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못할 짓을 했슴다...

희망으로 2016. 6. 1. 14:15

<못할 짓을 했슴다...>

 

갑자기 움직이게 된 일정,

충주로 가서 홀로 남으신 아버지와 암 수술 후 투병으로 힘든 중인 조카를 만나고 청주로 돌아오는 길이었슴다.

 

차 안에 윙윙 날고 있는 작은 물체 하나.

, 파리였습니다.

 

너무 뜨거운 날씨에 차 안이 식으라고 열어둔 문으로 들어와 곤하게 주무셨나 봅니다.

에어컨을 틀고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에 서늘함에 잠 깨신 파리님이 차 안을 비행하기 시작했슴다.

그야말로 비행소년...이 아니고 비행곤충! 나가달라고 차문을 내리고 손을 휘휘 저어도 안 나가니 에구...

 

중간에 세울 수도 없어 부득이 청주에 도착해서 아이들 집에 반찬 몇 개 내려주면서 드디어 하차를 시켜 드렸슴다. 조금 강압적으로.

 

... 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여보, 이제 저 파리는 다시는 가족들과 친구를 못 보겠지? 여기서 충주까지 찾아가기는 쉽지 않을테니, 벌이나 개는 그랬다는 말 들었어도 파리가 귀향한다는 말은 못 들었어.”

 

그랬슴다. 날카로운 강제 이별, 자다가 느닷없이 당한 생이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일생의 불행을 안고 살아갈 파리에게 쫌 미안해서 마음이 아픕니다.

살다보면 이런 일도 당하는 게 인간만 억울한 불행이 있는 건 아닌가 봅니다.

 

못할 짓을 했슴다.

 

그런데...돌아보니 이건 오히려 덜 미안하고 덜 불행이었슴다.

오는 길에 차에 몰래 탄 또 다른 동승자가 있었으니... 바로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미움의 대상, 바로 모기였습니다.

 

아내는 환자라 아무래도 동거하며 멀리 가기는 너무 불안하고 가까이 다가오도록 허용하거나 품어줄 수는 더욱 없는 숙명의 적이었습니다.

 

너 누구의 피를 빨아먹겠다는 거냐? 나 하나 그런 것도 미안한데!“

에잉? 그게 무슨 소리야?”

, 내가 당신 피와 살과 뼈를 축냈잖아... 아들 딸 셋씩이나 낳았으니, 미안하지

그게 그런가?”

그러니 저놈의 모기까지 당신 피를 나눠 먹겠다고 덤비는 건 용서 못하지! 암만~”

 

그러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기어이 한쪽 문으로 몰아 손바닥으로!... 장렬하게 먼저 세상을 떠나보냈습니다. 도무지 말을 해서 나가 줄 것 같지도 않았고, 잠자코 뒷자리 어디쯤 누워 참아줄 리는 더욱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 그렇게 강제이주를 시킨 파리동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하고 무시무시한 못할 짓을 하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하이고, 좋은 만남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이 무슨 변고던가...

 

하지만 늙으신 아버지의 외로움과 머리를 빡빡 밀고 밥 먹는 것도 힘겨워 하는 조카의 암투병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굳게 먹기로 했습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그 말씀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모든 응원과 마음을 다 모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못할 짓을 해서 미안타, 하지만 사람이 조금 귀한 생명이다 보니 어쩌겠냐? 너그럽게 이해하고 운명을 받아들이렴. 내 갈 길도 구만리고, 내 마음이 필요한 사람도 많구나. 어쩌면 우리도 안 보이는 큰 힘과 운명으로부터 느닷없이 당한 속상한 삶을 끌어안고 살아가는지 모른다. 니들이 오히려 부럽기도 하단다.’

 

이렇게 스스로 위로인지 변명인지를 해봅니다.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