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모르는 그 자리
<서로 모르는 그 자리>
최진실씨의 자살때 특히 기독교계의 충격은 더 심했다. 최씨가 기독교인이고 이은주·유니·정다빈·안재환씨 등 자살 연예인이 모두 기독교인이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노무현 노회찬 행복전도사 최윤희 최진실 김광석, 그리고 나의 아버지.... 하나같이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하고 열심히 생을 사랑하며 노력하면서 살던 분들이었다.
자금은 세상에 살지 않는 분들...
한때는 그분들 곁에 그 마음 그 외로움 그 두려움 한마디를 들어주고 같이 나눠줄 사람이 한명도 없어서 절벽앞에 서서, 혹은 사방이 벽으로 막힌 고립속에 죽어갔겠구나. 곁의 한사람이 못되어주는 우리가 참 야속하고 무심했구나 싶었다. 자책과 원망도 동시에 따라왔다.
그런데... 내가 죽을만큼 괴롭고 절망적 외로움 두려움에 빠져보니 아니었다. 전화기를 들고 누군가를 떠올려보니 캄캄하고 막막했다. 그것은 평소 알고지내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신앙을 같이 나누는 형제 교인이라는 이름으로 지낸 이들에게도 손을 내밀수가 없더라. 그들이 너무 멀어서도야멸차서도 아니고 내가 너무 깊어져서 내 상태가 너무 멀리 우주속 미아처럼 멀어져서 그랬다.
슬픔이 꾸역 밀고 올라오는 고립감.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산소부족속에 죽어가는 생명체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 것도 의욕이 안 생긴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입에 댈 수가 없고 일어나 운동이라도 나갈 기운도 없어지는 공황상태가 짖눌렀다.
이 깊이 추락한 순간에 누가 곁에 있기가 가능할까? 그들은 늘 있던자리 하던 생활을 하며 그대로이지만 죽을 것 같은 나는 심해의 바다로 가라앉는데 연결이 안된다. 그게 어찌 이웃의 잘못일까?
이제 경험하고보니 함부로 말못하겠다. 왜 손 안내밀고 누구에게도 터놓지 않고 자살했냐는 나무람도, 왜 절박할 때 손 내밀고 밥사주고 들어주고 못했냐고 탓하는 말도...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죽을 만큼 괴로운 자리에 선 사람과 평상시처럼 살고 있는 이웃은 거리가 너무 멀어져 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이미 너무 늦었기때문에...ㅠㅠ
오늘 나는 그 자리에 갔다가 간신히 한 사람을 붙들고 살아났다. 먼저 그 깊은 자리에 가보았고 슬픔을 경험해보아서 막막히 먼 거리에 있지 않은 사람을 떠올렸기에. 그 전화번호를 눌러도 안 미안하고 신호가 이어질 것 같아서. 하늘이 아직 내게 살아있어라 했다.
많은 죽어간 이들과 그때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평상시 삶을 산 이들, 양쪽을 모두 이해하는 경험을 했다. 병원 옥상에서 많이 울고 많이 고마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