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냐! 내가 더 불행해!
<아냐! 내가 더 불행해!“>
“다리가 얼마나 아픈지 밤새 잠을 못자!”
“난 다리만 아픈 게 아니라 허리도 끊어지는 것 같이 아파!”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속은 또 울렁거리지 머리는 깨질 것 같고...”
“난 지금도 비만 오면 목 허리가 쑤셔서 못참아!”
환자 두 사람이 주고 받는 말을 옆에서 듣자니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메달을 따기 위해 싸우는 선수처럼 시합하는 분위기다.
말 사이마다 한숨과 지독히 슬픈 표정을 지어가면서 열심히 보탠다.
에고, 정작 내가 알기로 그 정도로는 비교도 안되는 중증을 가지고 사는 이가 여기 병실에도 두 명이나 더 있는데 정작 그 사람은 입도 안 떼는데 참 심하다...
속으로만 그랬다. 뭐, 원래 내 감기가 남의 암보다 더 아프고 무서운 법이니까.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들만 별 쓸데없는 시합을 하면서 사는 게 아니었다.
어디 아프지 많은 사람들도 얼마나 그런 시합을 열 내며 하는지 떠오른다.
“나는 되는 게 없다니까, 죽지 못해 다니는 직장에 쥐꼬리만한 월급에”
“제기럴, 나는 그런 직장도 없이 하루 벌어 먹고사는데 뭔소리여!”
“어떤 사람들은 부모가 한몫 남겨준 유산으로 떵떵거리고 사는데 난 꼴랑 집 한 채야!”
“그래도 넌 자식들이라도 잘 나가잖아? 직장에 결혼에 다 알아서, 우리애들은...”
뭐 끝이 있을까? 시간제한이 없으면 밤을 세워도 승자가 안 나오는 무승부가 될지도 모른다.
사돈의 팔촌까지 속 썩이는 사람이야기에 아파트에 자동차에 심지어 가구까지.
없는 것 작은 것 타령으로 끄집어내고 눈 부릅뜨고 찾아내기 시작하면 한이 없다.
꼭 누군가를 상대로 그런 시합을 하는 것만이 아니라 때로는 더 자주 자기자신을 상대하기도 한다. 꽁꽁 숨어 있는 것, 아주 작은 것 까지도 밝혀내고 기를 쓰고 만들어가며 한숨쉰다.
도무지 그렇게 해서 무엇을 상으로 받는 걸까?
큰 불행감? 짜증과 좌절감과 누구를 향한 미움?
자신이 얼마나 심하게 불행을 찾아내는 끝없는 시합을 하면서 얻는 것이 잘하는 일일까?
신앙의 대부분 가르침은 자족과 감사와 평안을 누리라고 권한다.
그런데 이런 시합하는 자세는 그와 반대쪽으로 난 길을 열심히 가는 것과 같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그러면 얻고 찾고 열린다고 마치 요술램프 주문처럼 가르친다.
그래서 하게 되는 기도가 거의 없는 것 모자라는 것 달라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것도 저것도 주시고 키워주시고 더 높은 자리로 더 건강하게...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무엇이 없고 나쁘고 모자라는 것 찾아내기 시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그런 시합의 배경으로 그 말씀을 주셨을가?
죄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대상으로 살기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한 게 아닐까?
진리와 깨우침을 놓고 말하신 게 아닐까?
물론 그러기 위해 최소로, 필수적으로 필요한 재물과 건강과 일도 들어는 갔으리라만...
“내가 더 불행해!”
에이그, 날마다 그러고 사는 내가 남의 말 하듯 하는 것도 민망하기는 하다.
“그래, 나는 조금 행복해! 이것도 저것도 그런대로 있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