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그 싫은 사람이 떠나던 날 해방되었다고 기뻐했는데
다시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또 시작되었다.
멀리 지난날까지 돌아보니 참 많이 그랬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이 사람 보내고 저 사람 등 돌리고,
그렇게 세포분열처럼 계속 살고 있었다.
칸막이를 치고 다시 그 안에서 또 담을 쌓고 있었다. 내가...
모순 – 무엇이든 뚫을 창과 무엇이든 막을 방패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종종 떠나고 싶었다. 아는 사람이 없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혼자 조용히 며칠이라도 쉬고 싶다. 깊은 산 외진 마을 없을까?
그렇게 노래를 부르면서도 정작 혼자 있으면 못 견디겠다고 몸부림친다.
외로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강이 흐르고 우린 모두 섬이라면서 바득 우겨놓고...
사람이 싫다고, 쉼 없이 벽을 세우고 칸을 막고 또 막으면서도
외로움이 싫다고, 사랑이 메마른 세상이라고 외친다.
누군가가 보아주기를 기대하며 쓸쓸함을 못 견디고 비틀거린다.
종일토록 ‘서로 사랑하자!‘ ’너를 사랑한다!‘ 고 뱉고 있는 말과
종일토록 ‘너는 피곤하다!’ 와 ‘너는 내 스타일이 아냐!’ 라는 내 마음이
서로 찌르고 막고 놀고 있다.
내 속에서 모순으로...
위장 – 쓰레기를 덮고 위에다 멋진 화분을 놓았다. 향기가 악취를 감당할까?
성경에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나오는 것들이 더 더럽다고 했던가?
그 입으로 나오는 것보다 눈으로 보고 안에서 일어나는 욕정이
훨씬 고상하지 못하다는 건 정직하게 고백하자면 맞다.
누구든지 남의 가슴과 머리에서 떠올리는 단어들을 다 볼 수 있게 된다면
아무도 더 이상 믿지도 사랑하지도 못하리라.
1분에도 수 십 개씩 그 숱한 비난과 질투와 쌍스러운 욕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화면을 투명인간 속 보듯 본다면...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을 칠하고 꾸미고 위장한다.
타락과 일탈의 충동, 본능이 악취가 되고, 그것을 덮을 만큼의 향기가 필요하다.
아... 이 무슨 비극일까?
그 일탈과 타락의 정점에서, 혹은 심연의 바닥에서 새하얀 순결이 그립다니...
맑은 물을 마시고 싶은 목마른 사슴이 되어버렸다.
누가 위장의 의욕을 이렇게 허무하도록 무너뜨릴까?
도대체 사람의 속에 들어 있는 껍질은 몇 겹이었던 걸까?
변덕 – 아침과 저녁이 다르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화장실만이 아니고,
밥만으로는 못살겠다. 하늘 구름 바람 꽃도 있어야 살겠다.
때론 그렇게 말해놓고 금새 바꾼다.
하늘 구름 바람 꽃 만으로는 못 살겠다. 밥도 있어야겠다고.
누구도 고귀한 삶을 자동차에 비교하고 싶지 않다만
기름 떨어지면 못 가는 것이 자동차고 삶이더라는...
변덕은 배신이고 불안이다. 믿을 수 없는 대상이다.
사랑하는 이를 힘들게 하는 나쁜 씨앗이다.
오래가면 나쁜 열매를 맺고야마는 살아있는 씨앗
하늘 – 떠나온 곳 돌아갈 곳, 늘 바라보는 곳
나 어릴 때는 아버지가 하늘이었다.
그리고 밥이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내 아이들에게 하늘이 되고 밥이 되었다.
아이들에게는 하늘로 보이는 내 속에 분열, 모순, 위장, 변덕이 있다
어릴 때는 몰랐던 사실이다.
내 어릴 때 아버지도 그러셨던 걸까? 전혀 몰랐는데...
아침에는 하늘이 흐렸다.
오후는 다시 맑다.
지금은 맑은 하늘이 다시 흐려지고 있다.
변덕이다.
그러나 구름 위 하늘 아버지는 변덕이 없다.
나도 저 하늘의 아버지를 닮고 싶다.
이제는 분열도 멈추고, 모순의 창질도 하지 말고,
위장하는 삶에서 벗어나 변덕 없이 살고 싶다.
올려보는 하늘이 푸르다. 힘내라고, 늘 살아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