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할 짓을 했슴다...
<못할 짓을 했슴다...>
갑자기 움직이게 된 일정,
충주로 가서 홀로 남으신 아버지와 암 수술 후 투병으로 힘든 중인 조카를 만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이었슴다.
차 안에 윙윙 날고 있는 작은 물체 하나.
아, 파리였습니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차 안이 식으라고 열어둔 문으로 들어와 곤하게 주무셨나 봅니다.
에어컨을 틀고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서늘함에 잠 깨신 파리님이 차 안을 비행하기 시작했슴다.
그야말로 비행소년...이 아니고 비행곤충! 나가달라고 차문을 내리고 손을 휘휘 저어도 안 나가니 에구...
중간에 세울 수도 없어 부득이 청주에 도착해서 아이들 집에 반찬 몇 개 내려주면서 드디어 하차를 시켜 드렸슴다. 조금 강압적으로.
하... 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보, 이제 저 파리는 다시는 가족들과 친구를 못 보겠지? 여기서 충주까지 찾아가기는 쉽지 않을테니, 벌이나 개는 그랬다는 말 들었어도 파리가 귀향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그랬슴다. 날카로운 강제 이별, 자다가 느닷없이 당한 생이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생의 불행을 안고 살아갈 파리에게 쫌 미안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당하는 게 인간만 억울한 불행이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못할 짓을 했슴다.
그런데...돌아보니 이건 오히려 덜 미안하고 덜 불행이었슴다.
오는 길에 차에 몰래 탄 또 다른 동승자가 있었으니... 바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미움의 대상, 바로 모기였습니다.
아내는 환자라 아무래도 동거하며 멀리 가기는 너무 불안하고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하거나 품어줄 수는 더욱 없는 숙명의 적이었습니다.
“너 누구의 피를 빨아먹겠다는 거냐? 나 하나 그런 것도 미안한데!“
“에잉? 그게 무슨 소리야?”
“아, 내가 당신 피와 살과 뼈를 축냈잖아... 아들 딸 셋씩이나 낳았으니, 미안하지”
“그게 그런가?”
“그러니 저놈의 모기까지 당신 피를 나눠 먹겠다고 덤비는 건 용서 못하지! 암만~”
그러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한쪽 문으로 몰아 손바닥으로!... 장렬하게 먼저 세상을 떠나보냈습니다. 도무지 말을 해서 나가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잠자코 뒷자리 어디쯤 누워 참아줄 리는 더욱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하, 그렇게 강제이주를 시킨 파리동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못할 짓을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이고, 좋은 만남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무슨 변고던가...
하지만 늙으신 아버지의 외로움과 머리를 빡빡 밀고 밥 먹는 것도 힘겨워 하는 조카의 암투병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 말씀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모든 응원과 마음을 다 모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못할 짓을 해서 미안타, 하지만 사람이 조금 귀한 생명이다 보니 어쩌겠냐? 너그럽게 이해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렴. 내 갈 길도 구만리고, 내 마음이 필요한 사람도 많구나. 어쩌면 우리도 안 보이는 큰 힘과 운명으로부터 느닷없이 당한 속상한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니들이 오히려 부럽기도 하단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인지 변명인지를 해봅니다.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