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2015. 4. 28. 00:14

<고마워요 아저씨>

가구 제작과 인테리어 일을 할 때
수시로 용역인부가 필요했었다.
짐을 나르거나 설치를 도와줄 분들이.

우리가 이용하던 용역업체에서 오시는 분 중
동료들이 이름대신 부르는 분이 계셨다.
이른 바 '고마워요'아저씨.
연세는 조금 많으시고 힘이 좋거나 큰 기술은 없지만
우리는 그 분을 좋아했었다.

"아이구, 소장님 고마워유! 이렇게 일을 주셔서,
덕분에 또 돈도 벌고 하루를 잘 보내네요!"

늘 그렇게 말하셨다.
간식이나 참을 내놓는 아주머니에게도 
"고마워유! 배 고픈 참에 이렇게 맛있는걸 주셔서!"

- 아하, 그래서 '고마워요'아저씨라고 부르는구나.

그렇게 여러 번 만나고 같이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실은 그 아저씨가 다른 분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이 다른 분들이 그 아저씨에게 고마워 한다는 걸.

그건 일을 무지 잘해내서도 아니고
무슨 밥을 사거나 선물이라도 사와서가 아니었다.
작은 것 하나를 베풀면 두 배로 기쁜 인사를 해오고
힘들고 지칠 때면 꾸벅 감사하는 말 한마디에
모든 피로와 미움을 털어버리게 해주어서였다.

모두가 자기 능력을 부풀리고 생색을 내면서
작은 서운함에도 멱살잡이를 할려는 세상에
마음으로 평안을 늘 내놓는 그 아저씨는 청량제였다.

그 아저씨는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 나가시라고 말을 못했다.
교회를 수십년 다니는 분들이 채 하지 못하는
겸손과 감사와 자족을 생활로 하시는 분에게 
차마 말이 안나왔다. 부끄러워서.
얼마나 더 신앙생활을 하면 그 아저씨만큼 할 수 있을까?

물론 나도 안다.
선함과 구원은 차원이 다르고
믿음으로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아 천국가는 것은 다른 걸

하지만 성경에서도 본다.
이방인과 죄인이 유대인들과 종교인보다 구원받고
사마리아인이 제사장과 랍비보다 칭찬받으며
더 믿음이 좋다는 칭찬을 받은 이야기를

오늘도 그 아저씨를 보고 싶다.
열번에 아홉번은 짜증내고 미움에 속태우며
한 번을 간신히 고마워요 하는 내가 딱해서...

김재식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