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18. 3. 11. 15:42

<지금은 사순절... 여기는 겟세마네 (누가복음 22장)>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그리고... 예수님은 부탁했습니다. 오늘 밤에 모두가 등을 돌리고 도망갈 것을 알면서도.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특별히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더 앞으로 나가신 것처럼
성도는 이 사순절에, 이 겟세마네 같은 세상에서 차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죽을 만큼 고민되고 슬픈 마음을 나누어 같이 기도해달라는 예수님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기껏해야 조금 더 나가는 것 뿐, 
예수님처럼 더 앞으로 혼자 바위를 붙잡는 기도도 아니고,
마지막 남은 십자가를 지거나 쓴 잔을 피하지 못하고 마실 일도 아닌데도
같이 하지 못하고 무엇에 그리 힘쓰고 사느라 졸음에 빠집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아마도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하겠다고 대답은 했을 것입니다. 우리처럼.
그리곤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처럼.
결국엔 시험에 넘어갔습니다. 우리처럼...

-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딱한 마음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나즈막히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눈길은
큰 파도처럼 몰아치는 시험과 고난들 앞에서 이겨내기를 바라는 응원이었습니다.
자신이 따라갈 죽음의 길 만큼이나 작아도 무거울 세상 길을 각자 이겨내라는.
예수님 자기의 짐을 덜어달라는 그런 무시무시한 주문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무시로 깨어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를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지켜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기도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세상에 너무 늘렸기에 우리는 약해졌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제자들이 잠든 사이에, 우리들도 잠든 사이에도 예수님은 기도로써 홀로 나가셨습니다.
자신의 영적 싸움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셨고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이것이 기도의 힘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이 힘이 갑옷처럼 입혀지기를 바라셨습니다.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두 번째 다시 제자들에게로 오셨을 때 한 제자도 깨어 기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십년, 삼십년을 지켜보고 다시보아도 종종 우리는 늘 무언가로 지치고 잠들어있었습니다.
정말 간절하다면, 정말 두려워한다면 육신의 피곤함을 뚫고도 영의 기도를 할것이고,
어쩌면 육신의 연약함을 애당초 허탄한 곳에 덜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홀로 나아가 같은 말씀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도 천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도우셨습니다.

지금은 사순절, 여기는 겟세마네 같은 세상입니다.
하나님도 천사도 준비되어 있고 대기중입니다.
그때 그 자리의 예수님을 도왔던 것처럼 우리를 돕기 위해서.

우리의 기도가 이어지면 우리 자신은 점점 내려놓게 됩니다. 
앞서 가던 내 생각, 내 계획을 하나님께 맞추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도망갈 일들이 사라질까요?
마주보고 받아들이고, 죽어도 다시 살아날 부활로! 예수님의 길을 따라서...

이미지: 사람 1명 이상
댓글
조영균 집사님,
함께 나누고 싶어 공유합니다.
감사합니다.
관리
김근식 "어쩌면 육신의 연약함을 애당초 허탄한 곳에 덜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라는 글이 참 마음에 와 닿네요..귀한 묵상의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