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285일 - '안식일에 하는 숨바꼭질'

희망으로 2017. 5. 7. 19:11
<간병일기 3285일 - ‘안식일에 하는 숨바꼭질’>

하나님은...
내 편이신데 무능하신 건가?
아니면 능력이 있는데 내 편이 아니신 건가?

내 편이면서 능력도 있으시다면
왜 이렇게 오래 고단한 삶을 내버려두시는 걸까...

상과 벌을, 기쁨과 슬픔을,
희망과 좌절을 동시에 주시면서
이렇게 오래 세상에 머물게 하시는 뜻을 몰라 힘들다.

나의 알량한 믿음, 인내도 내 것이 아니라서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하루도 한걸음도 앞으로 못 가는데
아시면서 뭘 기다리실까?

침묵과 기다림의 하나님이 몹시 야속하다.

(안식일을 종일 더듬다가 꼬박 보낸다.
아픈 가족 앞에서 잠잠하시는 하나님의 심중을...)



- 5월6일 저녁

어린이날 사전선거를 하고 가족이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약속했었다.
두 시간을 앞두고 침대에서 일어나던 아내가 두통과 구토를 느끼며 도로 누웠다.
계획은 취소되고 각자 투표도 하고 각자 시간을 보냈다.

다시 잡은 토요일 저녁 약속, 간신히 기운을 내서 강행했는데...
이번에는 아들이 쓰러졌다.
식당에서 고기를 불판에 구우면서 간신히 모인 가족모임을 이야기로 푸는 중에.
앉은 지 20여분, 젓가락도 집지못하고 고기 한 점도 아무도 먹지 않았는데
둘째아이가 ‘속이 울렁거려요’ 하더니 눈동자가 풀리며 의식을 잃었다.
119를 부르고 식당 바닥에 누이고 뺨을 두드리고 손발을 주물렀다.

가슴에는 검은 눈동자 없이 흰자위만 보이며 의식 잃은 아들이 안겨서 대답도 없고,
옆에는 휠체어에 앉아 놀라고 슬퍼 오열을 참는 아내가 흐느끼고 있었다.
겨우 옮긴 종합병원 응급실에서도 복도를 오가며 둘을 동시에 걱정해야 했다.
아이 엄마도 환자복을 입은 상태, 자칫 울다가 과호흡으로 심장이 마비될까봐.
응급실 담당 의사가 심한 저혈압에 영양상태가 원인이 되어 그런 것 같다고 한다.

오랜 절핍에 가까운 처지로 취업시험을 준비하다가 결과도 안 좋았다.
낙심하면서 스스로 관리를 못해 더욱 심신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이렇게 다급한 상태가 닥치면 한사람정도는 어찌 감당해본다지만 둘은 벅차다.
누군가 날고 있는 연의 실을 가위로 잘라버리는 느낌이다.
주어진 생명을 숙제하듯 마치는 날까지 잘 살고 싶은데... 너무 힘들다.


- 5월7일 새벽

괜찮은 줄 알았다. 잘 감당하며 살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새벽 2시, 가슴이 답답하고 손발이 저리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들을 응급실에 데려갔던 악몽이 기어이 나를 끌고 다닌다.
슬픔과 두려움과 우울함으로, 낭독 성경을 들으며 몇 시간을 뒤척였다.
창밖이 밝아지고 아침이 되어서야 피로가 잠을 몰고 온다.
...아직도 쉬운 일이 아니구나, 가족이 아프다는 것, 그것을 감당한다는 것.

(2008.5.9. -2017.5.7.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