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빠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좋았던 것들
<나빠지고 나서야 알게 되는 좋았던 것들>
“순둥이... 니가 부럽다.”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아내가 허리를 푹 숙이며 통곡을 한다.
“왜 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야 엉엉...”
순둥이는 물휴지 상표 이름이다.
방금 아내의 엉덩이와 허벅지에 묻은 변을 닦고 휠체어에 놓아 둔 것.
오늘 따라 아무리 힘을 주어도 나오지 못하는 배변을 비닐장갑을 끼고 손으로 빼냈다.
그러다보면 여기저기 어쩔 수없이 변이 묻는다.
순둥이. 말처럼 그렇게 변이 잘 나와 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내의 오열에는 그만큼 서럽고 고통스러운 몸의 상태가 쌓여있다.
그래서 울지 말라고, 그만하라고 말리지도 못한다.
좋은 마음도, 가늘지만 힘을 주는 희망의 생각들도 이런 상황이 오면 다 밉다.
그만두고 싶고 허울만 좋은 신기루 아닐까 의심스럽다.
‘설마 신에게 사기를 당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면서.
처음 대장과 방광 신경이 마비되고는 좌약을 넣고 30분 정도 기다리면 쏟아져 나왔다.
그러나 그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1년 지나면서 1시간 또 1년 지나면서 2시간...
그러다가 아예 안 나와서 결국 장갑 끼고 빼내기 일쑤.
좌약이 내성이 생겨 더 이상 장을 흔들어주지 못했다. 뒤로 배만 아프게 하고.
결국 3년이 지나면서 약 대신 손으로 30분 이상을 배를 두드리고 비데로 자극하고
그렇게 씨름하면서 해결해 나왔다. 그리고 장에 좋다는 여러 가지를 계속 사용했다.
장효소 음료 윌을 나는 손도 안대고 아내만 날마다 하나씩 몇 년째.
또 섬유질 풍부한 밀기울을 두유에 타서 먹이고,
그 중 비싼 함초액의 도움은 컸다.
그런데 형편이 딸려 가장 비싼 함초액을 중단했더니 바로 효과가 나온다.
눈에 보이게 힘들어지고 애를 먹는다.
‘먹을 때는 그렇게 좋은 줄 몰랐는데 중단하니 바로 알겠네...’
마치 아프고 나서야 건강할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실감하는 것과 영락없이 닮았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그런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후에야 그 빈자리의 크기를 알게 된다.
오죽하면 유행가에서도 그랬을까. ‘있을 때 잘해, 그러니까 잘 해!’라고.
내게 아직 남아 있는 것들이 너무 고단한 날에 치여 잊혀 진다.
분명 얼마큼은 있을 건강, 생명, 친구, 희망까지도.
그런데도 한 가지만 괴로워도 다 놓고 싶어진다. 내겐 아무 것도 없는 사람처럼.
그것들을 잃고 나면 나는 또 얼마나 더 심한 절망에 빠지고 불편을 감당해야 할까?
있을 때는 좋은 줄 몰랐다가 중단하고야 확실히 알게 된 함초액의 효력처럼.
오늘 우는 아내와 늘어나는 간병세월의 지겨움을 온몸에 뒤집어쓴다.
자꾸만 몰려오는 깽판의 유혹 앞에서 나는 그 뒷일을 애써 짐작하며 참는다.
‘아픈 후에야 건강이 소중하다는 걸 알지.
그럼 남은 걸 귀한 줄 알아야겠지?
그것마저 잃고 땅 치며 후회하지 않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