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109 - 왜 만나를 날마다 주었을까? 귀찮게...
< 잡담 109 - 왜 만나를 날마다 주었을까? 귀찮게... >
왜 하나님은 광야를 돌고 도는 이스라엘백성에게
한 번 먹으면 40년은 배고프지 않고 다시는 안먹어도 되는
그런 만나를 주지 않으셨을까?
어차피 40년을 먹이실거면서 비효율적이고 귀찮게...
왜 예수는 죽은 나사로를 눈물로 가슴아파하면서
다시 살리셨을까?
어차피 또 죽을거 빤히 아시면서...
[마음의 건강은 한 번 얻었다고 평생 가지않는다.
날마다 가꾸고 추스려야 유지가 된다.
그러니 힘든 일이 생기면 언제고 상담을 하시라!]
무슨 심리상담소인가의 권유문이다.
신앙간증을 하는 사람들 중 놀라운 경험을 하거나,
기도가 이루어져서 기뻐하며 이렇게 간증을 하는 분들이 많다.
죽음에서 살아난 것을 감사하며 이전과는 다르게 살겠다고 고백을 한다.
그러면 그 분들은 정말 평생을 다시는 흔들리지도 않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고 살다 갈까?
당연히 많이 이전과는 내용의 다른 삶을 살기도 하고
깨달은 사람답게 너그럽고 평안하게 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이전과 비교해 정도의 차이로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아님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완전한 변화를 끝까지 유지한다.
대부분은 미안하고 아쉽지만 대개 이전의 자리에 가깝게 슬라이딩 한다.
뭐, 한 번 은혜를 받았다고,
혹 놀라운 거저 주는 사랑을 받았다고 성품과 인격,
가던 길 까지 180도 평생 달라지기가 어디 쉬운 일 아니니까 그게 더 자연스럽기도 하다.
나도 그 중의 한 명이라는 자가평가를 하는 마당에 순순히 인정한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곧잘 그런 대상을 구한다. 끝없이 미화를 하기도 한다.
한 번 은총을 받은 사람은 평생을 욕심도 없이 헌신하며 살기를 요구하고
한 번 죄에서 사함받고 돌아 선 사람은 일생을 성자처럼 감사하며 살란다.
남에게만 강요하고 기대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자신에게도 한다.
그래서 한 번 화개하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아야 한다는 무거운 자를 대기도 한다.
또 죄를 반복하면 견딜 수 없도록 밉고 실망하며 의욕을 상실하기도 한다.
고난이 닥쳐왔을 때 잘 견디고 버틴 사람은 많은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따라 붙는 조건이 좀 무섭다.
그러니 앞으로 평생을 당연히 좌절도 말아야 하고
흔들리거나 원망의 말을 조금이라도 내뱉으면 변질한 사람이 되어
비슷한 남들보다 훨씬 심한 비난을 듣게 된다.
과연 그런걸까?
한 번 승리하면 영원히 다시는 흔들리면 안되는걸까?
과연 우리가 그런 존재로 태어나고 그렇게 살 능력이 있는 걸까?
어느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생전에 한 영상설교를 1년째 틀어서
예배를 드린다고 해서 주목을 받은 교회가 있다.
그런데 뒤이어 그 목사님이 목을 메어 자결을 하셨다는 기사가 나오자
많은 사람들이 또 용서가 되느니 안 되느니 말이 많다.
그 설교와 생전의 삶이 아무리 진실하고 귀한 내용이어도...
(안타깝게도 그 목사님이 공황장애를 겪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 병이 없어도 심히 위험한 영적 위기에 빠지면 그럴수도 있다고 본다.
병이 있어야만 용서의 빌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침에 심히 고단해서 흔들리다가 점심에 깨달음으로,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감사로 돌아서고 평안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밤이 되어 다시 낙심하고 좌절하기를 숱하게 경험 해보았다.
그래서? 그래서 무엇이 비난이 되어버리고
그렇게 다시 흔들리면 무엇이 쓸모없는 감사였다는 말일까.
정말 그 말이 맞는 것일까?
다시 물어보자.
왜 하나님은 하루만 지나면 다시 배가 고파 절절매게 만들고
다시 딱 하루만 굶주림을 면할만큼 만나를 주셨을까?
한 번 만 먹으면 40년쯤 다시 안먹어도 되게 하시지.
아님 먹을 자격 없는 사람은 아예 주지도 마시지 어차피 데려갈 사람을...
우리는 거룩해진 성도일망정,
하늘이 주는 힘으로 평안과 소망을 받았다고 확신함에도
날마다 만나를 먹듯 새 기운을 얻어야 살아갈 수 있다.
그건 날마다 헌 기운이 되어버리는 우리 연약함을 전제로만 가능한 말이다.
다시 없는 복을 받았던 솔로몬도 하나님을 실망시키는 말년을 살았고,
해를 10도나 뒤로 돌리며 죽을 병에서 구해준 히스기야 왕도 다시 타락했다.
기름부어 세웠던 사울왕도 버림받았던가?
괴롭다.
고맙고 감사해서 잘 살아봐야지! 웃으며 잘 견뎌야지!
그렇게 각오를 하는데도 수시로 왼쪽 오른쪽이 교대로 비틀거리고
안에서 밖에서 교대로 무너진다.
외로움에 힘들어지고 너무 초라하고 무능해서 미워지고...
도대체 이런게 나만의 부끄러운 자질일까?
다른 이들도 그런 속에서 웃고 교류하며 사는걸까?
왜 이렇게 구멍이 쑹쑹뚤린 존재로 이 세상을 지나게 하는 걸까?
문득 흠도 없고 자기의 죄도 없으면서 완전하신데도
이 땅에 와서 지내다 간 분이 생각난다.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늘의 신분증명을 받고 살다간 분인데도,
울고(죽은 나사로앞에서)
화내고(성전 장사치들 앞에서)
기뻐하고(마리아가 향유로 발을 씻을 때)
비통해하고(겟세마네 기도 때)
예수님도 그러했는데...
날마다 죽음에서 건져지고 다시 날마다 곤두박질 당하며
날마다 도살장 끌려가듯 사는 거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외부에서 자꾸 모델을 만들어 세우는 우상놀이 하지 말고,
자신에게도 자꾸 완벽한 성자놀이로 몰아넣으며
그나마 남은 기운을 빼는 어리석음도 그만둘 일이다.