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209 – 슈퍼맨의 반성>
<잡담 209 – 슈퍼맨의 반성>
“아, 왜 그러는 거요! 짜증나게...”
“.......”
“할 말이 있으면 말로 하라구요!”
아무 말이 없었다. 다시는 두드리는 인기척도 없었고.
간혹 아내를 데리고 샤워장 겸 화장실 안에서 배변을 보느라 씨름하는 사이
문을 흔들어대는 사람이 있다. 노크도 아니고.
“에이 썅!”
문을 왈칵 열고 나왔는데... 두 서너 명의 남자 환자가 복도를 오간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거나 한쪽 발로 휠체어를 낑낑 밀면서.
문득 자세히 본 얼굴이 측은해진다. 순식간에 전의가 사라진다.
나이가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데 뇌경색이 온 모양이다.
잘 듣지도 않는 한 쪽 손을 오그린 채 한 쪽 팔로 지팡이로 걷고 있었다.
이 재활병원에서 나는 거의 슈퍼맨이다.
숱한 환자들이 모두 팔 다리 머리 어딘가 고장이 난 채로 머무는 중이다.
씻고 먹는 일, 화장실에서 크고 작은 일 보는 것,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는 일
모든 일에서 동작이 불편하고 어떤 건 아예 불가능하다.
하기야 숨 쉬기도 불편한 사람도 있는 마당에 계단 오르는 건 꿈같은 일.
이들 앞에서 나는 거의 하나님 수준이다.
먹고 싸고, 자고 숨 쉬고, 돌아다니는 것 뭐 하나 불가능한 것이 없다.
계단도 급하면 4-5층도 뛰어서 올라가고 내려간다.
이 정도면 상대적으로 슈퍼맨에 가깝다.
“어쩌다...”
한 여자 환자가 외래로 재활치료를 받으러 온다.
거의 온 얼굴을 가리고 안경까지 쓰고 다녀서 잘 몰랐다.
오늘 문득 얼굴을 자세히 보았는데... 눈이 한쪽이 이상하다.
아내처럼 실명을 한 것일까? 풀리고 쳐져 내려앉았다. 그래서 가렸던 걸까?
간신히 걷기는 하지만 뒤뚱거리고 흔들려서 불안하다.
물론 걷지도 못하는 아내나 다른 환자들에겐 그 정도도 부러운 상태지만.
- ‘젊은 나이에... 저러고도 살아서 남은 날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지나가는 딱한 마음의 말들, 그러다 화들짝 놀란다.
- ‘내 아내는? 비교도 안 되는 우리 가정의 미래는 뭐 다르다고...’
이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바라고 자나 깨나 바라는 소원, 나는 안다.
- 그저 일어나고 걷고 계단 오를 정도고 밥 잘 먹기라는 것을,
그리고 화장실 잘 가면서 숨 쉬기 불편하지 않는 정도라는 것을
이들의 눈에 슈퍼맨으로 보이는 나는 늘 행복할까?
이들이 전 재산 다 주고도 얻고 싶은 인생의 가능성이고 축복인데.
그걸 이미 다 가지고 있는 나는 과연 감사만 하고 누리며 사는 중인가?
안 되고 있다면 왜 그런 걸까? 내게 꼭 그런 상태가 와야만 알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게 슈퍼맨이 되어버렸다.
누군가가 눈물과 피땀으로 얻고자 하는 복을 이미 다 가진 슈퍼맨
내가 가진 감사의 조건을 깡그리 뭉개고 사는 모습이라니.
슈퍼맨도 반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