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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도... 때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도구입니다

희망으로 2018. 12. 15. 19:32



<핑계도... 때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도구입니다>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다섯살 때 엄마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빠와 둘만 남았습니다. 엄마가 필요한 순간마다 엄마는 곁에 없고 아빠는 일과 양육을 감당하느라 지쳐갑니다. 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면서 힘들어합니다. 아빠에게 내색하지 않으려 참다가 날마다 잠든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정서적으로 힘들어 그럴 수 있으니 절대 야단치지말라는 충고를 들은 아빠는 그럽니다.


“아, 괜찮아! 어제 밤에 물을 너무 먹어서 그런거야!”

“아빠...미안해,”

다음 날 또 이불에 오줌을 싸고 사과를 하는 아이에게 아빠는 또 핑계를 댑니다.

“자기 전에 우유를 마셔서 그럴거야! 괜찮아!”

또 그럽니다.

“어제 저녁을 너무 짜게 먹어서 그런게 분명해!”

“피곤해서 오줌 누지 않고 잠들어서...”

“아마... “

“......”


숱한 날을 핑계를 대면서 아이에게 화내지 않고 이불을 빱니다. 어쩌면 무너지는 자신을 버티기 위해서 하는 핑계일지도 모릅니다. 아내가 갑자기 돌이킬 수 없는 난치병 선고를 받았을 때 나도 그랬습니다. 


“이건 내 잘못이 아냐, 몇 만명에 한명씩 와야하는 통계때문에 걸린거야!” 

병원비가 떨어져 고민할 때는 그랬습니다. 

“이 정도 시간이 되면 다 그러는거야, 내가 꼭 무능해서 그런거 아냐!” 

아이가 혼자 지내기 힘들어 울면서 전화가 올 때도 그랬습니다. 

“우리 때문이 아닐거야, 학교에서 누구랑 싸우거나 야단 맞아서 그럴거야!”

다시 재발이 와서 중환자실을 가게 되었을 때는  

“병원 의사나 간호사가 무심해서 또 아프게 된거야!” 했고, 긴 간병으로 몸이 쇠약해져 병이 났을 때도 핑계를 대었습니다.

“어제 창문이 좀 덜 닫혀서...”

끝이 오지 않고 길게 가는 답답한 마음이 몰려오면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낮잠에 빠져 좀 길어지는게지, 하늘 시간은 1분이 십년이니까...”


그렇게 자꾸 자꾸 핑계를 생각해내고 필요할 때마다 남에게, 자신에게 말합니다. 아무 핑계를 대지 못하면 너무 힘들고 절망감만이 가득 채워져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점점 지쳐가고 자신이 없어지는 아빠는 그러다 이웃의 강권에 못이겨 선을 봅니다. 새 엄마가 될 수도 있는 여자가 아이와 잠시 놀아주면서 많이 웃습니다. 그날 밤 정말 기쁘게도 아이는 이불에 오줌을 싸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이유로 끌어안고 기뻐하며 희망을 맛봅니다.


그러나... 아이도 자기 그림의 엄마자리에 다른 엄마가 오는 것을 실감하면서 무거워지고 아빠도 기억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다 아이가 다시 밤에 이불에 오줌을 싸고 맙니다. 아이도 아빠도 더 큰 절망에 잠깁니다. 아빠 혼자 아들을 키우는 ‘솔개’라는 드라마에서 무지 공감한 부분입니다.


실재로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기쁘고 좋은 순간이 오기도 합니다. 핑계를 대지 않아도 되는 짧은 행복이 오기도 하는 삶이 한편 다행입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순간이 고마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더 위험하기도 합니다. 한 번 따뜻한 후에 오는 추위는 더 힘들어서 다시 핑계를 찾아내야 합니다. 


언제나 삶은 끝에 닿기 전까지는 행운과 불행이, 기쁨과 슬픔이 교대로 옵니다. 힘들 때 아무 핑계도 떠올릴 수 없으면 그 순간을 견뎌 넘기기가 너무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살아남아라고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말하기도 하는 이유가, 불쑥 들이닥치는 고난의 상처보다 생명이 귀하고, 그걸 넘기면 올 위로가 분명 크기 때문입니다.


이 밤처럼 여러 잡생각과 고단한 몸이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때는 빨리 핑계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너무 조용해서라거나, 낮에 누군가의 미운 말 때문이라거나, 아님 커피를 한 잔 덜 마셔야 했다는, 뭐 그런 시시한거라도 떠올려야 합니다. 안 그럼 ‘난 우울증이 깊어지는 중이야, 어쩌면 이번에는 못 이길지도 몰라...’ 하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릴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핑계도... 때론 피투성이로라도 생명을 유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네가 태어난 것을 말하자면, 네가 태어나던 날, 아무도 네 탯줄을 잘라 주지 않았고, 네 몸을 물로 깨끗하게 씻어 주지 않았고, 네 몸을 소금으로 문질러 주지 않았고, 네 몸을 포대기로 감싸 주지도 않았다.

이 모든 것 가운데서 한 가지만이라도 너에게 해줄 만큼 너를 불쌍하게 여기고 돌보아 준 사람이 없다. 오히려 네가 태어나던 바로 그 날에, 사람들이 네 목숨을 천하게 여기고, 너를 내다가 들판에 버렸다. 

그 때에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가다가, 핏덩이로 버둥거리는 너를 보고, 핏덩이로 누워 있는 너에게, 제발 살아만 달라고 했다. - 에스겔 16장 새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