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나빠지고 점점 감사해지고...
<점점 나빠지고 점점 감사해지고...>
전화가 울렸다.
“여기 2층 치료실인데요, ㅇㅇㅇ환자 치료 못오나요?”
“아뇨, 아닙니다! 좀 늦었는데 바로 가요!”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재활치료실로 데려가서 운동기구에 앉혔다.
돌아서서 올라오는데 가슴이 뭉클해지고 그늘진 계단인데도 마치 햇살이 들어오듯
등짝이 따뜻해진다. 감사하다는 마음이 울컥 거듭거듭 솟는다.
사실은 거의 두 시간 전부터 이마에 땀이 송글 맺히도록 씨름을 했다.
기력이 바닥난 아내는 감기가 열흘가까이 떠나지 않다보니 며칠을 배변을 못봤다.
그렇다고 안먹을수는 없고 뱃속은 불편한데 다른 환자처럼 나오지 못한다.
아내는 난치병 재발 때 대소변 신경이 모두 마비되어버린 중증대사장애 상태라서...
결국 기운은 딸리고 밀어내지도 못해 이틀째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빼냈다.
아침마다 이런 씨름을 하다보면 녹초가 되어 종종 그대로 침대에 누워버리고
그대로 종일 약에 잠에 취해 운동치료를 포기한 채 하루가 지나가기 일쑤였다.
오늘은 그럼에도 꼬리뼈의 벗겨진 욕창 치료까지 서두르고 간신히 움직였다.
예전에는 재활치료실 가는건 당연했고 빨리 회복되지 않는다고 조바심을 냈다.
이제는 한달에 절반도 못가게 되면서 가기만 해줘도 고맙다.
제 시간에 제 자리에 치료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다보면 때론 눈물이 핑돌기도 한다.
며칠 심하게 아프면서 잠시 편안하게 잠든 순간에 아내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무 통증도 불편도 못느끼고, 숨이 차서 괴롭지도 않으며 아이처럼 편히 잠든 얼굴.
“하나님, 아내가 이렇게 평안할때, 아무 슬픔 없을 때 이대로 데려가 주시면 안될까요?”
아... 나도 모르게 순간 속으로 기도를 드려버렸다. 들어주시면 어쩌지?
정말 그랬으면 좋을 것 같아 소원을 말하고도 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아내에게는 참 좋은 복이 분명하지만 남는 나는? 아이들은?
아직 보내고 참을 마음의 준비도 안되었는데...
잠이 깬 아내의 팔에 머리를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따뜻한 아내의 체온이 복잡하고 일렁거렸던 내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혀준다.
금방 잠이라도 들것같은 그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라니!
“여보, 아이들이 이래서 엄마품에서 세상걱정없이 잠이 드나봐, 참 안정이 되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이 멈춘듯한 평안은 사실 하루중 거의 없다.
늘 긴장되고 무엇에 쫓기고 걱정이나 통증으로 인한 괴로움 아니면 우울해서 지낸다.
이 짧고 드문 순간의 평안을 고이 기억할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럼 나머지 긴 시간의 고단함도 불편도 참아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어쩌면 자주 스쳐갔는데도 놓쳤는지도 모른다. 자꾸 안좋은 일들에 파묻혀서.
어떤 건 지나갔는데도 놓지 못하거나 어떤 건 오지 않았는데도 미리 겁먹어서...
아내의 상황은 분명 점점 나빠지는데, 이상하게 나의 감사는 깊이나 밀도가 커진다.
예전 같으면 불평의 대상이 되었던 사소한 것도 감지덕지 고마워지고,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가는 것도 가슴이 저리도록 행복하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욕심은 줄일수록 작은 것에도 만족해지고 소원의 기준은 낮출수록 감사한게 많아진다.
변만 나와줘도 기쁘고
밥만 조금이라도 먹어주면 맘이 놓이고
아내가 숨만 편히 쉬어도 날아갈 것 같다.
치료실에 출석만 해줘도 감지덕지고
잠시라도 통증없이 잠든 모습에 울컥 평안이 몰려온다.
세상에 이 정도도 안누리는 사람들 몇이나 된다고,
기껏 이 정도 바람이 무슨 호사라고 간절하게 기도까지 하게 되는지...
살아있다는 것, 사랑하는 이들의 곁에 있다는 것
그 금쪽같은 순간들을 아주 많이 모르면서 흘려보내며 살았었다.
진흙속에서 보석을 발견한듯, 순간의 기쁨과 평안과 은총을 누렸어야 했다.
그랬어야 더 행복한 삶을 살수있었을거고 더 많이 감사했을거다.
이제라도, 많이 탕진하고 조금 남은 생이라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아내가 아프지 않았다면 지금도 눈치 못채고 미련했을 내 영혼,
점점 나빠지면서 점점 감사해지는 하늘나라 공식이 어렴풋 보인다.
(사진- 딸아이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2년 넘게 꽃을 보내온다.
병상의 엄마에게 힘내라고 한 주 걸러 한번씩! 이 때 아내의 표정은 밝다.
이 순간이 찰나의 행복에 해당할까? 살아 있지 않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미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