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괴로움이 있다

희망으로 2018. 5. 4. 09:46

오늘도...
그 모든 것, 그 모든 날이 일상이 되는 반복중의 하루다.
일상이 구원이다. 
괴로움을 탈출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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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구, 참말 힘들다... 우짜라고?” “간호실에 약을 더 달라고 해줘!” 창밖은 모처럼 눈이 부시게 맑고 쨍쨍한 햇살이 빛나고 있는데, 정작 창문 안쪽 병실에 있는 내게는 이른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감정이 억누르고 있다. 아...
댓글
김재식 그러고 보니... 예수님은 진작 알고계셨나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생략)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자를 사함같이...(생략)" 

날마다 하루치 양식을 주시고, 
날마다 우리가 서로에게 서로의 허물을 용서하며, 
그저 하루씩 생활로 살라는 내용을 진작 기도문으로 주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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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식 생각해보니 또 한가지가 있다. 
모든 것을 일상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의도가. 
나는 유난히 피와 수술장면 이런거 무서워한다. 

그래서 의학드라마는 도통 못본다. 즐기는 아내와 딸과 딴판으로. 
비슷한 연장선에서 만성질병을 가진 노인네분들과 장애를 가진 분들이 두려웠다. 
그래서 그쪽과는 늘 피하고 싶었다. 잘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데... 어머니를 위암 파킨슨 당뇨 결핵 치매 등온갖 질병을 담아 잠시 함께 살게했고 
10년 넘도록 용양병원의 특성상 앞 옆 침대에 치매와 뇌혈관 질병 등 온갖 병을 이고 진 
할머니 할아버지를 지척으로 보고 살게하신다. 
장애를 가진 사람은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내를 1급부터 시작해서 시각장애까지 만들어 
도망도 못가고 24시간 부축하게 만드셨다.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약점을 가장 곁에다 두시는 고약한 취미의 하나님 ㅠㅠ 
아직도 반길 정도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 이해를 하도록 만드시고 공연한 거리낌은 없애셨다. 
일상화로 만든 생활은 그렇게 바꾸기 힘든 성격과 수용이 힘든 대상들도 좀 익숙하게 하신다. 
큰 죄에서 작은 미안함 정도로 내 생을 변화시키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일까? 
어쨌거나 일상이 된 삶들을..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일상이 있다>

“에구, 참말 힘들다... 우짜라고?”
“간호실에 약을 더 달라고 해줘!”

창밖은 모처럼 눈이 부시게 맑고 쨍쨍한 햇살이 빛나고 있는데, 
정작 창문 안쪽 병실에 있는 내게는 이른 아침부터 잔뜩 찌푸린 감정이 억누르고 있다.

아내는 소변검사 후 처방된 방광염증 항생제를 2주나 계속 먹었다. 그리고 끊은 지 사흘 만에 증상이 시작되었다. 잦아지는 소변간격, 뿌옇고 탁한 소변색, 찌릿찌릿 몰려오는 불편한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 분명 방광염이 다시 시작된 것 같다.

두 번 , 세 번, 연달아 소변을 빼달라는 아내의 말에 왈칵 짜증이 몰려왔다. 나도 모르게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바깥으로 내뱉으면 사고가 된다. 그러지 못하는 감정은 또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아, 못 살겠다! 이 지겨운 날들을 언제까지 살아야하나...”

하지만 이 감정은 아내가 반복되는 증상들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나도 그건 안다.
병원생활 10년을 넘어가는 만성 희귀병환자의 증상이 어디 한두 가지며 하루 이틀이라고.
작년에는 전신마취 수술만도 두 번이나 했고 항암주사며 피검사며 여기저기 지치게 많은 일들이 몇 번인지도 모르게 오고갔는데 뭘 새삼스럽게...

“그거 알아? 요 작은 슬리퍼 하나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거!”
“에이, 설마. 무슨 특수훈련이라도 받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죽을 때까지 때리면 죽어!”

말이 안 되는 억지라고 생각하며 그분의 농담을 웃고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말이 지금 실감나게 진지하게 떠올랐다. 
정말 그럴 수 있겠다는 심각한 공감으로.

지금 상황이 딱 그런 비슷한 느낌이다.
작은 일 하나로 사람이 죽지야 않겠지만 또 쌓고 또 쌓고 또 쌓으면...
어느 순간은 그 작은 일 하나 더 올릴 때 못살겠다고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 과정을 자세히 다 모르는 사람들은 그 작은 슬리퍼에 맞아죽었다거나
그깟 사소한 일에 귀한 목숨을 끊었다고 또 비난을 하겠지만.

작고 늘 달고 사는 증상인데도 울컥 짜증을 내게 된 이유는 따로 있다. 문제는 바로 나 였다.
오랜 허리 어깨 통증으로 복대를 차고 살다가 간신히 잊어버릴 만 하니 치통이 왔다.
시리고 바늘로 찌르는 통증이 계속 치신경을 괴롭혔다. 몸이 고단하고 수면부족에 스트레스로 열이 올랐다 내렸다 하면서 쉬 물러가지 않아 하루에 두 번 세 번씩 진통제로 버텼다.
간신히 딱 하루 정도 안 아파서 이제는 살 것 같다고 했더니... 어제는 저녁 먹고 좀 바로 누웠던 게 체했나 보다. 밤 11시경부터 못 참을 복통으로 바깥으로 화장실로 두 시간 넘게 들락거리며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그 순간에는 죽을 것 같이 무섭고 힘들었다. 아득하고 괴로워서.

간신히 토하고 설사로 그 고비를 넘기고 녹초가 되어 잠 드려는 새벽에 아내가 연달아 부른 것이다. 그러니 짜증과 우울함이 몰려올 수밖에... 딱 죽기까지 슬리퍼로 두들겨 패다가 마지막 죽기 직전 한 대 더 때리는 타이밍이 된 거다. 아내의 방광염 증상 재발이.

“오늘도 변함없이! 흐흐”

화장실 탐방을 다녀온 나는 아내에게 보고했다.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은 언제나 우리가 양보(?)하는 날이다. 오늘이 그 성스러운...아니고 성질 죽이고 대기하는... 성 금요일이다.

아내는 날마다 아침 10시면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대장 신경이 마비되어 자율로는 안 되는 배변을 처리하는데 40분에서 1시간 안팎, 그리고 세면 머리감기 등 하다보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사이를 날마다 일일행사처럼 치른다. 이 때문에 다른 환자들과 다투기도 하고 괴롭지만 그래야 사니까.

어느 날 부터 그 10시에 누군가 우리보다 10분 일찍 화장실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당연히 곧 나오겠지 하며 문밖에서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몇번을 거의 한 시간씩 기다린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 분들이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들어가며 거의 한 시간을 사용한다는 규칙적인 움직임인 것을.

“그 분들 알아요?”
“그럼요! 위층에서 한동안 같이 입원생활을 했는 걸요”

그 분들과 같이 지냈던 사람에게 대충 이야기를 들었다.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거의 못 움직이게 된 덩치 큰 형을 비슷하게 덩치 큰 남동생이 간병하며 돌본다는 사실을.

교통사고가 난 초기에는 보상받은 돈도 있고 부모님도 힘이 있어 돌보다가 비용도 바닥나고 부모님 연세도 많아지면서 결국 남동생이 결혼도 포기하고 전적으로 재활치료를 위한 간병에 매달리고 있다는 딱하지만 감동적인 사연을.

그런데 오늘 아침 문득 깨달았다. 몇 해나 우리랑 그렇게 같은 화장실을 연달아 사용하면서도 몰랐는데 그 형제들이 참 규칙적으로 생활해오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남자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기분대로, 또는 게으름과 고단한 처지가 불러올 충동적 감정이 생활스타일을 흐트러지게 할 수도 있는데 전혀 안 그랬다는 사실을.

늘 소변주머니를 차고 살며 침대형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하는 중증환자를 돌본다는 게 얼마나 손이 많이 가고 지치는지 나는 안다. 그럼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복생활을 해낸다는 것은 정말 우애가 깊은 정도를 떠나 종교적 헌신에 가까운 각오가 아니면 못할 생활이라고 본다.

“진짜 변함없지? 요일도 시간도, 씻기고 치료시간에 데려오고 데려가는 것 모두!”

아내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쉽지 않은 상태의 삶을 일상으로 만들어 유지하는 모습이. 평범한 남들을 기준으로 보면 다큐 인간극장에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지만 그분들은 그 상황을 그저 날마다 사는 일상으로 소화해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도 그러네? 날마다 아프면서 잠시 멀쩡하면 신나는 이 상태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분명 정상은 아닌데 우리에게는 일상이니”

(사실 들여다보면 정상으로 보이는 그 사람들도 다 남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자기만의 괴로움이 있고 그럼에도 그 처지를 그저 반복하며 받아들이는 일상들일지도 모르는데)

이 글을 쓰다가 시간이 되어 아내를 데리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울렁거리고 어지로움을 버티지 못해 결국 양치질도 못하고 데리고 나왔다. 오늘 오전 치료는 물 건너갔다. 이게 우리의 일상이다. 늘 반복되는 불규칙 상황...

그랬다. 아프지 않고 순탄한 남들을 기준으로 보면 많이 별난 생활일 우리도 정작 우리에겐 이게 일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가끔 몸보다 마음이 못 견디고 힘들게 느낄 때는 정상인 남들의 일상에 우리를 비교할 때다. 그러면 여지없이 속상하고 원망스럽고 불안하고 슬프고 외로워진다... 그걸 어떻게 말로 다할까.

좀 불행하고 괴로워도 죽지 않고 사는 비결은 간단하다. 어떤 처지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들면 된다. 누구나 일상은 별나게 호들갑스러운 감정을 가지지 않고 살아낸다. 그게 내 일상이니까, 그저 마냥 규칙적으로 반복하고 적응하면 좀 안정이 되고 평안해지기도 하니까. 가끔 깨어지는 위험만 잘 넘기고 피하면 된다.

5월1일은 노동자의 날이었다. 세상에서 노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부럽다고 느꼈던 날. 내일은 어린이날, 며칠 뒷면 어버이날. 5월은 가정의달이다. 많은 가족들이 가족의 귀함을 나누고 누리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달이다. 물론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한 달이기도 하다.

이런 달에는 좀 더 조심해야 한다. 더구나 오늘처럼 충동적으로 남들과 비교되고 우울해질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그때는 지혜롭게 주변 사람들을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들도 다 자기 짐을 지고 일상으로 적응하고 산다는 걸 눈치 챌 것이다.


‘괴로움 탈출비결? - 그 모든 처지를, 그 모든 날들을 일상으로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