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몸살에 걸렸다고 자살을 한다?>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자살을 한다?>
“창문열고 확 뛰어내려버리고 싶다...”
“.......”
아내는 내 짜증 섞인 말에 아무 말도 못하고 듣기만 하고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기 때문이다.
아내가 지금 입원해 있는 병실은 4층이다.
창문은 사람한명은 간단히 빠져나가서 떨어질 만큼 크다.
밖은 아스팔트 도로다. 떨어지면 십중팔구는 죽거나 최소한 중상이다.
그래서였을까? 유리창에 [추락주의]라고 코팅해서 붙여 놓았나보다.
사실 농담이 아니고 방금 전에 누워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참이다.
그러나 뒤이어 따라오는 갖가지 상상들이 내 마음을 내려놓게 했다.
놀라서 기절할 아내, 소식을 듣고 믿을 수 없다며 하얗게 변할 아이들,
특히나 견디기 어려워 평생을 대못박고 살 막내 딸...
너무도 빤한 남은 사람들의 상처가 만만치 않게 다가왔다.
죽는 결심보다 더 무거울 그 고통의 무게가 나를 만류하였다.
감기몸살에 걸렸다고 누군가 자살한다면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물속에 10센티 잠겼다고 사람이 죽었다면 믿을까?
도시 하나가 성냥 한 개피로 불타버렸다면 믿어질까?
모두 가능하다. 그리고 쉽게 손가락질하거나 만화 같은 우연이라고 못한다.
<가족과 대화를 나누던 중학생 A(당시 15세)군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 미디어다음 기사 중>
이 기사제목만 본다면 우리는 충동적인 아이가 순간적으로 못 견뎌서 저지른 못난 사고쯤으로 보기가 쉽다. 또 우리가 다 아는 최진실의 남동생과 남편 등 가족들의 연이은 자살을 보면서 자살의 영이 어떻고 말하기 쉽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간단한 이야기 거리가 아니다. 나머지 기사를 보자.
<... 이날은 지방에서 교사로 근무 중인 아버지가 집에 오는 주말이었고, 아버지가 '가족의 행복'이라는 주제로 가족회의를 소집했다. "우리 가족은 행복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아버지는 마지막에 아들 A군의 성적이 떨어진 것을 문제 삼았다.
아버지가 "너만 공부 잘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텐데…" 하자, A군은 "그럼 나만 없으면 행복하시겠네요" 하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투신했다. 평소 아버지는 집에만 오면 A군과 A군 누나의 학습 상태를 점검했고, 문제가 발견되면 어머니에게 불만을 쏟아냈다고 한다. A군이 다니던 학교 관계자는 "A군이 한때 장래 희망을 적는 난에 '노숙자'라고 써 상담했더니 '우리 집에는 자유가 없거든요'라고 말한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이미 쌓이고 쌓인 원인들이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 한 명의 자살로 남겨진 상처를 안고 살면서 겪는 추가되는 고통들은 사소한일조차 남들의 사소함과 다르게 무거워진다.
단순한 감기몸살에 죽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데는 그 앞의 긴 날들이 있었다. 벌써 3주나 전에 아내의 엄마, 장모님은 김장을 하다가 쓰러지셨다. 의식을 차리지 못한 채 바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연달아 두 주를 청주에서 충주를 다녀왔다. 그리곤 바로 이어서 이번에는 아들의 군 제대로 홍천까지 가서 짐들을 싣고 돌아왔다.
그것이 과로였나 보다. 아내는 입 주변이 헐고 걷다가 주저앉기도 했다. 나는 그 와중에 어금니가 부러졌다. 그리고 이어서 3개나 이를 빼고 밥을 먹을 수 없게 되었다. 3주째 죽만 먹고 버티는 중이다. 결국 몸과 마음이 다 지치기도 하고, 만성인 비염까지 재발해서 재채기 콧물까지 동반해서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아내 간병의 자질구레한 일은 변함없이 계속된다.
“이렇게 연달아 몰려오는 고단함들이 귀찮다. 언제까지 마치 파도를 손으로 막는 것 같은 미련한 인내로 살아야할까? 그 끝도 너무도 분명한 죽음을 알면서도...”
갑자기 화가 나고 억울하고 우울함이 치솟았다. 그냥 끝내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불처럼 속에서 올라온다.
“아하, 이래서 사람은 사소한 마지막 하나에 무너지는구나. 큰 산을 넘고 거친 파도를 간신히 이고나면 버틸 힘이 없어서 작은 파도에도 자빠지는구나.”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남들에게는 눈앞에 보이는 그 이유 하나만 보이지만, 정작 빙산의 아래처럼 오래되고 지독한 싸움의 끝에 지쳐 있다는 걸 못 본다.
목에까지 물이 찬 사람은 거기서 10센티만 더 잠겨내려가면 입과코로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살 길이 없다. 딱 10센티만 올라가면 살 수 있지만 그 10센티가 내려앉으면 죽는 거다.
도시 곳곳에 폭탄과 지뢰가 매설되면 그 도시를 날려버리는 건 성냥 한 개피면 된다. 도화선에 붙일 불꽃 하나를 피우는 성냥 한 개피...
우리는 많은 경우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쌓이고 쌓인 목까지 찬 물속에서 살고, 온 몸이 지쳐 면역력이 바닥난 사람이 감기몸살 하나에도 자빠지고 쓰러질 지경. 멍들고 상처받은 심정으로 버티는 사람에게는 사소한 등 떠미는 일도 벼랑에서 죽음으로 밀어버리는 힘이 된다.
그러니 혹시라도 어느 날, 내가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었다거나, 물에 잠겨 질식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더라도 ‘기껏 그만한 일로?’라고 비난하지 말아 달라. 그 아래, 그 앞에는 무수히 많은 언덕과 깊은 물에 허덕거리다 면역력이 다 떨어져 망가진 몸뚱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시라.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은 간단하다.
감기몸살에 걸린 사람에게 잠시 쉴 여유와 감기약 한 봉지가 있으면 된다.
목까지 잠긴 사람에게 10센티짜리 발판 하나면 버티고 안 죽고 살 수 있다.
성냥의 불을 훅! 불어서 꺼버릴 입김 한번이면 막을 수 있다.
그 많은 물을 다 없애고, 온 몸의 건강을 평생 보장하려니 힘든 것이다.
도시에 묻힌 그 많은 폭탄을 다 제거해야한다는 무지 큰일을 떠올리면 해결이 힘들어지지만 의외로 도화선을 잘라버릴 가위하나면 사고를 막을 수도 있다.
그래서 때론 십 몇 층이나 되는 고층아파트에서 살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되고
단순한 감기몸살을 회복시키는 임시방편만으로도 인생은 계속 나갈 수 있게 된다.
우리 모두가 가진 아주 사소한 능력만으로도, 사소한 친절과 도움만으로도,
우리 가족은 그런 도움으로 실재로 7년이나 숱한 뇌관을 피하고 순간의 충동을 건너 살았다. 그때 그때 누군가가 내밀어 준 작은 위로와 도움으로! 꼭 한방에 희귀난치병을 회복시키거나 큰 목돈을 들이지 않고도 말이다.
죽음의 위기를 달고 사는 충동적이고 연약한 인간이라 스스로 생각 되는 분들은 부디 작은 해결책을 찾는데 신경쓰시라. 다른 사람의 자살을 막고 돕고 싶은 마음이 있는 분이라면 그렇게 거창한 프로젝트 아니고도 가능하다는걸 잊지 마시라.
전화 한 통과, 밥 한그릇과, 발판이 될 작은 판 하나로도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이 고비를 넘기고 오늘 하루를 더 살아내는 데는 그렇게 거창한 철학과 신앙과 결단이 늘 필요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것도.
(몸이 많이 힘들고 지치니까 생각도 어수선해진다. 조리도 없어지고, 비난을 받을지도 모를 발목을 여기저기 늘어놓았다. 그래도 하루는 살아야하고, 이렇게 푸념은 조금 위로가 된다. 누가 읽거나 동의를 하거나 비난을 하거나 상관없이...혹시 누군가 비슷한 수렁 때문에 허덕인다면 그분께는 내 심정이 위로가 될 것이다. 딱 한사람이라도 그러면 된다. 정 없어도 최소한 한 명, 나에게 나는 위로자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