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날마다 한 생각

'행복공장 이야기'와 내 친구

희망으로 2014. 8. 1. 14:24
<행복공장 이야기>

딱 두 번 만난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처음 만나는 기쁨으로 인사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두 번째는 다시 언제 볼 수 있을지 기약을 하지 못하게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차 한 잔을 놓고 세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그러니까 한 번은 만남의 자리, 한 번은 이별의 자리였네요. 마치 미니드라마 처럼~ 

그런데 희한하게 수 십 년은 전부터 알던 사람처럼 편했고, 몇 시간을 지루한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더 신기한 것은 꼭 다시 만나지 못해도 너무 편하리만큼 어디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는 겁니다. 사실 어디에 사는지도, 지금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그 친구는 핸드드립카페를 운영하기에 손수 내려준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책 한 권을 선물 받았습니다. 딱 이틀 전에 만난 분이 쓴 책이라면서 어쩌면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없을지 서로 의논하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중요한 부분을 밑줄을 긋고 생각을 옆 지면에 메모까지 한 책이라 내가 가져가도 괜찮겠냐고 재차 물어보고서야 받아왔습니다. 

‘행복공장 이야기‘

고등학교3학년부터 유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각종 국제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태릉선수촌에서 훈련도 하던 분이었는데, 유도 연습 중 잘못 넘어지면서 목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전신마비 중증 장애를 가지게 된 20대 후반부터 거의 40년을 휠체어로 사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장애를 가지고 사회와 국가, 심지어는 가족으로부터도 짐처럼 사는 많은 분들을 직업재활의 일터로 불러내어 새 인생을 주는 대표가 되었습니다. 구로동의 작은 창고에서 5명이 전자부품 납땜부터 시작한 후 40년에 이르러 현재는 170명의 중증, 중복 장애인들을 수용하고 월 평균 110만원의 월급과 각종 보험혜택을 주는 한국 최고의 장애인고용 직장을 이루었습니다.

에덴복지재단 정덕원 사장님이 그 분입니다. ‘행복공장 이야기‘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2004년 아.태지역 장애인들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제7회 카주오 이토가 상을 받기도 했고, 장애인 복지의 가장 좋은 ’생산복지모델‘로 국제노동기구(ILO)에 처음으로 등록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제안한 <1030, 일 없으면 삶도 없다>는 2009년 10월 30일, 제 1회 장애인 직업재활의날 로 제정되었습니다. 1(일) 0(제로) 3(삶) 0(제로)은 일이 없으면 삶도 없다는 소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분은 여전히 소변 줄을 넣어서 소변을 수시로 빼내고, 누군가 옮겨주어야 전동차로 일을 볼 수 있으며, 설사라도 나는 날은 수시로 다른 사람들이 바지를 빨아주고 갈아입혀주어야 하는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에덴복지원의 40년 기간이 얼마나 눈물과 좌절속의 생활이었는지는 책속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은 더 많은 장애인들을 취업시켜 일하게 해주지 못해 가슴아파하는 중입니다. 

내게 책을 선물한 친구는 광고와 기획전문가이기에 그 일을 넓히는 대책에 같이 씨름하는 중입니다. 아마 잘 풀린다면 많은 사람들, 특히 장애인과 그 가족들에게 기쁜 소식이 될 것 같습니다.

아내에게 이 책을 넘겨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 이 행복공장에 취업시켜 돈벌이를 할거야! 한 달에 110만원을 벌면 싹 가로채서 가지는 나쁜 남편이 될거야! 신난다!” 

그런데 싹이 노랗습니다. 애당초 틀렸습니다. 취업은 혹시 친구를 통해 부탁을 하면 될지 몰라도 다른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곳에 일하는 170명의 중증 중복 장애인들은 각자 할 수 있는 공정에 투입되어 자기 몫을 해냅니다. 포장부분, 또는 운반, 또는 수량 체크 등으로,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루 8시간 안팎의 작업시간은 버티는 분들입니다. 작업 수준이나 능률은 다르더라도 근무시간은 채우는 분들, 

그런데 아내는 그게 안 됩니다. 등을 바치지 않으면 30분도 앉아 있기 힘들고, 등을 받치는 휠체어나 침대에 앉아서도 3시간 이상은 체력이 따르지 못해 몸살이 나니 취업을 시켜줘도 한 달을 채우지 못합니다. 아쉽고 물거품이 된 꿈이 되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세상에는 정상인 분들이 있고 장애가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환자가 있습니다. 중증 중복장애인들도 알맞은 일을 할 기회가 오면 직업을 가지는데 문제가 없지만, 장애가 없어도 환자는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더구나 중증장애를 가진 환자의 상태는 정말 길이 없구나 하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도대체 이런 사람은 어디에 어떻게 유익하게 쓰일까요? 정말 누군가의 인생까지 잡아먹는 짐만 되는 걸까요? 이 땅에서 ‘행복공장 이야기’만으로도 생활의 꿈을 다시 꾸는 분들이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중증장애인 환자들은 아무래도 하늘에서 운영하는 ‘행복천국 이야기’에 기댈 수밖에 없나봅니다. 그날이 속히 오기를, 아니면 가는 날을 기다리던지...

내게 책을 준 친구를 혹시 다시 만나면 이 심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또 찬 한잔을 놓고 두시간 세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도록, 마음이 외롭고 친구가 그립습니다. 참 잘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고마운 친구가...
김재식님의 사진.
김재식님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