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주머니를 차고 다녀온 일본
이러저러 힘들고 주눅들어 지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먼 외국까지 돈을 벌기 위해 애쓰다 병도 생기고,
애써 번 돈이 형제의 불행한 사고로 모두 쏟아넣어야 했다.
그러다 신앙의 불이 붙는 동기가 생겼고
기독교 신앙이 자리잡기 힘든 일본땅에서 혼자 새벽기도를 할만큼 뜨거워졌다.
또 한사람은 치료가 힘든 천식과 당뇨로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큰 기침에도 갈비뼈가 부러져나가는 악순환이 계속 되었다.
응급실을 제 집 안방처럼 들락거리며 마취를 할 수 없어 수술도 못하며
그냥 약으로 버티는 중이었다.
7년째 병상에서 더 나빠지는 것을 온몸으로 버티며
주기적으로 비싼 항암주사를 맞으며 기약없는 일생의 끝을 가는
아내도 힘들고 우울하기는 별 다르지 않았다.
이 세사람이 서로 위로를 나누다가 한 친구가 제안을 했다.
한 번 보자!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 속시원히 나누고
서로 힘내라고 격려도 좀 하자며 두 사람을 초대했다.
먹이고 재우고 모든 비용을 다 부담해주겠다면서...
이론상 불가능해보이고, 형편상 무리이던 바람이
나의 결심으로 진행이 되고 말았다.
'그래, 얼마나 살지 아무도 모르고, 더구나 행복하게 살아질지는
더더욱 모르는데 그냥 얼굴좀 보고 밤새 이야기라도 해보게 하자'
세 사람은 같은 나이 동갑이고 서너달 차이로 나란히다.
한 사람은 청주 병원, 한 사람은 의정부, 또 한사람은 일본 치바현
아내는 평생 외국은 한번도 못가보았다.
여권조차 만들어본적 없는 사람.
이참에 살아 생전 외국 구경을 한번 시켜주어야겠다.
그렇게 떠난 2박3일의 여행이 얼마나 감동을 주었는지
만나자마자 집 거실에서 눈물로 통성으로 돌아가며 기도로 시작했다.
그리고 밤늦도록 이어진 이야기들
둘째날은 그동안 간병하느라 편히 못잔 나를 쉬게 해주겟다고
나만 방 하나를 따로 잡아주고 아내를 밤새 돌봐주엇다.
물론 3명의 동갑내기 여자서 지낼 욕심도 있었다.
더구나 우리를 초대한 분은 일본에서 요양사로 근무하시는 분.
출석하고 있는 일본교회를 들러 일본 목사님과 간단한 예배와
찬양 두어곡도 같이 부르며 감동의 시간을 보냈다.
비록 불편한 몸과 자동차의 출렁거림에도 기침을 참지 못해 차를 세우며 다녔지만
그 짧은 날도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아픈 마음들에 힘을 부어주시는 은총이었다.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무도 기약할 수 없지만 형편이 된다면, 조금만 더 건강들이 회복이 된다면
세상을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보자고 했다.
아래는 그렇게 다녀온 이야기가 실린 오마이뉴스 간병일기 27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