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067일 - 그 고마운 이유를 모르고...
< 간병일기 3067일 - ‘그 고마운 이유를 모르고...’>
개천절 연휴가 시작되는 주말,
오전 치료가 끝나고 3일간의 긴 공백이 시작되는 점심시간.
음식을 통 먹지 못해 기운이 없는 아내를 위해 바깥음식을 사러갔습니다.
‘이거 먹으면 기운이 난다던데 좀 힘 생겼으면...’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참 오래 병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안에 있을 때는 병원을 늘 집삼아 살다가 바깥을 나가면 그제야 병원이 낯설어집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주 평범하거나 당연한 생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거지요.
‘길게도 잘 버티고 살았구나.’
돌아보니 병원에서 24시간 산지도 벌써 9년째입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5년만 버티고 살아주기를 소원으로 빌었습니다.
아직 어린 막내딸아이 때문이기도 했는데 어느 사이 그 두 배가 되어 갑니다.
‘고맙습니다! 정말로 참 고맙습니다!’
나도 모르게 두 번 세 번을 속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살아서 고맙냐구요?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너무 힘들 때마다 떼쓰듯 기도하고 사람들에게 푸념도 했던 말을 떠올리면 그건 아닙니다.
고통과 걱정이 계속되는 삶이란 길어지면 길수록 불행하다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언제 끝내주실 지를 수시로 중얼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고맙냐구요?’
저도 병이 완전 회복되거나 아무 걱정 안 해도 될 무슨 대책도 없는데,
계속 살아가야 되는 것을 반가워할 수야 없지요.
그런데...문득 미처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보니 고마운 이유가 많았습니다.
모르고 지냈던 순간들이 한편 미안했습니다.
하나는 그렇게 긴 날들을 죽지 않고 살아온 배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손길과 도움이 그쳤다면 꼼짝없이 끝났을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또 하나는 그 힘든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잘 버텨준 환자 당사자 아내가 있었습니다.
마음을 포기하면 몸이 끝나는 것은 손바닥 보듯 빤하고 시간문제입니다.
덤으로 언제나 이탈하지도 빗나가지도 않고 자리를 잘 지켜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가족이 짐과 불화의 요인이 되기도 하지만 용기와 힘이 되기도 하는데 후자였습니다.
그 귀한 힘들이 모아져서 살아진 세월이니 어떻게 고맙지 않겠습니까.
만약 앞으로도 여러 날의 삶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이전과 달리 생각하겠습니다.
비록 고단한 그 순간에야 또 ‘언제까지인가요? 이럴 거면...’ 하고 불평할지 모릅니다.
그래도 얼른 돌아서겠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겠습니다.
길수록 불행한 것이 아니고 길수록 감사한 복을 많이 받고 있다는 사실을.
‘주신 생명, 주신 날 만큼 누군가 우리를 사랑해주고 있고,
아내가 견디고 가족들이 힘내고 있으니 고맙습니다!’
- 위 이미지는 아내가 전신마비에서 조금씩 회복되면서 쓴 손글씨입니다.
이제 글씨를 배우는 아이처럼 삐뚤지만... 그래서 진심이었습니다.
(2008.5.9 ~ 2016.10.1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