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95 - 당신의 직업은? (...프로정신으로 산다는 것)
<잡담 195 – 당신의 직업은?>
“당신은 직업이 뭔지 알아?”
“나?...나야 환자지 무슨 직업?”
“그래, 맞았어! 당신은 직업이 환자야.”
아내는 자신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낸 것은 바로 직전 간호사분이 와서 하고 간
한마디가 생각나서입니다.
“오늘은 교회도 안가고 계속 누워만 계시네요?”
다른 주일에는 낮에 예배를 드리러 나갔다 오는 것을 아는 분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주일에도 꼼짝 못하고 침대를 지고 병실을 지키기 일쑤입니다.
몸 컨디션이 떨어지기도 하고 추운 날은 더 움직이기 힘들어집니다.
“당신은 환자가 직업이니까 컨디션 조절 잘하면서 치료 잘 받는 게 중요해,
공연히 다른 사람 비교해서 못한다고 우울해하고 하지마!“
혹시나 간호사분의 말씀에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을 비관하고 마음 상했을까봐
염려되어 그렇게 말했습니다. 다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 잘해내는 것 아닌가요?
아내가 환자가 직업이듯 나는 간병이 직업입니다.
어떤 점에서는 나도 참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 가고 싶은 곳을 도전(성공 실패 결과와 상관없이...)하는데
나는 꼼짝 못하고 아내 곁을 지키고 있어야만 하니,
그것도 주일이면 좀 더 우울해집니다.
그런데 직업에 충실하게 사는 것과 프로정신으로 사는 것은 또 다른 종류입니다.
직업에 충실하게 사는 것은 그 직업에 온전히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것을 곁눈질만 하지 않으면서 살면 가능합니다.
기쁘게 살든지 마지못해 살든지 상관없이,
프로정신이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직업이야 혹 귀천도 있고 성공과 실패라는 결과도 평가받지만
프로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정말 자신이 흠뻑 빠져야합니다.
그리고 무의미하게 되는대로 때우는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아내와 나는 직업으로야 ‘영구적 희귀난치병환자’고 ‘종신직 간병인’일지 모르지만
프로정신으로 살아야하는 분야는 그것이 아니고 ‘신앙인’입니다.
비록 어떤 직업으로 어떤 처지로 살든지 상관없이 희망과 감사를 잃지 않고 사는 삶.
하나님 나라를 향해가는 순례자임을 잠시도 잊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신앙인.
안식일에 병실에서 종일 누워 뭉개고 문밖을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하는
그런 생활을 7년을 넘어 8년째 접어들어도 말입니다.
“내가 너를 볼 수 있고, 네도 나를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다. 보지 못하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나님이 아니셨으면 그게 기적인줄도 모르고 평생 살았을거야”
이어령 박사가 딸인 이민아목사의 실명 선고 받은 것을 알았을 때 한 말입니다.
“갑상선암을 수술하고 숨을 쉬기가 너무 고통스럽고 힘들 때 누가 시원하게 들이마시고 내뱉을 수 있게 해주면 한 번에 백만불씩도 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위암으로 결국 세상을 더난 이민아목사의 간증에서 한 말입니다. 살아서 서로를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것, 숨을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 그 평범한 일상들이 모두 하나님이 주신 엄청난 기적이더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민아 목사님이 말한 그 기적의 날들을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때론 정말 큰 기적과 감사의 대상과는 비교도 안 되는 사소한 부족에도 불평하고,
작은 불편에도 사느니 죽느니 그렇게 끔찍한 원망을 늘어놓으면서...
우리의 세상살이 목적보다 큰 목적을 인정하고,
그 삶을 살겠다고 고백한 우리는 모두 프로입니다.
하늘나라 증인으로 사는 프로.
주어진 처지로 사는 직업이야 천차만별이고 각자 고단함도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신앙인’으로 살기로 각오한 프로는 프로정신으로 살아야하지 않을까요?
그것도 날마다 엄청난 기적 속에서 누리며 사는 중인데
가끔은 감사도 하면서 사는 싸가지가 있는 프로정신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