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간병일기 3037일 - '살아남기'라니...

희망으로 2016. 9. 1. 09:48





< 간병일기 3037일 - ‘살아남기’라니...>


1. ‘살아남기’라니...

눈물이 핑...돌았다.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한나의 아이’를 읽어나가는 중에 발목을 잡혔다.
6부의 소제목이 ‘살아나기’였다.

두 화면이 겹치는 것을 오버랩이라고 하던가? 정신병을 앓는 아내를 돌보는 그의 생활모습에 내가 겪은 순간들이 하나씩 겹쳐졌다. 환청과 불면, 신앙인으로 죽기보다 힘든 거짓 예언들을 견뎌야 했던 악몽들이...

2001년 타임지에서 ‘미국 최고의 신학자’로 선정한 스탠리 하우어워즈.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답 없이 사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다.” 여러 강의나 책을 통해서 그의 삶을 들었고, 그가 한 말은 나를 붙잡는 위로가 되기도 했다. 그의 말은 신앙인은 길이 없을 때도 살아나야 한다는 의미였고 부탁이었고 위로였다.

가난한 벽돌공의 아들로 태어나 정신병을 앓는 아내와 24년이나 씨름하며 살았다. 그 와중에 아들 애덤을 키우면서 그가 이룬 것은 답이 없이도 삶을 살아내는 본이었다. 차근차근 하루하루씩 견디고 끌어안고 공부하며 나누며.

미국 최고의 신학자요 성실한 신앙인이었던 그였지만 그에게는 ‘암이 사라졌습니다!’ 같은 박수 받는 종류의 멋진 기적은 없었다.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던 아내 앤은 끝내 이혼을 요구했고 자살로 마감지어 버렸다. 하나님은 결코 흔치 않은 불행을 주고도 정말 야속할 만큼 지독히 아무 일없는 무응답 삶을 계속 살게 했다. 제목처럼 ‘살아남기’로.

그는 신학을 하면서도 목회자가 되거나 성공적인 자리를 잡는 일에는 별 소원을 두지 않았다. 심지어 속해있는 학교나 교단에 아부하지도 않고 자기 사상을 자유롭게 표현하다가 일자리가 없으면 그냥 벽돌을 쌓으면서 밥을 먹고 살아도 된다는 생각까지 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는 나도 그랬다. 30년 넘게 교회를 다니면서 돈 많이 달라거나 유명하게 성공하게 해달라고 빌어 본 기억 별로 없다. 늘 굶어죽지 않게 일용할 양식이나 누울 자리 정도 달라고는 했지만. 가능하면 이웃과 세상이 다 평화롭게 아프지 않게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도 기도했다.

그러면 뭐 좀 살려줄 만도 했고 죽을만큼 힘든 불행은 오지 않거나 얼른 지나가게 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속된 말로 얄짤 없었다. 벌떡 회복하는 기적 없이 세월을 살아야하는 것은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가정처럼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정성이 부족해서일까? 더, 더 매달리지 않아서일까? 십여 년이 다되도록 병원을 떠돌며 견디고 살아남기로 지내야하는 오늘도 진행형인 나의 처지를 보면 할 말이 없어진다.


2. 구체적 삶은 구체적 슬픔으로 공감대를 만들고.

[거실 소파에 꼼짝 않고 누워서 지구를 구원할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다린다고 했다.]

- 아내도 수시로 방언 비슷한 중얼거림을 하며 무언가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팔을 휘저으며 뭔가를 좇아내기라도 하듯 ‘가!, 저리 가!’ 했다. 나는 어찌할지 모르고 그저 곁에서 민망히 서성이기만 하고...

[하나님이 몸에 갇힌 영을 구하려고 몇몇 영을 지구로 내려 보냈는데, 돌아가는 길의 사다리가 끊어져서 선택받은 이들 중 일부가 지구에 남게 되었다고 했다. 자기도 그중의 하나라고 했다]
  
- 아내는 자기가 보고 왔는데 다윗도 헨리 나우웬도 다 지옥에 가 있다며 속지 말라고 나에게 말했다. 특히 내가 존경하고 신앙의 본으로 삼는 사람들을 주로 골라서 그랬다. 수 십 년을 나를 이끌고 거울처럼 비추어 보던 이들을. 참 고약한 거짓말들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 그녀는 우리 돈을 몽땅 기부해버렸다.]
  
- “하나님을 못 믿는 거야? 겨우 보험 따위에 의지하려고 해?” 아내는 그렇게 말하면서 기어이 나와 자신의 보험들을 다 해약시키게 했다. 사악한 논리는 그렇게 교묘한 말로 세상의 안전장치들을 무기력하게 치우게 했고 그 대가는 병원 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정말로 무명의 도움들이 사방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를 보살피게 할 줄은 사탄도 몰랐나보다.

[정신이 병든 사람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데는 정말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순간순간마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정상’으로 보여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계에 가 있을 수 있다.]
  
- 종일 일을 하고 돌아온 나를 붙들고 아내는 날마다 밤을 세웠다. 겨우 두어 시간 잠을 자게 할 뿐이었다. 황당하기만 한데도 무슨 이야기를 한 번 시작하면 두 시간 세 시간을 앉혀놓고 들으라고 했다. 심지어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하는 시간에도 그랬다. 자모실에 따로 가자고 하고는 날이 훤하게 밝아지도록 예언을 흉내 낸 교육이 이어졌다. 그 곤혹함, 그 고단한 들어주기라니...

[그녀는 며칠씩 거의 잠을 자지 않았는데, 어느 날 밤에는 화들짝 놀랄 만큼 끔찍한 비명을 지른 적이 있다. 그때도 며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였는데 자신들이 벌레들에게 둘러싸여 산 채로 먹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 아내는 차를 타고 나가거나 돌아오는 길에 차 바깥에 귀신들이 우글거린다며 머리를 숙이고 숨기도 했다. 차를 세우고 해를 바라보며 저기서 지금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고 있다며 곧 죽는다고 눈을 감고 기다리기도 했다. 방안에서 옷가지를 벗어서 태우라며 심지어 이불과 성경책에까지 오염이 되었다고 손도 대지 말고 집게로 집어서 가지고 나가 태우라고 소리 질렀다. 어쩌랴... 마주 받아쳐서는 또 밤을 세며 반론에 눈물에 분노할 테니 그렇게 해줄 수밖에.

[질병이 심해짐에 따라 앤은 환청을 듣는 횟수가 잦아졌고, 우리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아내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을 듣는 중이라며 나도 따라서 ‘아멘‘하라고 시켰다. 통성으로 내게 기도를 시키곤 했는데, 힘들어서 잠시 멈추면 아내는 나에게 욕을 했다. “야! 이 새끼야, 넌 마누라가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데 그 정도도 못 해주냐? 나쁜 놈!” 이러면서. 그렇다고 말로도 안 되고, 주먹질로 잠잠케 할 수도 없으니 다만 딱할 뿐이었다. 나는 기운을 내서 또 소리 질러 기도를 하곤 했다.

[앤은 자기가 아프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그녀가 아프거나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러나 나는 자신의 질병을 다른 사람이 모르기를 바라는 그녀의 마음을 최대한 존중하려 노력했다.]
  
- 주변에서 이상하다고 수군거리는 눈치를 나도 느꼈다. 참기 힘들어 털어 놓으면 들은 사람들은 아내를 정신병원을 보내야 한다고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한 번 들어가서 약물치료를 시작하기 시작하면 반복되는 부작용을 보았기도 하고, 아내에게 그런 버려지고 갇히는 기억을 안고 살아가게 할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몇 달이 흘러 지나가고 있었다.

[아담이 성찬식을 하기 위해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엄마인 앤은 못 가게 막았다. 아담은 울고 있어야만 했다.]

- 막내딸이 등교하는 학교를 따라가서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사람 집으로 가서 살라고 했다. 둘째 아들은 곧 죽을 테니 당장 가서 데려와야 한다고 잘 지내고 있는 아들을 데리러 서울까지 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겪은 그 황당하고 혼란스러움은 그래도 미움으로 남지 않았다. 고맙게도.

[아담은 필라델피아에서 넘어 왔다. 제 엄마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는 뉴욕현대미술관에 가서 폴 크리의 작품을 함께 감상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울음이 터져버렸다. 그 지나온 세월을 겪고 나는 슬퍼하고 있었다. 내 미래가 어떻게 될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 병원을 떠돌면서 빚은 늘어나고, 그 사이에 방치된 채 망가져가는 시골 농가를 팔게 되었다. 수 십 여년 다섯 식구들이 사용하던 모든 짐은 갈 곳이 없어졌다.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아주 조금의 짐만 빼고는 모두 내다 버려야 했다. 가구며 살림살이, 책들과 옷가지까지. 그 일을 둘째 아들과 일 마친 후 돌아와서 저녁마다 조금씩 해야 했다. 무려 20여일 걸려서 끝을 냈다. 그 기간 동안 아들과 나는 별로 말이 없었다. 비참하고 우울한 그 상황에 무슨 말을 나눌 기분이 아니었다.

[그 중 그레그와 수잔은 나를 자기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를 했다. 함께 식사 기도를 하는데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저 곁에 묵묵히 있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을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 상황이 나빠질수록 아주 작은 친절을 베풀어 주는 이웃들에게 나는 무릎이 꺾어지는 고마움을 느꼈다. 털썩 주저앉아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사정을 이해해주고 격려해주는 말 한마디, 사주는 밥 한 끼에도...

기독교 신앙인들은 억울하고 극심한 고통에 마주치면 억울하게 잡히고 매 맞고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예수를 떠올린다.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같은 이심전심 공감의 심정으로 그 고비를 참고 견딘다. 수 천 년, 때로는 수 만 리 떨어져 산 사람들도 고통과 불행의 아픔에는 만나는 신비가 있다.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기적.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시공초월의 경험이다.
구체적 고통에는 구체적 슬픔이 따르지만 힘이 되기도 하더라는.


3. 형제가 된다는 복, 형제로 산다는 은총

성경에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형제가 같이 예수를 따른 경우가 꽤 많다. 수석제자 베드로는 사실 동생 안드레아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알게 되었다. 안드레아는 세례요한의 제자였지만 예수를 따라가라는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받아들였다. 물론 예수의 말과 삶에 더할 수 없는 존경과 신뢰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형 시몬 베드로에게 예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고 같이 가자고 했다. 결정적인 만남과 부름은 물론 예수의 '나를 따라가자!'는 말이었지만.

또 다른 세례요한의 제자였던 세배데의 아들 요한은 형인 야고보에게 예수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뒤에 형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고 베드로와 더불어 많은 일들을 해냈다. 물론 열성적이고 전폭적인 지원과 기대를 가졌던 어머니의 도움도 있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세배데의 부인, 살로메는 심지어 예수에게 나중에 자기 아들 둘을 왼쪽과 오른쪽에 세워달라고 청탁까지 해서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큰 자냐 하는 논란의 동기가 되기도 했을 정도였다. 어쨌거나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가 동시에 예수의 12제자가 되어 순교까지 하는 복을 받았다.

또 다른 야고보가 한 명 있는데 그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였다. 성경에서는 '작은 야고보' 라는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던 그 야고보는 열두제자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베드로와 함께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끈 큰 지도자였던 예수의 친형제 야고보와 더불어 세 명의 야고보 중 한명이었다. 그는 많은 활동을 한 기록은 없지만 추측에는 로마를 상대로 애국심으로 저항하던 이스라엘 구국단체 열성당 당원이었을 거로 보기도 한다. 예수의 제자 중 서너 명이 있었을 거로 보는 열성당원의 한명으로.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의 형이 바로 또 다른 제자 알패오의 아들 세리 마태라는 것이다. 마태는 식민지 정치를 하는 로마에 빌붙어 먹고살며 남에게 비난을 받는 세리로 살았던 것이다. 그러니 형제가 한명은 로마에, 한명은 민족회복운동을 하는 열성당원이면 얼마나 극과 극이었을까. 자칫 충돌하면 갈등 정도를 넘어 생사가 위태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예수의 열두제자가 되어 살면서 새로운 삶의 목적을 가지고 변화되었다. 형제 사이에 있을 수도 있는 불행을 피하는 복 정도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은총이 되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서로 형제가 된다는 복, 형제가 되어 한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은총은 꼭 당시의 혈육 간인 그 형제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피보다 진한 형제자매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족을 떠나 신앙의 이름으로 죽음도 마다않고 그 길을 따르기도 하니까. 형제가 되고 형제로 사는 복을 주시는 하늘이 고마운 이유다.

4. 힘들고 슬픈 사람들아, 우리 함께 힘내자!

며칠 전 치매 진단과 예방에 관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 그랬다. 같은 수준의 치매에 걸린 사람도 진행 정도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는 데, 그것은 치매환자와 24시간을 같이 지내며 돌보는 주보호자에 달렸다고 했다. 주보호자가 우울증이나 심하게 예민한 상태에 빠져있다면 환자도 따라가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주보호자가 환자와 사이가 안 좋거나 불평에 빠진 상태에서는 1시간 운동을 시킬 것도 10분만 시키게 되고 반찬을 5가지 차려줄 것을 한 가지만 차려주기도 한다. 그것들이 심해지고 쌓여 반복되면 환자의 상태도 많이 달라지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는 그런 의미였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꼭 치매에만 적용될까? 돌아보니 여러 병으로 보호를 받는 모든 사람, 모든 가족에게 해당되었더라. 내가 건강이 안 좋거나 심사가 안 좋으면 내 심신만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내 돌봄을 받으며 살아가는 아내의 상태와 생명을 좌우한다니 놀라웠고 조심스러워졌다.

‘살아남기’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아담과 자신을 스스로 추스르며 망가지지 않고 살아 냈다. 기적 없이 성실하게 답이 없는 삶을 걸어 온 신앙의 걸음은 다른 의미의 기적이다. 눈부시고 눈물 핑 돌게하는 기적. 사랑과 순명의 기적. 그 기적은 또 다른 힘든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길이 되었다. 십년쯤을 죽지 않고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을 붙들고 견뎌온 내게도.

좋은 주보호자가 된 스탠리 하우어워즈는 분명 우리의 형제다. 하나님 안에서 그의 길을 걸어가는 형제로. 이제 우리도 서로에게 좋은 주보호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형제자매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며 감사하며 성실히 하루씩을 살아내는 성품. 생명으로!

(2008.5.9. ~ 2016.9.1. 맑은고을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