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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 떠도는 약자의 하나님

희망으로 2015. 5. 24. 19:19

<작은 자, 떠도는 약자의 하나님>

 

성경에 3명의 장남이 나온다.

그 말은 3명의 둘째가 나온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많이 아는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그리고 신약에서 나오는 맏이와 돌아온 탕자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맏이들은 큰 자고 정착하여 살고 힘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은 이들보다 둘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폈다는 것.

 

가인은 자신이 수확한 소득으로 제사를 드렸다가 거부당했다.

그 앙갚음으로 아벨을 죽였다. 그래서 인류 최초의 살인자가 되었다.

왜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는 제사가 되었을까?

아마도 자신이 얻은 소유고 자신의 것을 드린다는 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가인은 아벨보다 가진 것도 많고 힘도 세고 우위에 있었다.

그러니 아벨을 죽일 생각도하고 실재로 행동으로 옮기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우월감, 힘의 행사를 할 상태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았을 것이다.

 

에서도 사냥을 좋아하고 힘센 맏이였다.

또한 장자가 모든 축복과 재산을 이어받는 문화에서 그는 권력자였다.

그러나 엄마의 도움을 받아 비열한 수단으로 장자권을 가로챈 야곱은 약자였다.

그리고 도망가서 떠돌며 힘든 세월을 보내는 운명을 살게 되는 둘째였다.

하나님은 분명히 못을 박았다. 아비인 이삭에게 꿈으로 말했다.

큰 자가 작은 자에게 머리를 숙일 것이라고.

 

돌아온 탕자로 유명해진 둘째는 사실 비난을 받아도 당연할 짓을 했다.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아버지 곁에서 가문을 유지한 큰 아들에 비하면 그렇다.

자기 몫을 챙겨 하고 싶은 대로 살며 탕진하며 살다가 비참해지자 돌아왔다.

아버지는 날마다 문 앞에서 기다렸고 새 옷에 소를 잡아 잔치를 해주었다.

큰 아들의 입장에서 얼마나 분통터지고 억울했을까?

내 것은 다 네 것이고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지않냐?’ 라는 아버지의 대답도

어떻게 보면 또 하나의 억울한 답변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인간의 나약하고 어리석음으로 저지른 죄를 용서받고

언제나 환영해주는 하나님의 자비를 설명하는 이야기로 늘 둘째아들을 주목했다.

 

3명의 맏이가 가지는 공통점은 타고난 상속권 안정된 형편, 그리고 힘이었다.

세상 사람의 삶의 시선으로 보면 아주 좋은 행운을 가졌고 부러운 자리가 맞다.

많은 사람들이 이 3명의 장자처럼 되기를 바라고 유지하기를 바라는 걸 보면.

3명의 둘째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자였다. 이어받을 소유나 타고난 힘도 그랬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사결정권이나 생명의 불안요소가 자기가 아닌 남에게 있기도 하고,

그럼에도 적극적인 삶을 누리고 싶고 표현하려는 취향을 가지기도 했다.

인간의 약점과 본질을 더 많이 가졌고 더 하나님의 보호를 필요로 하는 대상이었다.

 

그 관계가 결국은 하나님의 방향을 드러내는 이정표가 되었다.

자신의 능력으로 소출을 내고, 자신의 것을 내어놓는 듯한 신앙은 외면하신다는.

세상의 문화나 제도가 어찌되었던 하나님의 선택은 기득권보다 위에 있다고 말하시고.

비록 성실과 율법을 잘 지켰다 해도 하나님은 그보다 회개와 용서를 더 중요시한다는

하나님의 속성을 분명히 하신 것이다.

 

작은 자, 떠도는 고단한 삶, 용서를 구하는 죄인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으로

3명의 둘째를 통해 천명하셨다.

그럼에도 아직도 땅위의 세상은 맏이와 힘센 자를 부러워하고 구한다.

안타깝게도 비신앙인만이 아니라 신앙인까지도 그걸 따라간다.

심지어 이익 집단만이 아니라 교회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