.
내가 미워하던 사람들, 내게 짐이 되던 사람들 다 떠난 후에도
내 삶은 마냥 행복해지지는 않는걸 보니 나 없어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보여요.
그냥 내 문제는 내가 감당하고 해결할 문제지 남들하고는 상관이 별로 없을수도...

 새벽이슬 (2020.04.29 오후 3:27:05)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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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질문 젊었을때, 아니 어렸을때 제 자신에게 참 많이 했었던것 같아요.
삶이란것이 무엇일까?
지금은 그런 질문조차도 안하고 사는것 같아
내심 찔리네요.ㅠㅠ
지금은 그래도 조금은 나름대로의 변명꺼리를 준비해놓고 삽니다.
그분의 계획대로 이끌려 살아가고 있노라고..

저는 집사님글은 빠짐없이 읽지만
뭐라고 댓글을 달아야 할지 몰라 먹먹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냥 읽고만 나갈때가 더 많습니다.ㅠㅠ

   희망으로 (2020.04.29 오후 3:40:24)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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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습니다!
저도... 종종 남들의 글에 마땅한 생각이 안나거나
복잡한 마음이 들면 그냥 읽고 지나는걸요.
어떤 때는 아예 안 쓰고 안 올리고 해버리기도 하고요!
제가 무슨 답 내놓으라고 독촉하는 자격있는 사람도 아닌데요~^^
그래도 열번에 한번? 아님 백번에 한번 정도만 읽었다 흔적을! ㅎㅎ

 sea of glass (2020.04.30 오전 2:19:24)  andro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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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대답, 평생 고민하며 살겠습니다~~
제 몸 컨디션이 나빠, 돌아다니면서도 늘어져 있으니
결혼기념일이 맥빠진단 아내 말에 미안했습니다.
새겨서 선물해주신 커플펜 지금도 애지중지 하며
잘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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