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처음도 아닌데 뭐, ...그래서 더

희망으로 2017. 10. 10. 09:47





<처음도 아닌데... 그래서 더 두렵습니다>

“밤이 오는게 무서워...”

아내의 입에서 새어 나오듯 하는 말입니다. 38도에서 위 아래로 오가며 일주일에 가깝도록 맞아대는 항생제와 수액 주사에도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 열과 씨름하느라 지친 탄식이라 듣는 내게도 안타깝습니다. 처음에는 끊어지는 허리 통증에 괴롭다가 고열이 오고 속이 울렁거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며 밤잠을 못자며 뒤척입니다. 그나마 낮에는 수시로 간호사도 체크해주고 남편인 나도 팔다리를 주무르며 열을 내리도록 돌보지만... 

하지만 밤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곁에 앉은 채로 아픈 몸을 좀 마사지하다가 비틀어지는 몸과 푹 떨어지는 고개를 견디지 못해 그만 드러눕고, 그러면 잠에 떨어지고 맙니다. 참으로 연약하고 쓸모없는 배우자로전락합니다. 그러니 아내는 밤이 오는 것이 정말 싫고 두려울 것입니다. 땀과 통증과 고열의 두통이 짜증도 나고 힘들며 무섭기도 하고 외롭기도 할 것입니다. 남편인 나에게 원망도 만만치 않게 생길 것입니다. 나도어쩌지 못하는 미안함에 그저 미어집니다.

“보호자님, 이 해열제 좀 먹이세요”

간호사가 잠든 나를 깨워 약을 줍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입니다. ‘좀 있다 깨면 먹일게요’ 받아만 놓으려는데 안된다고, 지금 바로 먹여야 한다고 줍니다. 아내가 다시 열이 올라 38도를 넘었다며 급하니 우선 먹는 것으로 주고 다시 주사제를 처방받아서 놓을 것이랍니다. 왜 이렇게 열이 안잡힐까? 걱정도 되고 한편 화도 납니다.

‘처음도 아닌데...뭘, ‘ 스스로를 위로하고 겁내지말자고 중얼거리다 문득 떠오릅니다. 발병 초기의 일들이 생각납니다. 정말 물 한스푼의 양도 넘기지 못하고 토해대며 13일이 넘도록 마른 송장처럼 뜬 눈으로 신음하던 시기도 있었고, 환청과 환각으로 근 한 달을 시달리는 아내곁을 지키다 나는 결국 뼈와 피부만 남을 정도로 말랐고 황달이 오고 말았습니다. 간수치는 오를대로 올라 보험회사에서 계약을 취소하고 돈을 돌려주기도했습니다. 5대영양소가 바닥이 나서 만약 쓰러진다면 아내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전문가의 염려어린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랬던 위기도 넘겼는데, 처음도 아닌데...’해봅니다.

그런데 그다지 큰 위로가 되지도 않고 마음이 편해지지도 않습니다. 그때의 막다른 벽앞에서 마냥 무서웠던 느낌과는 또다른 좌절감과 묘한 분노가 뒤섞여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복잡한 허무한 심정이 됩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다는 체념과 도망가고 싶은 지겨움과 나쁜 생각이라는 자책 등이 온통 범벅이 되어 무기력해집니다. 동시에 그런 상태가 어떤 수렁으로 한없이 추락하는 공포감을 부르기도합니다. 발이 닿지않는 바닥으로 계속 추락중인 그런 심정...

그러고보면 경험이라는 것이 반드시 유익하고 힘이 되는 것만은 아닌가봅니다. 고문의 효과를 말하면서 처음 당하는 사람보다 경험을 한 사람이 훨씬 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합니다. 고문의 힘겨움이 기억을 보태 미리 더 못견디게 된다는. 그래서일까요? 그 고단함과 괴로움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두번 째 맞이하는 마음은 훨씬 멀찌감치 발을 빼게 됩니다. 하기도전에 지치고, 이제 시작인데도 나중에 올 낙심을 미리 당겨 힘겨워하게 됩니다. ‘처음도 아닌데...’ 처음보다 더 고약하고 처음보다 힘들어하고 그래서 의도적으로 외면하려고 합니다. 처음보다 더 두려워지는 이유입니다.

조금 종류가 다른 이야기지만 죄에 대한 벌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지은 죄일 경우 좀 감면해주지만 다시 짓는 죄는 알고도 지었다고 중벌을 줍니다. 그것은 세상의 법만 그런 것이 아니고 성경에서도 말합니다. ‘알고도 하는 것은 모르고 한 것보다 죄가많다!’ 고 말합니다. 수고가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며 행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합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 요한계시록 2장2-3절]

‘처음도 아닌데...’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도망가고 싶어지는 현실과 그래서는 안된다는 내 속의 양심,사랑, 하나님의 경고에 갈등이 생깁니다. 마음에 평안이 없어지고 사랑에 열정이 식어 애매한 표정과 애매한 행동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일까요? 긴 병에는 장사가 없고 효자도 없다! 라는 말. 처음은 같으나 끝에가서 달라지는 것을 이단이라고 한다지요? 변치않는 마음은 사람에게는 불가능하고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고.

신앙인이 된지 오래된 것과,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많이 배우고 아는 지, 기독교인의 이름으로 어떤 큰 일들을 했는지를 자랑하는 것이 별 소용이 없어보입니다. 어느 날 마지막 한 번을 견디지 못하고 변한다면 더 큰 야단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변치 않는 삶이 참으로 어렵더라는 경험을 할수록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과 어떤 심한 불행이 오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한없이 약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정하게 됩니다. 

“하나님, 제발 제게 두 번째, 세 번째를 주지 마세요. 아니면 처음처럼 변치않는 마음을 같이 주시던지요...”

IP : 175.***.**.141
 (2017-10-10 07:44:55) 
  
아내가 항생제와 링거를 달고 버티는 날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고민이 따라옵니다. 벌써 7일째 화장실을 못갑니다. 침대에서 한 번 일어나기도 힘든 만큼 지쳐있고 어지러워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나오지도 않습니다. 아내는 중증 대사장애 진단을 받은 환자입니다. 대변 소변을 담당하는 신경이 모두 마비되어 자력으로는 기능을 못합니다. 전에는 늘 좌약을 넣고 기다렸다가 해결했지만 그것도 내성이 생기면서 듣지 않아 5년이 넘어가면서 중단했습니다. 

전에도 병실에서 커튼을 치고 대소변을 보다가 화장실로 가기 시작한지 5년쯤 되어갑니다. 소변이야 소변주머니를 달면 해결이 되지만 배변은 그러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1시간 정도씩 씨름을 합니다.두드리고 때론 손으로 빼고... 침대에서 누운 채로라도 나온다면 같은 방 식구들에게 민망하고 미안하겠지만 걱정은 덜어지겠지요. 하지만 그것도 안되니 속수무책입니다. 변기에 앉아 버틸 정도는 회복이 되어야 무슨 수를 쓸텐데... 

중증으로 침대신세를 오래지는 환자들에게 오기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욕창입니다. 불안해서 기저귀를 차고 있지만 몇년만에 간신히 벗어난 욕창이 또 생길까봐 마음 졸이게 됩니다. 이 모든 종류가 장기환자들의 고통이고 보호자들의 어두운 수심이 되는 것들입니다. 어떻게하지? 어떻게하지? 중얼거리기만 할 뿐인 상황... 

(다음 주에 당장 일산까지 장거리 외래검사와 진료를 다녀와야하는데 초조해집니다. 더구나 이번에는 항암주사를 맞아야할 일까지 겹쳐지는데 좀 나아져서 움직일 수 있을지 낭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