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모든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딱 하나만 빼고...

희망으로 2018. 1. 6. 21:40




<모든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딱 하나만 빼고...>

 

아주 오래 전 조세희씨의 책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읽다가 너무도 깊이 새겨진 기억하나가 있다. 마치 화면이 되어 동판에 새겨져 버린 듯한 느낌. 그건 그 철거대상의 마을에서 마치 성공한 사람처럼 부러움을 받던 한 처자였다. 강 건너 세상은 그들에게는 바깥세상과 같았고 그 세상의 회사에 취직을 해서 출퇴근을 하러 나가고 들어오는 모습은 거의 탈출하고 싶은 꿈의 모델이었다. 나중에 그 처자도 가난의 풍랑에 말려 모든 것을 잃게 되지만 한동안은 그랬다. 나도 그 책을 읽던 시절 직장도 변변찮고 수중에 돈도 없던 시절이라 아주 많이 그 처지가 부러웠다. 생존이 달린 형편이었으니...

 

비슷한 또 하나의 장면은 영화 꼬방동네 사람들에서 슈퍼를 하면서 그 찌든 빈촌에서 그나마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고 여유를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루 먹을 양식과 갑자기 아플 때 병원비조차 없는 사람들이 모인 마을 속에 그들의 처지는 마치 바깥세상의 재벌 정도의 느낌으로 보였다. 그런가보다. 너무 먼 곳의 부자는 부럽지 않고 가까우면서 눈에 보이는 거리의 차이는 뼈저리게 와 닿는 실감을 주는 법칙.

 

퇴원한다면서요?”

그러게요. 일주일만 더 있다 가고 싶은데 남편이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려요. 아깝게...”

뭐가 아까워요?”

하루에 20만원씩이나 보험에서 나오는데 그걸 못 받잖아요

 

사정은 이랬다. 젊은 시절 보험회사를 다니던 그 아주머니는 이런 저런 보험을 참 많이도 들어놓았다. 영업실적을 채우다 그러기도 하고 남편이 공무원이라 집의 생활이 여유도 있어서 그랬다는. 그런데 어쩌다 팔을 좀 다쳐 수술을 받았는데 뭐 생활하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였지만 아예 이참에 푹 쉰다고 입원해서 한 병실에 있었다. 그런데 한 곳만 받게 법이 바뀐 실비기준 이전 중복 보장이 되던 시절에 가입한 보험이라 하루 20만원이 넘게 나왔다. 한 달에 600만원, 정말 큰돈이고 욕심이 날 만했다. 입원 보상이 그 정도니 치료비가 나오는거야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고.

 

아내가 십여 년 오랜 병원생활하면서 늘 부러운 사람들은 산재 환자, 자동차 보험 받는 교통사고 환자, 아니면 개인으로도 보험 많이 든 사람들이었다. 치료비 걱정 없고 간병인 다 두고 가족들도 좀 쉬어가며 돌보는 그 형편이 너무 부러웠다. 바깥세상의 수십억 수백억 가진 아무도 부럽지 않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가까운 병실 안에서 눈에 보이는 차이는 날마다 괴로운 고문이었고 부러움이었다.

 

자연도 그렇다. 날이 흐려질수록 그림자가 약해진다. 그러다가 아예 밤이 되면 그림자가 사라진다. 아침이 되고 점점 밝아지면서 그림자가 다시 나타나고 낮이 될수록, 빛이 밝아질수록 그림자는 더 짙어진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이고 삶의 법칙이기도 하다. 어디가 밝은 쪽이 되고 어디가 어두운 그림자가 될지 모른다. 하나의 사람 안에서도 어느 날이 밝은 날이 되고 어느 날은 어두운 날이 될지 우리는 모르고 산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빛이 어디에서, 언제 오느냐에 달렸다. 그쪽을 향하여 가깝게, 앞에 있는 것이(물건이든지 사람이든지) 밝은 곳이 되고 뒤쪽이 어두운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그건 상당부분은 우연이거나 행운일 수도 있다. 빛은 우리가 조종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능력 밖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작은 빛 정도는 사람의 노력과 재능에 따라 끌어오거나 다가갈 수 있지만 아주 큰 빛은 그럴 수 없다.

 

아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 시대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옷을 다 벗기고 모욕을 당하는 상황에서 많이 배우고 성실하고 재능이 있는 개인의 능력이 인정을 받을 수 있겠냐고, 미얀마의 로잉야 부족의 몰살 상황에서 메콩강을 아이를 머리에 이고 건너는 순간에 개인의 이상과 역사관, 인격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아마도 많이 알고 많이 소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난민촌에서 더 우울하고 괴로울지도 모른다. 차라리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잘 자고 잘 먹고 그 위기를 잘 견딜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건 너무 극적인 과장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도의 차이지만 한 가정에 불어 닥친 중한 질병으로 가족이 해체되어 각자 살아가야하는 형편도 별 다르지 않다고 해주었다. 너도 그런 점에서는 한편 억울할 수 있다. 좀 더 안정적이고 뒷바라지를 해줄 수 있는 가정이라면 지금보다 훨씬 재능도 꽃피우고 고민도 줄어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누추해졌지만 그건 개인의 잘못도 부끄러움도 아니니 그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하면서 살아달라고 했다. 누가 그 불행을 원했겠냐고, 본인일 너도 안 그랬겠지만 나도 엄마도 아니었다고...

 

그런 불가항력의 시대나 운명에 마주치면 우린 각자 개인의 힘을 벗어나는 자책이나 절망은 하지 말아야 한다. 누가 태양을 끌어오거나 밀어내며 어둠을 좋아하거나 내버려두고 싶을까? 그러면서 한편으로 의심도 생겼다. 수동적으로 당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너무 많은 종류의 빛을 우리가 스스로 만드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건강의 빛, 재물의 빛, 성공의 빛, 명예와 각자 세운 높은 목표의 선들 등. 그 많은 빛으로 인해 사방팔방에서 밝은 선두그룹과 쳐진 그림자 그룹이 자꾸 생겨나는 것 아닐까? 그 무겁고 우울해지는 그림자의 면적을 넓히는 짓을...

 

분명 모든 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딱 하나를 빼고는. 그건 바로 높은 곳, 앞선 곳에서 자랑스럽게 존재하려고 하지 않는 예수그리스도의 빛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러러보는 빛들은 다 높이 있고 저만치 앞에 있다. 그래서 사람도 높이 오르는 사람, 남보다 앞으로 빨리 달려가는 사람이 당연히 환하게 밝아지고 낮은 곳에서 허우적거리거나, 뒤처지는 사람은 모두 그림자처럼 어둡게 된다.

 

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빛은 그렇지 않다. 정말 더 낮은 곳에서 우리를 비추고 웅크린 구석과 뒤쪽에서 갈 길을 비추어주며 힘겨워 하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환하게 해준다. 정말이냐고 묻는 이들은 예수의 살아간 행적과 말씀과 마음을 찾아보면 바로 알 일이다. 우리가 가지는 자책과 열등감을 한 덩어리도 남기지 않고 녹여버린다.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도 않고 절망적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그건 지금 여기가 아닌 영원한 세상 영원한 시간 속에 있는 나라로 가자고 하시기 때문이다. 이따위 눈에 보이는 차별이나 부러운 대상정도는 찍 소리도 못하는 멋진 나라로.

 

세상의 모든 빛은 그림자를 만들고 뒤쳐진 모든 사람을 슬프게 하지만 예수님의 빛은 거꾸로 어디든지 어느 시간이든지 그림자를 만들지도 않고 경쟁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를 조급하거나 옹졸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곳의 그림자와 어둠을 없어지게 하는 거울 역할을 하고 싶게 만든다. 세상의 빛은 많은 그림자를 만들수록 능력 있고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니까 사람들을 그렇게 살게 하지만, 예수님의 빛은 반대로 모든 것을 밝게 해서 두려움과 슬픔이 없는 나라를 만들게 신자들을 두근거리게 충동한다. 그 나라 안에 나도 살고 싶게 한다.

 

그래서... 내 소원은 달라진다.

 

남들의 감사헌금을 내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기 발로 산과 들로 다니고 계단도 오르고 내리는 건강만 주신다면! 외모가 좀 못생기거나 까짓 성깔이 좀 고약해도 괜찮다.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무엇이나 잘 먹고 때가 되면 화장실을 제 발로 걸어가서 남의 손 빌리지 않고 대소변을 혼자 힘으로 볼 수만 있다면! 그렇지 못하는 병든 아내를 십년이나 돌보며 더 절실해진다.

 

꼭 끌어안고 이마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그저 먹을 거 두 개만 손에 있어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줄 마음 있고, 자리 좁혀 앉으면서 옆에 앉으라고 빈자리 손바닥으로 탁탁 치는 심성만 있다면! 천재 같은 재능 없고 좀 게으르고 바보 소리 들어도 상관없다!

 

떵떵거리는 재산 없고 박수 받고 상 받지 못해도 위와 같은 그런 사람 만나면 평생 웃으며 친구로 살고 싶다. 내가 남에게 그런 사람으로 보이게 살지 못해서 더 그렇다. 그냥 건강하고 단순하고 시시한 사람이 되는 것이 왜 그리 어려울까? 작은 일에 일희일비 하며 사는 거, 그거 하나님이 주시는 여러 종류의 은총 중 하나다. 아니, 어쩌면 그중 베스트 다섯 안에 들어가는 값지고 귀한 은총일 거다. 왜냐하면 큰 시련이나 중병에 걸린 분들이 목 놓아 기도하며 바라는 소원을 많이 보았는데 하나같이 바로 그런 사소한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저 좀 시시하고 소소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고, 시시하고 소소한 일상덕분에 잔잔한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평생 이어지게 해주세요! 아무 빛이나 따라가다가 온통 허구한 날 그늘 되지 않게 해주시고 예수님의 빛으로 그늘 없는 나라에 살게 해주세요! 제발, 프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