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생명이 비롯되는 곳에 서 계신 이여...

희망으로 2015. 5. 3. 18:36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

 

어린이날 주일이라고 라디오에서 들린 설교

 

"아이들은 하나님이 부모들에게 잠시 맡긴 생명입니다.

그러니 학대하거나 방치하면 안 됩니다!“

 

칼릴지브란은 '예언자'에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아이들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러니 당신은 아이들을 사랑만 주어야지 생각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어느 시에서 본 기억은 이랬다.

 

"아이들이 당신에게 온 것이라 해도 생명이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나의 아이들은 생명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부모를 통과하기는 하지만 부모가 아프지 않게도 못하고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을뿐더러 죽음을 막을 힘도 없으니

분명 부모의 소유는 아니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것도 아닌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그런데 어디 자녀들의 생명만 우리 것이 아니던가?

 

내가 가진 건강 재능 성품 목숨...

어느 것 하나 내게 만만하게 다루어지거나 원대로 되는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수명이라는 시한부로만) 모든 것들이

임시 소유다. 맡겨지고 관리하고 사용하라는 것.

 

TV를 켜달라는 아내의 부탁에 TV를 켜다가 사고를 쳤다.

버튼이 제대로 듣지 않아 원하는 채널이 안 나온다.

리모컨을 찾아 누르는데 이번에는 아무리 눌러도 되다가 안 되다가

도무지 말을 안 듣는다.

 

왜 그랬을까? 짜증이 폭발하여 마치 까스통이 터지듯 했다.

바닥에 욕과 함께 내동이 쳤더니 조각조각 박살이 나서 사방으로 튀었다.

씩씩거리는 숨길과 화끈거리는 얼굴의 열을 감당 못해 담요를 덮고 누웠다.

 

"여보, 나 아무래도 정신병원 가야하는 거 아닐까?“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미안해서 아내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나 소변주머니 채워달라고 해, 간호사실에"

"아직 병원 검사는 사흘이나 뒤에 가는데 왜 일찍해?"

"당신 나 때문에 잠 못 자, 꼼짝 못한다고 내내 쌓였잖아, 그래서 그런 거지

 

그러더니 기어코 울음보가 터졌다.

서럽게 일그러지며 울고 만다.

 

"미안해, 순간 충동을 참지 못했어. 다시는 안 그러도록 조심할게..."

"한 번씩 그럴 때마다 나는 사람들에게 뭐가 돼? ! 마음대로 가라고!“

 

쌓였던 피로, 찌꺼기, 분노들...

도대체 내 속에 내가 쌓는 것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성품도 분노도 선택의 대상이라면 나는 왜 그런 걸 선택했을까?

살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살아가듯 내 생활은 위태위태하다.

 

기쁨에서 슬픔까지,

좌절에서 희망까지,

너그러움에서 짜증의 폭탄까지

색의 스펙트럼처럼,

1에서 100까지 그 사이 무한의 숫자처럼

종류별로 천차만별 준비되어 있는 건 아닐까?

 

어쩌면 이런 것들은 바람 속에 모두 진열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손길과 선택을 기다리면서 섞여 지나가고 다시 오고...

 

어떤 일이 반드시 같은 결과를 남기거나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에게 닥친 일에 모두 같은 반응을 하지 않고,

전혀 다른 반응을 내기도 한다,

그 다름이 사람들마다 끝을 다르게 갈라놓고...

 

빈 몸, 빈 가슴으로 세상에 출발하여

경우마다 어떤 선택으로 채우고 쌓으며 나이를 먹는다.

어떤 이는 닥치는 건 빡세어도 생명력은 상승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사소한 결핍들에도 심한 좌절의 선택만을 더하기도 하고

그래서 누구는 드넓은 바다로 성인이 되어나가고

수없이 찌찔한 선택만을 반복한 이는 개울물 범람에도 빠져 죽는다.

 

바람 속의 수천가지 감정, 생각들이여

부디 내게 튼튼한 것들만 몰려와다오.

이렇게 망가지고 예측할 수 없는 난폭함을 잉태하는 괴로움이 싫으니.

 

내게 생명이 비롯되게 하신이여,

세상이 내 집도 아니고 부모도 아니며 잠시 나를 흔들다가 말 존재거늘

이렇게 곯아터지는 선택들로 남과 나를 들볶지 않도록 도우소서.‘

 

어찌 어린아이들만 어른들에게서 보호되어야하는가

어린아이 같은 모자란 내 성품 인격에도 좀 울타리를 쳐주시라.

파도에 무너지지 않고 한파에 얼어붙지 않으며 먹빛에 물들지 않도록...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보호받지 못하며 눈이 멀어 쓰레기만 바람 속에서 끄집어 가지는 자로다.

쌓이고 쌓인 울화로 사랑하는 가족만 괴롭히는 자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