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내가 가을의 끝을 좋아하는 까닭은>

희망으로 2014. 11. 15. 10:39

<내가 가을의 끝을 좋아하는 까닭은>

가을이 끝에 와 있습니다.
보름달처럼 더 이상 찰 수도 오를 수도 없는 가을의 정상입니다.

내가 이 만추를 좋아하는 까닭은 더 이상 채울 수 없도록 가득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가을은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의 끝에는 더 이상 어디를 치장하고 더 아름다워질까에 매달릴 수 없습니다.
이제는 손대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을 수용하며 겨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으로 꽉 찬 열정과 착오로 오는 실망조차 내려놓고 잊어야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평안이 머무르는 순간입니다.

‘세월’이라는 해가 뜨고 지고 반복하면서 내 삶도 만추가 되어갑니다.
계절의 남은 것이 겨울이듯 인생의 남은 것도 늙음과 죽음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가을의 끝처럼 인생의 끝을 좋아합니다. 
더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열의는 줄이지만 덩달아 초라했던 날도 귀하게 인정합니다.

긴긴 날을 꽃피는 봄으로만 살 수 없고, 녹음 짙은 뜨거운 여름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을 놓을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히기는 싫습니다.
다가올 겨울을 거부하고 영영 새 봄의 계절로 가지 않겠다는 억지도 싫습니다.

만추는 쓸쓸하고 빈약하고 한기를 느끼게 하지만 그래도 머물 수 없습니다. 
때로는 봄과 여름보다 더 뜨거운 의욕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를 자발적으로 넘어가려면 많은 것들을 비우고 더 넓은 세상을 기대하는
정말 큰 열정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햇 용기나 단순한 과시욕으로는 가당치 않은 모든 것을 쏟아야 하는 큰 계절,
내가 가을의 끝, 만추를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사진은 페친이신 정승훈목사님의 작품입니다.)

<내가 가을의 끝을 좋아하는 까닭은>
가을이 끝에 와 있습니다.
보름달처럼 더 이상 찰 수도 오를 수도 없는 가을의 정상입니다.
내가 이 만추를 좋아하는 까닭은 더 이상 채울 수 없도록 가득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가을은 아름답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의 끝에는 더 이상 어디를 치장하고 더 아름다워질까에 매달릴 수 없습니다.
이제는 손대지 않고 이제는 모든 것을 수용하며 겨울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능성으로 꽉 찬 열정과 착오로 오는 실망조차 내려놓고 잊어야할 시간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평안이 머무르는 순간입니다.
‘세월’이라는 해가 뜨고 지고 반복하면서 내 삶도 만추가 되어갑니다.
계절의 남은 것이 겨울이듯 인생의 남은 것도 늙음과 죽음일지 모릅니다.
그래도 이 가을의 끝처럼 인생의 끝을 좋아합니다. 
더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열의는 줄이지만 덩달아 초라했던 날도 귀하게 인정합니다.
긴긴 날을 꽃피는 봄으로만 살 수 없고, 녹음 짙은 뜨거운 여름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을 놓을 수 없는 집착에 사로잡히기는 싫습니다.
다가올 겨울을 거부하고 영영 새 봄의 계절로 가지 않겠다는 억지도 싫습니다.
만추는 쓸쓸하고 빈약하고 한기를 느끼게 하지만 그래도 머물 수 없습니다.  
때로는 봄과 여름보다 더 뜨거운 의욕과 각오가 필요합니다.
이 시기를 자발적으로 넘어가려면 많은 것들을 비우고 더 넓은 세상을 기대하는
정말 큰 열정과 결단이 필요합니다.
햇 용기나 단순한 과시욕으로는 가당치 않은 모든 것을 쏟아야 하는 큰 계절,
내가 가을의 끝, 만추를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사진은 페친이신 정승훈목사님의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