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180일 - '백전백승, 퍼펙트 은총'
<백전백승, 퍼펙트 은총>
'속상하다. 내 아내도 잘하던 것인데...
이렇게 아프지 않았으면 더 잘할 수도 있는데 ㅠ'
방송에 나오는 그림그리고 살림공예 소개하는
화면을 보면서 왈칵 치솟는 착잡한 심정
아내는 어느 날 불식간에 폐인에 가깝게 되었다
희귀난치병은 사정없이 아내를 덮쳤고
불과 며칠 만에 불구가 되고 몇 달 만에 산 송장이 되었다
잘하던 모든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물론이고
보통사람이라면 모두가 가능한 일상생활도 불가능해졌다.
그 중단된 일상은 아픈 아내만 해당되는 게 아니었다
여행프로그램이나 봄 가을 산하를 보다가 또 울컥한다
'아...떠나고 싶다. 이게 뭐야, 이게 어디 사는 건가?
긴 여행은 고사하고 나들이도 발묶인 꼴이라니...'
동반하여 간병으로 인생 조진 내 처지가 서러움을 몰고온다
어지러운 분노와 불편해지는 심사가 나를 휘감는다
난들, 아내인들 그 엄연한 현실을 설마 부정하며 살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이 년도 아니고 십년 째인데
어쩔 수 없지 체념도 하고, 아자! 힘도 내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가족들 성하게 해주심과
좋은 이웃들 주셔서 도움받게 하니 감사하다고도 했다
그러니 한 번 받아들이고 한 번 각오하고 한 번 감사했으니
그러면 그 다음날부터는 다시는 같은 일로는 속상하지 않을까?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었다면.
한 번 극복으로 일평생 두 번 다시는 좌절도 슬퍼도 않는다면.
그러나 사람의 한계와 산다는 현실은 그렇게 호락하지 않더라
좌절은 순간마다 오고 해일처럼 순식간에 덮친다.
그러나 다시 일어서고 잔해를 씻어내는 일은 오래 걸린다
많이 고단하고 많이 서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예외가 아닌 진실
그것은 모두가 백전백승, 완벽한 승리자며
한 번도 버림받지 않은 은총의 수혜자라는 진실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었다면
이 순간 살아 있지 않고 이미 죽은 자의 명단에 있을 것이다.
날마다 주저 앉기 일쑤지만 날마다 다시 일어나며
날마다 눈물 훔치고 참지만 날마다 넘길 수 있음은
분명히 그때마다 평안을 회복하는 은총이 왔기에 가능했다
그 은총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는 모두 오늘을 살아낸다
그 은총이 계속 오는 순간마다 우리는 동시에 마중을 한다
우리 스스로 수련자가 되어 단단하게 하루를 사는 것으로.
우리 모두는 아무도 예외없이 마지막을 맞이한다
죽음이라는 문을 지나면서, 이별이라는 슬픔을 지고
하지만 겉은 비슷해도 아주 다른 상태로 나누어질 것이다
은총을 인정하며 수련하다가 자유를 얻는 경우와
은총을 부정하며 포기속에 생명을 마감하는 불행의 경우로...
오늘도 느닷없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돌멩이에 맞지만
더디 걸리더라도 피멍을 삭이며 서서히 회복하는
끝없는 반복의 수련을 기꺼이 걸어 가기로 작정한다
내 속에는 그런 힘, 그런동력이 없음을 알기에
그 다시 일어나게하는 힘 주시는 분에게 감사를 드린다
일평생 주셨고 마지막까지 주실 은총을.
고난이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듯
살아 남는 수련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이미 얻었다는 것도 아니며 완전해졌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상을 받으려고 계속 달려가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그것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일만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나를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으려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빌립보서 3: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