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201일 - '노래할 수만 있다면...'

희망으로 2017. 2. 12. 10:14




<간병일기 3201- ‘노래할 수만 있다면...’>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허리가 아프다고, 귀찮다고 미루었던 그릇 몇 가지를 병원 복도 끝 씽크대로 가서 설거지를 하는 중에 노래가 귀에 들려왔다. ‘, 저 아저씨가 또 시작하셨구나뇌경색으로 휠체어를 타며 발음도 어눌하신데 늘 우리 병실의 90 되신 할머니를 부추겨 틈만 나면 휴게실에서 같이 노래를 하신다. 저녁이나 주말이면 빈 치료실에서 여러 명이 둘러 앉아 오락인지 재활 치료의 연장인지 구분이 안가는 노래타임을 가진다.

 

사실 아내도 한쪽 폐가 마비되고 숨도 잘 못 쉬는 상황이 되면서 아이들과 통화도 힘들 지경이 되었을 때 치료사 선생님들이 노래방이라도 자주 가서 노래를 하라고 권하셨다. 기능도 회복하고 덤으로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견디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었다. 두어번 갔지만 워낙 체력이 달리는 아내는 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 점점 포기했다. 저 분들도 그런 차원일거다. 나이도 드셨고 남의 눈 어려워할 입장도 아니시니 잘 하신다. 날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지난 성탄절 위문잔치에서 노래자랑 코너에 우리방 큰할머니랑 같이 나가셔서 이 노래를 불러 상도 타셨다. 가사가 더 슬퍼서 심사위원의 점수를 올린건지도 모른다. 그 뒤로 기운이 나시는지 자신감이 생겨 더 열심히 하신다. 그야말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어느 통신사 광고 카피처럼!

 

노래를 하고 싶은 마음만 유지할 수 있다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정도의 신체상태만 되어도! 그리고 노래를 불러도 제지당하지 않는 상황만 되어도... 많은 사람들은 조금 더 나아지는 행복감을 분명 느끼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그조차 할 의욕이 없을 만큼 지독한 침몰상태에 빠진 분들도 많다. 신체가 뒷받침 안 되는 어려운 분도 있고, 노래를 금하는 장소, 시대도 있고 찬송을 막는 나라도 있다. 안 그렇기만 해도 얼마나 다행인지...

 

[내 마음아 황금빛 날개로 언덕 위에 날아가 앉아라

아름답고 정다운 내 고향 찬송 소리 넘치던 내 고향

요단강 강물에 인사하고 시온성 무너진 탑을 보라

오 내 조국, 빼앗긴 내 조국 내 마음 속에 사무치네

 

옛 선지자들의 하프 소리 그리운 가락을 들려다오

우리의 간절한 찬송 소리 하늘 높이 울려 퍼져 갈 때

우리 위해 하나님의 노래가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 자비를 베풀어 주시리 자비를...]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에는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에 나오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있다. 총각시절부터 좌절하거나 어려운 벽에 막혀 우울해질 때면 듣곤 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유프라테스 강가에 강제 노역에 시달리던 히브리 노예들은 긴 노동의 시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노예생활에 강둑을 걸어가며 불렀다는 그 노래, 베르디는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을 때 이 노래를 만들고 조국의 국민들이 부르게 했고, 윤동주는 교도소안에서 조선의 독립운동으로 잡힌 죄수들이 꿈을 포기하지 말고 견디자고 이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도 한다.

 

노래는 힘이 세다. 사람을 절망에서 살리고 앞으로 가야하는 방향을 가리키며 잊지 않게 한다. 노예 신세가 된 히브리 민족에게 이스라엘을 회복 시켜주실 것이란 하나님의 예언의 약속을 의지하며 서로 위로하며 고통스러운 그 시절을 버텨나가겐 한 것처럼.

 

그런데도 건강한 나는 종종 노래를 잊는다. 아니, 잃어버리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조건 하나, 어려운 벽 하나 앞에 설 때마다,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해 슬픔에 빠지고 지레 좌절하거나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 입을 닫는다. 더 극한 상황, 더 깊은 수렁에 빠진 사람도 노래를 붙들고 부르면서 웃고 기뻐하는데...

 

그러고 보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시는 사랑의 크기는 결코 사람이 가진 잘난 재능이나 부유함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얼마나 건강하고 얼마나 지식이 뛰어나고 얼마나 성공한 사람이냐에 기준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얼마나 가난하고 실패하고 상실했으며 건강도 잃었냐에 더 기회를 주신다. 물론 구하고 손 내밀고 기다리는 열심을 가진 경우에!

 

나는 알 수 있다. 건강해도 노래를 자주 부르지 못하는 나보다 질병으로 반신불수 목소리도 잃은 뇌경색의 아저씨가 노래를 부르면서 더 행복하고 더 웃음 지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을 것을. 하나님 앞에 지난 날 잘못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바라는 노래를 400년이나 계속 부르는 히브리 민족에게 더 희망이 강하고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주어진 복과 건강과 재능이 우리를 더 하나님 앞에서 가난하게 만들고 오히려 사랑을 덜 받게 만드는 이유가 되도록 살지 않아야 할텐데... 반성하면서 속으로 노래를 불러본다.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2008.5.9. - 2017.2.12.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